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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용이님의 서재
  • 연을 쫓는 아이 (개정판)
  • 할레드 호세이니
  • 12,150원 (10%670)
  • 2008-09-05
  • : 3,589
온전한 공허

침묵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순간이다. 그 순간은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시간보다 느리게 간다. 나는 ‘연을 쫓는 아이’를 읽고 공허감에 빠지며 침묵했다. 침묵의 시간은 느리지만 공허의 시간은 길다. 공허는 감정이 결핍되고,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며, 현실로부터 나를 단절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공허감을 느끼는 길은 편평하고 높낮이가 없는 길이고 또한 항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런 길을 나는 언제나 기계적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다가 어느순간, 새로운 갈림길이 처음으로 생겨났다. 이윽고 새로 생겨난 그 갈림길은 아미르가 카불로 하만의 아들 소랍을 찾아가는 긴 여정 중에서 마주하게 된 카이베르 산길을 보는 듯 했다. 메마르고 위압적이며 구불구불한 산길은 아미르가 그랬듯이 나 또한 비위를 뒤집어 놓는 듯한 멀미를 느꼈다. 나는 멀미를 느끼며 어느순간에서야 그 길의 끝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리곤 습관적으로 가곤 했던 편평한 공허의 길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내 발이 땅에 닿아있음을 느꼈고 현실에서 보이는 풀밭의 풍경이 내 시야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기존에 느꼈던 공허는 모든 것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었으며, 그 무엇도 수용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새로운 길로 이어진 공허는 풀밭의 잡초들의 높낮이가 어떠한지 구분할 정도로 현실을 의식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현실 감각이 상실되어 지지 않았고 그리곤 보는 것이 실감이 나길 시작한다. 그러자 내 감정은 희노애락을 느끼고 싶어했다. 하산은 자신을 여러번 배반한 아미르를 마지막 순간까지도 구해주었다. 나는 하산의 희생을 느꼈다. 허나 나는 그런 희생을 받을만한 자격이 충분치 않은 아미르의 감정 또한 느끼게 된다. 하산은 자신의 희생으로 바바의 집에서 알리와 떠나게 되었던 순간도 그를 사랑했다. 천 번이라도 사랑했을 것이다. 아미르는 그런 하산의 희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죄책감과 자신때문에 일어난 고통들 또한 결국에는 받아드리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 하산과 헤어지는 순간에는 하늘에서 은이 녹아 내리듯 내리는 비는 아미르의 피난처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바바가 죽은 것을 알게 됀 라힘 칸이 아미르에게 했던 말 “착해질 수 있는 길이 있다.”라고 전한 후 아미르에 행하였던 행동들을 보고나선 나는 또 다른 공허라는 피난처로 구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공허는 평온하며 온전했다. 공허감에 빠져 있더라도 누군가의 호흡만으로도 공허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 것만 같았다. 그게 바로 온전한 공허다. 그러다 일순간 다시 현실과 단절된다. 하산의 가면을 쓴 어릴 적 아미르의 비열한 모습이 나의 본모습이다. 이기적이며 속마음을 말하지 않는다. 내가 봤던 새로운 길은 단지 환상일 뿐이였다. 다시 모든 것들을 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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