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 -김준태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 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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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감꽃이 피어도 아무도 그 떫은 꽃을 먹지 않는다. 밤새 떨어진 감꽃을 주워다 목걸이를 만들지도 않는다. 감꽃 필 때 올콩 심고 감꽃 질 때 메주콩 심으라는 농부의 지혜도 옛것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이라크에서는 소년들이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있을 것이고, 그 뉴스를 보며 누군가 천연덕스럽게 돈을 세고 있을 것이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총소리, 바퀴소리, 시계소리, 벨소리…. 이 봄날에 그 소리들 속에서 나는 무엇을 세고 있나.
- 나희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