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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의 오래된 책방
  • 데미안
  • 헤르만 헤세
  • 9,720원 (10%540)
  • 2014-09-01
  • : 1,044

 

모든 인간의 삶은 저마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고, 그 길을 가려는 시도이며, 하나의 좁은길에 대한 암시이다... 

 

데미안.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고난의 여정

 

문장 하나하나 베껴쓰고 외워두고 싶을 만큼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나는 여태 만나지 못했다.

(책을 많이 안읽어서 그런것도 있겠거니..자료를 검색하다보니, 블로그에 필사해 놓으신 분들도 있었다. 나와 같은 생각이셨을까?)

 

나에겐 한편의 시이고, 주옥과 같은 금언이면서 마음을 울리는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책을 읽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마음이 몽글몽글..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의 실수나 혹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소설이 아닌 현실의 프란츠 크로머를 만나

전전긍긍했던 일들

물론 그 공포들은 언제 그랬냐 싶게 아무렇지도 않게 지워져가곤 했지만..

 

내심으론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데도 어른들은 나를 어린애라 하니 모르는척 행세를 해야 했던 짧은 순간들도 나 또한 겪었고..

 

그리고 성(性) 무언지도 모르던 시절, ‘유리반지*’라는 동화책을 읽으며 정말로 알 수 없는 섬세한 감정에 휩싸였던 기억까지..

 

(*원제목은 독일어로 데어 글라센 링에라고 되어있었고 나중에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음을 알았다. 루이제 린저 여사님의 작품)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난 이후

그가 걸어가는 삶의 길목엔 늘 데미안이 있었다.

실제로 데미안과 만났던 물리적 시간은 짧았지만

데미안과 떨어져 홀로 있었던 시간에도 데미안은 늘 그와 함께 했던 것이다.

 

그래..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또 하나의 자아이자, 성숙한 세계이며, 또한 싱클레어를 자기자신에게 인도시키는 첫번째이자 가장 큰 안내자로 보인다.

 

또한 데미안과 떨어져 홀로 고독속에 방황하며 방탕한 생활에 몸을 던지던 싱클레어가 우연히 베아트리체를 만나고 나서 그 모든 추악한 생활을 접고 고귀함과 순결함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걸로 보아


베아트리체 또한 싱클레어가 개구리나 도마뱀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길을 가도록 인도하는 여성의 모습을 한 수호자 또는 안내자가 아니었을까?

 

또한 그 자체로 싱클레어가 속된 욕망으로는 다가가기 어려운 또하나의 고결한 이상이자 자아였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데미안에 대한 인상 묘사를 떠올려보면,

 

“나는 데미안의 얼굴을 보았다. 그가 소년의 얼굴을 가지지 않고 어른의 얼굴을 가졌다는 것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보았다. 보았다고, 혹은 감지했다고 믿었다. 그것이 남자의 얼굴만이 아니며 또 다른 무엇이라는 것을. 여자 얼굴도 조금 그 안에 들어 있는 듯했다.”

 

그리고 베아트리체를 그려놓고 나니 데미안의 얼굴과 닮은 얼굴이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베아트리체도, 데미안도 다른 상황에서 다른 모습으로 싱클레어를 도운건 맞지만, 결국 둘 모두 싱클레어가 일생을 두고 찾아내야 할 그의 자아가 아니었을까 싶다.

 

여기에 물론 연주가로서 싱클레어의 마음을 다독이고 스승의 역할을 했던 피스토리우스 주임목사가 있었고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 사람의 모습속에서

우리 자신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미워하는 거요

우리 자신안에 없는 것은 우리를 흥분시키지 못하는 법이오

 

싱클레어가 어머니이자 연인으로서의 감정을 가지면서도 그 욕망을 넘어서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도와준 에바도 있었다.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돼요"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은,

그 자기 자신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상대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끌어 당기지요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내게 끌려오고 있어요

그 사랑이 언젠가 나를 끌어당기면

그때 가겠어요 나는 선물을 주지는 않아요

나를 가져가 주길 원해요

 

나름대로 생각해보건대

데미안은 용기와 당당함속에 알껍질을 깨고 나와야 할 이유를 알려주고

피스토리우스는 알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에바는 진정한 사랑을 알려준 위대한 스승들이었다. 


그 자아들은 전장에서 상처를 입고 누워있던 병상에서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입술이 스치는 것을 끝으로 마침내 하나가 되어 간다. 

(어느 서평에서는 데미안이 죽었다고 하시는 분도 있지만, 나는 데미안의 겉모습의 행방은 알수 없고, 알필요도 없으며,  결국 중요한 것은 싱클레어가 확고한 자아를 찾게되는 장면으로 생각된다.) 


어린시절 맞닥뜨린 두개의 세계는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욕망과 고결함을 상징할수도 있을것 같은데, 이 장면에선 최근에 읽은 인간실격에서 부잣집 귀한 도련님이 사는 공간과 부모들이 돌보지 못하는 시공간을 틈타 일꾼들의 추한 행동이 벌어졌던 공간이 맞닿아 있었던 그곳이 떠올라 재미있었다


나 또한 아버지에게 정신적으로 눌려 있던 안방 벽장문을 열고 올라가면 나오는 어두컴컴한 다락방! 이 공간만큼은 나의 해방구였고 모르는 사이 조금씩 성장해가던 공간이었으니..


글을 마치며, 

어린 싱클레어의 성장과 고민, 좌절과 일어섬, 그리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까지

살펴보면서, 우리의 아이들은 지금 어떤 인생의 스승을 만나고 어떤 인도자의 손을 잡고 걷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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