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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ia님의 서재
  • 맡겨진 소녀
  • 클레어 키건
  • 11,700원 (10%650)
  • 2023-04-26
  • : 82,662

비밀은 없다. 사실 비밀이라는 건 없다. 이미 한 사람이라도 무언가를 알고 있다면 그건 비밀이라 할 수 없다. 진정 아무도 모르는 무언가에 이름을 붙인다면 그때 그것을 비밀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비밀이라는 말은 대개 그렇게 사용되지 않는다. 우리가 비밀이라고 여기는 게 있다면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기보다 그만큼 소중하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이건 비밀인데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야’라고 할 때 그 비밀이라는 말은 혼자만 아는 소중한 무엇을 누군가와 나누겠다는 뜻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일상에서 비밀은 ‘이건 비밀인데···.’라는 말과 함께 다가오기도 하지만 설령 그런 말이 없더라도 우리는 비밀이 다가오는 어떤 순간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정말 소중한 무언가를 말하려는 그 순간을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비밀을 말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나를 소중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진정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 사람과는 어떤 비밀도 나눌 수 있다는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런 비밀은 어떤 자극적이기만 한 무언가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사랑으로 잇는 끈이 되어준다. 만약 그 비밀이 말을 통해 전달된다면 비밀은 그 말이 전하는 의미 이상으로 사람들 사이에 깊게 남을 것이다.


『맡겨진 소녀』에 나오는 주인공 소녀는 킨셀라 부부라는 먼 친척에게 맡겨진다. 집안일과 자녀 양육으로 바쁜 데다가 새롭게 태어날 아이를 뱃속에 가진 상태라 더없이 고단한 엄마와 집안일에는 무심한 아빠 사이에 자란 소녀는 부모의 결정에 따라 친척 부부의 집에 오게 되었다. 주인공 소녀는 킨셀라 부부의 집에서 환대를 경험한다. 아주머니는 간밤에 소녀가 이불에 실수해도 습기가 찬 낡은 매트리스 탓을 하며 넘어가 주고 아저씨는 우체통에 다녀오는 심부름을 달리기 놀이 시간으로 삼아서 소녀가 뛰기에 재미를 붙이도록 응원해 준다. 여태껏 다정한 보살핌을 받고 자라지 못한 소녀는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혼란스러워하지만 킨셀라 부부의 따뜻한 마음에 조금씩 편안함을 느낀다.


어느 날, 함께 우물에 가보자고 하는 아주머니의 말에 소녀는 “이거 비밀이에요?”라고 묻는다. 다시 한번 더 “그러니까,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되는 거에요?”라고 묻는다. 그 질문에 아주머니는 “이 집에 비밀은 없어, 알겠니?”라고 대답한다. 그러고는 “비밀이 있는 곳에는 부끄러운 일이 있는 거야.”, “우린 부끄러운 일 같은 거 없어도 돼.”라고 덧붙인다. 소녀는 아주머니의 말이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우물에서 마신 시원하고 깨끗한 물처럼 비밀이 없는 아주머니 집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다른 말도 한다. “비밀이란다.” 아주머니의 말에 소녀는 “여기에 비밀이 없다고 하셨잖아요.”라고 묻는다. “이건 달라. 비밀 요리법에 더 가깝지.” 아주머니는 시리얼을 우유 없이 한 알씩 먹는 것을 피부 관리라고 말하며 귀엽게 ‘비밀’이라고 말한다. 소녀는 이 말도 싫지 않았나 보다. 그렇게 좋아하는 아주머니를 보며 소녀는 생각한다. “아주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기쁘기 때문이다.”


비밀이 없으면서도 있는 관계, 어쩌면 소녀는 킨셀라 부부 집에 머물며 비밀의 비밀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사이로 기꺼이 비밀 없이 살아가지만, 그 사랑의 관계 가운데 발생한 비밀을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는 다른 사람을 배제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비밀을 공유한 사람들만이 오롯이 느끼는 감정의 고유한 차원을 말하는 것 같다. 혹여나 자신들의 관계를 오해하고 왜곡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자신들의 비밀을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다. 비밀은 밝혀내야 할 수상한 어떤 것이 아니라 비밀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돌아보며 서로 관계를 확인하고 앞으로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다짐하는 것, 그게 비밀의 속뜻이 아닐까.


소녀는 킨셀라 부부와 장례식에 갔다가 이웃 아주머니에게 잠시 맡겨지는데 그녀에게서 킨셀라 부부의 비밀을 듣는다. 그들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사고로 죽었다는 내용이다. 소녀가 머무는 방, 입었던 옷도 그 아이의 것이라고도 말해준다. 분명 그 일들은 일어났었다. 그러나 소녀 앞에 덩그러니 남겨진 사실은 과연 누구를 위한 사실일까. 오로지 이 이웃 아주머니의 흥미를 위한 게 아닐까. 킨셀라 부부와 그 아들 사이의 비밀은 간직되지 못하고 이웃 아주머니 입을 통해 쉽게 나와버렸다. 그렇게 흘러나온 말들은 비밀로 복원되지 못하고 당사자들을 향한 폭력이 되어버린다. 거기에는 앙상한 사실들만이 남아 값싼 동정을 기다린다.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p.73)

 

이웃 아주머니의 행동을 책망하기라도 하듯이 아저씨는 소녀에게 이런 말을 들려준다. 소녀가 이웃 아주머니와의 대화를 킨셀라 부부에게 비밀 없이 말한 후의 일이다. 비밀이 당사자들이 아닌 이들의 귀에 들어가면 너무나 부주의하게 다루어지기 쉽다. 비밀에 얽힌 이들의 이야기는 사라지고 가십거리만 남는다. 킨셀라 부부가 죽은 아들을 향한 그리움을 채우기 위해 소녀를 잘 보살폈는지, 그 마음은 다 알 수 없다. 다만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부끄러운 일’ 같은 건 없다는 아주머니의 말처럼 부부는 다른 이유 없이 그저 소녀를 진정으로 아낀 것 같다. 소녀 역시 부부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게 된 듯하다. 그래서일까, 나중에 집에 돌아가서도 실수로 우물에 빠졌던 이야기는 부모에게 절대 하지 않는다. 그 사건이 드러날 때 발생하는 오해는 소녀가 킨셀라 부부와 만들었던 다정한 이야기를 삼켜버릴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소녀는 무심한 아빠와도 비밀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소녀는 아빠가 모는 차를 타고 킨셀라 부부의 집으로 오는 길에 어떤 나무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아빠. 나무 좀 봐요.” “아픈가 봐요.” 아빠는 딸의 말에 “수양버들이잖아.”라는 한마디로 대화를 끝내버린다. 어린 소녀가 아빠와 함께 만들고자 했던 비밀은 아빠의 한결같은 무심함에 사그라졌다. 아빠와 함께 만들어 갈 이야기는 사라지고 수양버들이라는 사실만 덩그러니 남았다.


끊임없이 잔인한 사실만을 캐묻는 사람에게 비밀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은 비밀을 깨부수어서 사실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황금알을 낳는 닭을 비밀 그대로 두지 못하고 닭의 배를 갈라서 많은 황금알을 한꺼번에 차지하려는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나 결국 그 앞에 놓인 건 죽은 닭이라는 사실 뿐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긴장감이 고조되며 급격히 섬뜩해지는데 이는 황금알을 낳는 닭의 배를 가르고야 말겠다는 일종의 집착 같은 게 느껴져서이다.


때가 되어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기를 집에 태워주고 떠나는 킨셀라 부부의 뒷모습을 보며 소녀는 뒤따라 뛰어간다. 머지않아 아저씨의 품에 안긴다. 그런데 저 뒤에서 아빠가 따라온다. 왜 아저씨를 향해 뛰어갔는지 그 이유를 꼭 알아야겠다고 작정한 모습으로 말이다. ‘손에 지팡이를 들고 흔들림 없이 굳세게 다가온다.’ 마치 비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처럼, 비밀을 침범하러 오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들에겐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빠는 또 어떤 서슬 퍼런 사실을 얻어내려고 할까. 이들 앞에 펼쳐진 상황은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분명한 사실은 소녀가 이전과는 많이 달려졌다는 것이다. 비밀을 무자비하게 파헤치려는 행동은 옳지 못하다는 것, 비밀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 비밀이라는 이름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 소녀는 그 심오한 '비밀'의 의미를 어린 나이임에도 알아버린 것 같다. 그래서일까, 자기를 향해 다가오는 아빠에게 소리치며 맞서는 소녀의 모습에서 두려움은 다행히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소녀의 마음에 확고히 자리잡은 용기가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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