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눈길이 간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지방의 한 도시에서 열심히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고 담담히 말하는 듯한 책 제목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다. 나는 지방에 사는 사람이다. 수도권에 비해 지방이 문화 혜택을 덜 받는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상황이 조금씩 좋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예술 분야에서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는 크게 느껴진다. 많은 분야에서 수도권 집중 현상이 이루어지는데 예술 분야라고 예외일 리 없다. 이러한 여건 가운데서도 계속해서 예술 활동을 이어나가는 지역의 예술가들이 있다. ‘지방 예술가’가 아닌 그저 자기가 있는 곳, 그 환경 가운데서 느낀 것을 표현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이들 말이다. 프리랜서 작가 임영아가 쓴 이 책은 지방이라는 현실적인 제약 가운데서 자신의 활동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한 예술가의 분투기다. 생생한 절망감을 마주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의문을 품고 상황을 헤쳐나가려는 저자의 모습이 돋보인다. 기존의 양식을 극복하여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낸 앞선 세대 예술가들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포기하지 않고 변화를 이루어가는 저자의 모습에서 예술가의 정신을 마주하는 것 같다.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한다.’라는 말은 속담에 등장하는 말이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주 회자하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엔 그 의미의 중요성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이 시대착오적인 말은 아직도 힘을 발휘하여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이분법을 계속 재생산한다. 미술을 전공한 작가는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면서 수도권, 그중에서도 서울의 위력을 비로소 체감한다. 입시 책자의 상단을 차지한 대학이 대부분 서울 소재 대학이라는 걸 발견하고 소위 서울의 주요 대학이 개최한 공모전에 참가해야 많은 사람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어느새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의미가 덧씌워져 버린 지방대는 의미를 두고 추구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이러한 경험은 수험생이었던 저자뿐만 아니라 당시 그녀의 친구들까지 맹목적으로 서울에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 나아가 예술 전반에서 지방의 인프라, 정보 부족을 경험하며 이른바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을 크게 실감하게 된다.
지방 대학에 입학한 저자는 멀리 뻗어나가지 못할 것만 같은 지방 예술 활동의 현실을 마주한다. 서울공화국이라는 현상에 익숙해져 그저 넘겨버릴 수도 있는 문제지만, 저자는 계속해서 의문을 품는다. 의문의 핵심은 ‘꼭 서울에 가야 할까?’이다. 저자는 ‘왜?’라는 의문을 놓치지 않는다. 그 의문은 그녀가 예술을 할 수 있는, 또한 현실을 돌파해 나갈 힘이 되었다. 작품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 익숙한 이곳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더 깊이 생각하게 했다.
미술을 하는 나에게도 서울에 가야 한다는 주변의 충고가 많이 들려왔다. 나는 그때마다 ‘네, 저도 가고 싶어요.’라고 대답했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왜?’라는 의문이 있었다. 디자인을, 미술을, 예술을 하려면 서울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들을수록 부산에 대한 애증이 더욱 커졌다. (p.28)
서울공화국을 체험할수록 저자가 품은 의문에 의미가 더 깊어진다. 단순히 ‘왜 가야 하는 거지?’에서 ‘여기서도 할 수 있는데’로 심화한다. ‘부산에 대한 애증’이라는 표현에서 저자가 부산을 어떻게 느끼는지 그 복잡한 감정이 전해진다. 자기에게 익숙한 곳인 부산에서 활동하기 위해 예상되는 어려움 정도는 감당하겠다는 의지도 언뜻 보이는 듯하다. 저자는 ‘왜?’라는 내면의 질문에 솔직하게 반응했다. 또한, 어떻게 하면 그 질문이 삶과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한 자신과의 대화는 자기에게 가장 어울리는 예술 활동을 만들어 나가는 시작점이 되어 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저자는 부산에서 활동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렇게 결정하기까지는 저자가 일본 유학 시절에 만났던 교수님의 격려가 컸다. 저자는 ‘왜?’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도 학생으로서 여전히 크고 작은 고민을 하는 시간을 보냈다. 미술로 유명한 일본 대학에 입학하려 했던 건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서 경험한 ‘서울공화국’을 지향하는 태도에서 배운 것이다. 어찌 보면 갈팡질팡한 모습을 보였던 그녀에게 학과 교수님은 이렇게 물었다. “정말 네가 하고 싶은 거 맞니?” 머뭇거리며 “네”라고 겨우 대답한 그녀에게 교수님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렴.” 저자는 누군가에게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교수님에게서 들었다고 말한다. 교수님은 저자가 하고 싶었던 일, 바로 부산에서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귀국해서도 서울에서 취업하는 등 그녀가 하는 일은 부산에서 활동하고 싶은 바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저자는 일본에서 오랜만에 그 교수님을 다시 만난다. 저자의 근황을 들은 교수님은 한 번 더 이렇게 말한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렴.” 저자는 오래전부터 ‘왜?’라는 의문을 품어왔다. 끝없이 이어지기만 할 것 같았던 의문은 특이하게도 교수님에게 와서 답을 만난다. 저자가 품은 의문과 교수님이 전한 말은 말로만 볼 때는 단순한 문답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발생한 의문은 그 무게 때문인지 오히려 단순한 답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저자의 고민과 의문은 그녀의 작품과 태도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었다. 교수님은 제자의 모습에서 발견한 복잡한 실타래 같은 의문에 단순한 답변으로 응답해주었다.
저자는 ‘환경’의 중요성에 관해 말한다. 환경이 작품의 소재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이다. 저자에게 환경은 부산이나 다름없다. 그녀에게 부산은 ‘그리움의 흔적’이고 ‘향수병’이며 ‘재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작가가 이런 곳을 떠날 수 있을까. 작품에 표현되는 많은 것이 부산과 관련한 것이고 부산에서 얻은 영감에 따른 것이라면 그곳에서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저자는 이러한 기본적이고도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지금까지 예술 활동을 이어왔다. 저자의 예술 인생에 또 다른 고민과 의문이 생기겠지만 그녀가 활동할 곳은 아마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작품에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저자가 자신에게 솔직하게 반응하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다른 모든 글에서 서울과 지방의 격차에 관한 내용을 다루며 이야기를 풀어갔던 저자는 마지막 글에서는 그런 내용을 쓰지 않았다. 오로지 일상에서 예술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관한 생각만 담았다. ‘지방 예술가’가 아닌 그저 예술을 생각하고 싶은 ‘예술가’의 바람을 글의 내용에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처럼 숨은 디테일로 자신이 바라는 미래를 그리는 모습에서 저자의 예술가다운 면모를 발견한다. 작은 목소리라도 내겠다는 저자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그 목소리는 아마도 큰 목소리가 될 것 같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작은 목소리라도 내어 지역 예술에 대한 내 의견을 알리기로 했다. 비록 작은 목소리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조금씩 좋은 쪽으로 발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p.21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