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선생의 인간실격을 읽으며
가장 충격적이었던건 인간 내면의 추악함과 이중성에 대한 놀라울만큼 솔직한 고백,
그리고 그것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던 점이다.
또한 인간의 인생이 7~80년이라 해도 인생을 크게 좌우하는건 어린시절 짧은 한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내가 무언가를 스스로 결정하거나 여러 변수를 통제하는것이 불가능한 시기에
사람의 인생이 크게 결정된다는것이 참으로 운명적인듯 하다.
유발 하라리는 직립보행으로 인해 신체구조상 여성의 출산이 어려워지고 뇌가 커져
출산이 빨라지고 미숙한 상태의 유아가 태어나니 그 결과 아이를 키우기 위해 여러 사람이 협력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인간의 사회적 능력이 발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갓 태어나 신기할 정도로 빨리 일어나 걸으며 빨리 성숙해 가는 동물(사회적 보살핌이 없으니 스스로 빨리 성숙할수 밖에 없을지도)과 달리 인간은 주변의 도움없이는 신체의 성장은 물론, 정신적 미성숙 상태가 계속될 수 밖에 없고 시간이 갈수록 상대적으로 뒤쳐지면서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것 같다.
그런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에
꼭 필요한 소통의 부재, 그리고 가해지는 육체적, 정신적, 언어적... 모든 폭력과 억압 혹은 그 반대의 경우까지 이 모든것들이 결국은 인간의 이후 삶 전체를 좌우하게 되는 걸까?
어떤 경우에도 범죄행위가 용납될 수는 없겠으나, 가끔 잔혹한 범죄자의 비참했던 어린시절이 리뷰되는 동안 우리가 한숨을 쉴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오바요시는 심지어 미남이기까지 하다.
모든것을 다 가졌으나 바쁜 아버지와 병약한 어머니의 돌봄을 받지 못하면서 하인들에게 범죄를 당하기 까지 하며 이미 운명이 결정되어 버린듯 해 안타까웠다
거기에 많은 여자들로부터 사랑받게 될거라는 묘한 예언까지 오버랩된다.
그리하여 결국 사랑받았으나 어떤 사랑도 이루지 못했으며, 많은 사람들 속에 속하였으나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채 도망치듯 살아갔던 삶
그 끝없는 운명의 수레바퀴 밑에서 신음하며 끌려가다 생을 마감하게 된다.
전후 극에 달했던 일본인들의 허무주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고는 하나
그 보다는 어쩌면 모든 인간이 가진 허무와 슬픔에 관한 이야기인것 같았다.
어린나이에도 "내 살길은 익살뿐이다"라는 다소 비장한 느낌으로 가면속에서 어른들과 친구들을 웃겨야만 했던 부분에선 정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고민이 들기도 했다.
다자이 오사무 선생의 글은 처음읽었지만
우리의 천재 이상(李相) 선생과 여러모로 너무 닮았다
* 천재라는 점에서 떠올린건데 책 다 읽고 나서 오사무선생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세상의 천재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기형적인 사회와 뒤틀린 삶들이 천재를 낳고 죽이기도 하는것 같다
일단 천재로 만들어진 그들은 결국 모든것을 소진하고 불태워 영롱한 사리와 같은 보석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갈 운명을 피할 수 없는가..
오사무 선생 역시 서른아홉 생의무게를 스미다 강에 내려놓는 것으로
그 짧은 여행을 마무리 하였으니..
이 책은 결국 불꽃같은 생을 남기고 간 어느 천재의 유서(遺書) 였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