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한명 한명 빛나야 한다
어른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어린왕자, 생텍쥐베리-
우리 모두에게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만났던 선생님들, 교과서, 교실과 운동장은
비록 희미하지만 영원히 우리 기억속에 남아있는걸보면
어린 시절 받았던 교육이 그저 우리 인생에 잠시 스쳐지나간 것이 아님을 알 것 같다.
겉으로 남아있는 기억이 그럴진대
우리 정신과 인생속에는 또 얼마나 깊게 뿌리박혀 있을까?
교육이 정치 이념의 각축장이 되어 버린지 이미 오래지만
“이 책은 교육의 본질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8~90년대 우리들이 ‘사랑의매(?)라는 명분아래 그렇게 맞고 또 맞으며 학교를 다녔던걸 떠올려본다
나는 비교적 공부를 잘 한 편이었는데도 정말 많이도 맞았다
맞는 도구도 가지가지, 대걸레, 당구채, 출처를 알 수 없는 몽둥이, 심지어 선생님이 신고계시던 슬리퍼까지.
초등학교 6학년때 시골에서 전학온 내짝 경이는 여학생인데도 교단에 불려나와 따귀를 무수히 맞았다
그것도 육성회비 안냈다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로
그야말로 폭력교실의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하도 폭력이 난무했던 학교라 그런지, 누가 그렇게 맞아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었다. 어느새 우리도 폭력에 둔감해져갔던 것일까.. 아니면 폭력이 뭔지도 잘 몰라서 그랬을까
그러니,
1950년대 구 소련(당시는 우크라이나)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어떻게 이런 교육 이념과 실천이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더구나 당시는 전체주의의 이념아래 획일적이고 압제적인 정치와 교육문화가 온 소련 사회를 지배했던 시기였을텐데 말이다.
거기엔
바실리 수호믈린스키 교장 선생님의 뛰어난 교육철학이 있었다.
어떤 사람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은 한명 한명 빛나야 한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별들이 하늘에서 빛나는 것처럼
학생 한명 한명이 그 자체로 하나의 독특한 세계임을 인식하고 한명의 아이도 낙인찍히거나 소외되지 않는, 포기하지 않는 교육을 통해 그 소중한 세계들이 별처럼 빛나도록 만들고 자 했고 그러기 위해 몸과 마음의 조화로운 발달을 통한 전인교육을 실천해 나간다.
선생은
취학 전에 이미 소풍체험을 통해 자연의 수많은 작은 소리들에 귀 기울일 줄 알게 하고
나무를 직접 심고 가꾸고, 공동농장을 경작하고 수확의 기쁨을 누려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깨닫게 하되, 노동이 아이들의 시간과 체력을 빼앗아 성장을 방해하지 않도록 신경쓴것은 물론
가능한 날에는 야영등을 통해 야외에서 잠을 자도록 하여 자연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도록 하는 등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할줄 아는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도록 끝없이 노력한다.
전제주의 체제 하의 엄혹한 시대
선생의 교육이념을 실천할 수 있게 도와준 마을 공동체의 역할도 컸던 것 같다
학교가 성장하면서 학생들과 교직원 모두 지역사회의 지원을 받아 학교의 물적자원을 만들고 유지하는데 더 많은 역할을 했다
학교건물 건축, 정원가꾸기, 원예, 선반과 전동공구의 제작, 청소와 유지관리 등은 학교구성원과 지역주민의 노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아이들 축구하는 소리 씨끄럽다며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요즘 어른들의 모습이 비춰져 부끄러웠다.
인터넷도 없고 유튜브도 없던 시절
"세상의 자극적이고 반복적인 소리와 영상들이 아이들의 건강과 정신을 피혜하게 할것이다"라는 선생님의 충격적인 예언도 정말 놀라웠지만
"교장인 자신이 교사를 직접 선발하고, 늘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고 토론했으며, 교사들을 교육하는 교육하는 방식의 깊이와 치밀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 2020. 3. 20. 교수신문(http://www.kyosu.net), 김현희(대전상지초) 선생님 -
전인교육은 내 어릴때부터 지겹도록 들었던 말이다..
지덕체 삼위일체 심신의 조화로운 성장..
그러나 우리 교육현실에선 사실상 구호에 그쳐오지 않았던가
선생은 말한다
인간이 동물의 세계에서 선택받은 존재인 까닭은 최초로 도구를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다.
짙은 푸른 빛 하늘과 반짝이는 별,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흘러넘치는 장밋빛 하늘의 깊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어릴적 평상에 누워 떨어지는 나뭇잎과 그 사이를 스쳐가는 바람을 느끼고
여름밤엔 캄캄한 밤에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던 추억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졌던 그 어떤 느낌과 색체보다도 평화롭고 또 눈부신 기억으로 남아있다
초가을 목초지가 들꽃으로 덮일 무렵엔 왕벌의 비행을 들려주고, 거위들이 남쪽으로 이동할 즈음엔 가을의 노래를 들려주고, 그러면서도 과도한 음악의 이미지를 주입하여 감수성이 무뎌지는 일이 없도록 했던 선생의 세심함은 놀랍다.
학교 창가에 두는 화분 하나부터 나무 한그루, 직접 설계한 운동장의 구조에다 학생들만의 공간에 선생님들이 가지 않는다는 불문율까지
소풍에서 체험했던 자연의 소리와 느낌을 떠올리며 음악을 듣고, 그 음악이 창의적 글쓰기에 영감을 주며, 이렇듯 모든 교육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통해서 흘러가고 스스로 표현되고 성취되는 과정을 통해 성장이라는 결과를 향해 가도록 만들어 가는길에 선생이 늘 함께 했다
아침엔 학습을 낮엔 교장으로서의 역할과 학생 수업을..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선생은 파블리시 학교에 온 생애를 다 바쳤다.
글을 맺으며
우리 교육이 바실리 수호믈린스키 교장 선생님에게 정말로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였다.
그러나,
폭력이 사라진 교실에 또다른 폭력이 자라고, 명문대 진학을 위한 학습소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학교, 그리고 교실은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그 속에서 선생님이 실천했던 전인교육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