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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 좋은삶
  • 지하로부터의 수기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 9,900원 (10%550)
  • 2010-02-26
  • : 8,103

이럴 바엔 차라리 뭐가 더 낫겠느냐 하면, 지금 내가 쓴 이 모든 것 중에서 나 자신이 뭐라도 믿을 수 있다면 좋겠다. 맹세코, 여러분, 나는 지금 내가 휘갈긴 것 중 한 마디, 단 한 마디도 믿지 않는다! 즉,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이와 동시에 내가 갖바치처럼 어설프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영 찜찜하다.
"그럼, 대체 뭘 위해 이 모든 걸 쓴 거요?"라고 여러분은 나에게 말한다.
"자, 내가 여러분을 아무 일거리도 없이 사십 년쯤 가둬 두었다가 사십 년이 지난 뒤에 어떤 지경이 됐는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분의 지하에 왔다면? 아니, 인간을 사십 년 동안이나 아무 일거리도 없이 혼자 방치해 두는 법이 어디 있소?"
"그런 소리를 하다니, 정말 창피하고 정말 굴욕적이구려!" 여러분은 경멸스럽다는 듯 머리를 흔들며 나에게 말할 테지. "당신은 삶을 갈망하고 있으며 당신 스스로 인생의 문제들을 뒤엉킨 논리로 풀어 보려고 하는 거요. 당신의 행동거지는 정말 끈덕지고 뻔뻔스럽기 짝이 없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겁은 또 얼마나 많은지! 당신은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그 헛소리에 만족하고있소. 뻔뻔스러운 소리를 지껄이면서도 그 때문에 끊임없이 겁을 집어먹고 용서를 구하잖소. 아무것도 무섭지 않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견해가 궁금해서 아첨을 하고 있구려. 이를 갈고 있노라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우리를 웃기려고 갖은농담을 늘어놓고 있잖소. 당신은 당신의 농담이 가당찮다는 것을 알면서도 분명히 그것의 문학적 진가에 몹시 만족하고 있는거요. 당신이 정말로 고통 받았던 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당신은 자신의 고통을 조금도 존경하지 않소. 당신의 내면에 진실은 있지만, 그 내면에 순결함은 없소. 당신은 아주 시시껄렁한 허영에 사로잡힌 나머지 괜히 과시하기 위해 당신의 진실을 시장바닥에 내놓고 치욕을 자처하는 거요∙∙∙∙∙∙. 당신은 정말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서도 겁을 집어먹은 까닭에 최후의마디를 감추는데, 이는 당신이 그걸 입 밖에 낼 결단력은 없고오직 겁을 집어먹은 채 시건방지게 굴 줄만 알기 때문이오. 당신은 그놈의 의식을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실은 그저 망설이고 있을 뿐인데, 이는 당신의 머리는 작동하고 있으되 당신의마음은 방탕으로 인해 어둠침침해졌기 때문이오. 깨끗한 마음이 없으면 완전하고 올바른 의식도 없는 법이라오. 당신은 또 남한테 어찌나 끈덕지게 달라붙는지, 또 남을 어찌나 귀찮게 하는지, 또 어찌나 오만상을 찌푸리는지! 허위, 허위, 허위올시다!"
물론 여러분의 이 모든 말은 지금 나 자신이 지어낸 것이다.
이것도 역시 지하의 산물이다. 나는 거기서 사십 년 동안 계속여러분의 이런 말을 문틈으로 엿들어 왔다. 이것도 다 나 자신이 생각해 낸 것이지만, 실상 오직 이런 것만 생각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딱히 놀랄 것도 없지, 달달 외울 정도가 되다 보니 자연스레 문학적 형식을 띠게 된걸.......
하지만 여러분이 아무리 남의 말을 잘 믿기로서니, 설마 정말로 내가 이 모든 것을 인쇄하고 더욱이 여러분한테 읽으라고내놓을 것이라고 상상할까? 자, 나한테는 한 가지 과제가 더 있다. 즉, 정말로 무엇을 위해서 나는 당신들을 ‘여러분‘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서 당신들이 정말 독자라도 되는 양대하는 것일까? 내가 지금부터 진술해 나갈 작정인 고백은 발표할 것도, 또 남한테 읽힐 것도 못 된다. 적어도, 나의 내면에 그만한 확고함은 없거니와 더욱이 그런 걸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내 머릿속에 한 가지 공상이 떠올랐으니 어떤 일이 있어도 그걸 꼭 실현시키고 싶다. 이게 문제다.-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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