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붕괴’란 말이 괴담처럼 떠돌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말만 무성했을 뿐, 교실 붕괴에 대한 제대로된 진단과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다시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 교육의 병은 더욱 깊어져 이제는 ‘교실붕괴’란 말도 모자라 ‘교육 불가능’의 시대가 이야기되고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연일 이어지는 교실 폭력과 왕따, 자살…. 학교는 이제 배움터가 아니라 폭력의 온상으로 굳어지고 있는 듯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교육부와 경찰은 학교 폭력에 강경 대응책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지만 그게 진짜 처방전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학교 혁신, 정답입니다≫는 저자가 최근 2년 동안 사범대학 4학년 교육학 수업에서 건져올린 우리 교육문제 전반에 관한 생생한 보고서 묶음집이다. 보고서라고 하니까 좀 딱딱한 글일 거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은 그와 반대다. 예비 교사인 학생들은 저자의 놀라운 ‘자유 글쓰기 수업’으로 안내되어, 우리교육이 풀어야할 많은 문제들을 학창시절 기억의 단편들과 연계지어 되돌아보고 성찰한다. 그리고 고해성사라도 하듯, 자신의 속이야기를 토해낸다. 그러니까 이 책은 ‘교육’의 이름으로 돌아본, 과장되거나 각색되지 않은 진솔한 학교 이야기 모음집인 셈이다. 물론 즐겁게 배우고 다양한 꿈을 키우는 학교를 원했던 학생들의 이야기이므로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우리 교육을 비판하는 글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책의 목적이 교육 비판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이 책은 교육의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런 까닭에 학생들은 교육 현장의 혁신적인 변화를 위해 오늘의 학교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컨대 이 책에는 자신들이 경험했던 학교의 두 얼굴-인자한 얼굴과 성난 얼굴-, 교사에 대한 애정과 실망, 다른 나라 학교들에 대한 부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교생실습 때 만난 초중등 아이들의 삶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걱정, 공들여 읽은 교육관련 도서에 대한 비평 등이 고루 녹아있다. 한편 한편의 글에서 우리는 우리 교육의 중병을 확인하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왜 우리들의 학교는 우울한 단어들로부터 떠오르는지, 교사란 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인지, 왜 학교 공부가 그토록 재미없었던 건지, 사교육의 폐해는 얼마나 심각한 지경인지, 지금의 입시 풍토에서 학교 문화라는 게 가당키나 한 건지, 부모의 과잉된 교육열이 어떻게 자녀를 왜곡 성장시킬 수 있는지, 그러므로 학교는, 교사는, 학부모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그와 함께 자신들은 어떤 교사가 되고자 하는지...
책을 읽다보면 때론 학생들의 고백에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그들의 통찰에 놀라기도 하고, 그들의 의지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는 불과 한 학기 수업만으로, 이들에게 이토록 건강한 교육적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자아를 성장시킬 수 있었던 저자의 인간 혹은 교육에 대한 사랑에 감동하게 된다. 진정 ‘사랑’이 아니라면, 그 많은 글들이 나오기까지의 기다림도, 세심한 피드백도, 또 서로의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소그룹대화도 불가능했으리라. 그랬더라면 우리는 당연히 그 소중한 결과물인 이 책을 만날 수 없었으리라. 어느 학생은 이 수업을 아예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학기 ‘교육 현장의 이해’ 수업은 ‘혁명’ 그 자체였다. ……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이 수업을 통해서 여태까지 나를 지배하고 있던 고정관념, 회의감, 그리고 두려움이 사라졌다.”(13~15쪽)
궁금하지 않은가. 가히 혁명과도 같았던 수업을 통하여 학생들이 깨닫게 된 우리 교육의 문제와 해법들이.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교육 불가능의 폐허일망정 다시 땅을 일구고 작은 싹이라도 틔워보려 애쓰는 모든 사람들, 교사, 교육전문가, 학부모, 사대생 구분 없이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물론 그동안 교육학자나 교육 담당자들의 교육 문제에 대한 분석과 대안을 담은 글들은 대형서점의 매대를 가득 채울만큼 차고 넘쳐난다. 요즘 학교 폭력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담론들이 쏟아지고 있는가. 그러나 그 글들에는 절절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빠져 있다. 어른의 눈으로 본 진단과 해법이 있을 뿐이다. 많은 교육관련 기사들에도 학생들의 인터뷰 장면이 장식처럼 딸려있지만 결국 어른들의 관점과 현실론을 반영한 해석으로 문제의 본질을 비켜가기 일쑤다.
이제 학교 혁신의 정답은 학생들의 이야기에서 찾아져야 할 것 같다. 우리 교육문제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하고 있는 아이들의 고민과 아픔, 꿈과 소망을 외면한 채 이루어지는 교육혁신이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는 제대로 보기만 해도 문제 안에 이미 해법이 담겨있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병든 교육으로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것이 아닐까? 해답 역시 그 안에 준비되어 있을 것이므로.
다음은 책 속에 실려 있는 학생들의 글에서 인용한 것이다. 수없이 밑줄을 그으며 읽어야 했던 문장들 중 몇 문장만 옮겨본다.
★ 만일 내가 언젠가 교사가 된다면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가는 교사가 되고 싶다. 어디서 다치고 상처받고 돌아왔을 때, 그저 품에 안고 다독거려주는 따뜻한 교사가 되고 싶다. ‘네가 참 한심하구나’가 아니라 ‘너는 이래서 참 좋구나’라고 다정하게 말해주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216쪽)
★ 교무실에 있으면서 나는 생각보다 많은 교사들이 학생이 반항하거나 불손하게 나올 때 교육적으로 대처하는 방식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교무실에서 비뚤어진 태도로 일관하는 학생을 나무라는 교사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제 나 너 없는 것로 생각할 테니까 내 눈에만 띄지마!”였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교사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관찰해보니 그런 말을 하고 사람이 비단 그 선생님만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교사가 학생들과 대화하다가 결국 거의 같은 표현을 썼다. 대화가 통하지 않고 그 이상의 방법을 모르니까 선생님들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냥 포기하는 것 같았다. …… 학생만 상담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교사도 필요한 것이다. 학교에 교사를 위한 상담 창구가 생기면 어떨까? 교사가 행복하고 건강해야 학생들도 그렇게 될 수 있으니까 건강한 학교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일인 것 같다. (202~203쪽)
★ 학생들의 생활 대부분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입시 부담이다. 학생문화가 발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도 성적이다. 학생 문화를 발달시키려면 아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즐길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학생들은 공부 때문에 너무 짓눌려 다른 것을 할 여유가 없다. 아니 다른 것을 하는 건 몹쓸 일탈이고 불효다. (158쪽)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이 나온 답은 ‘잠자기’와 ‘멍 때리기’였다. 무기력한 아이들이 안타까웠지만, 그만큼 쉬고 싶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이해됐다. (159쪽)
★ 부모는 자녀에게 그 존재 자체로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표현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의 많은 가정에서 이 사실을 간과한 채 엉뚱한 것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자녀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채 말이다. (224쪽) ‘있는 그대로 널 사랑한다.’ 내가 부모님께 너무도 듣고 싶었던 말. 그러나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다. …… 상처를 치유받고 실패한 것을 바로잡아 보려는 내면의 소리에 대한 응답으로 지금 내가 교사의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25쪽)
★ 나는 그동안 소통과 나눔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 지금껏 ‘나 홀로’ 공부했다. …… 이번 수업에서는 나는 ‘다함께’ 하는 새로운 학습을 경험하고 있다. 자유 글쓰기를 쓴 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내용을 조원들과 나누면서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나는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거대하고 철옹성처럼 느껴지던 암울한 교육 현실을 어쩌면 내 손으로, 우리 손으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꿈이 생겼다. (308~3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