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고 싶었던 적 있어?
conconbyb 2022/04/0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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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저드 베이커리
- 구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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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 - 2022-03-27
: 8,888
도망치고 싶었던 적 있어? 나는 도망치고 싶은 때가 많은데, 사실 도망가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인지도 몰라. 도망치게 된다면... 그건 또 하나의 목적이니까 결국 도망이 아니게 될 거야. 그럼 또 다행이네. 우리 고민에 답은 하나가 아니라서, 그래서 답이 없지만 그래서 다행인, 그런 세계를 알려줘서 고마워.
많은 분들이 이미 아실 거라 생각하는! 위저드 베이커리의 개정판이 나왔다. 내용에 개정은 없고 바뀐 표지와 새로 쓴 작가의 말을 찾아볼 수 있다.
구병모는 데뷔작으로 정말 대히트를 친 작가인데, 처음 봤을 때(초딩시절)에는 이름만 보고 그가 남자인 줄 알았다. 지금에선 필명인 걸 알지만 모두가 한 번씩은 착각했을 듯.
특이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두 가지의 결말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 이건 어릴 적 내게 정말 큰 충격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방법이기도 했고 전혀 생각지 못한 방식의 결말이었기 때문이다. 웃기게도 그때 나의 결말을 꼭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역시, 그게 아닌 걸 안다.
'나'는 아주 평범한 초등학생이다. 어른의 거짓말을 싫어하고 어른들이 자신을 어리게 본다는 것을 안다. 한 편으론 어른을 증오하고 한 편으론 어른을 목표로 한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어머니의 공백에 강제로 타인을 삽입당한 '나'는 그 불편한 가족 관계에서 탈출을 꿈꾼다. 그러나 탈출을 하고 싶은 것과, 탈출을 하게 되는 건 다르다. '나'는 탈출을 하게 되는 쪽이다.
새어머니가 데려온 의붓 여동생과 관련된 사건으로 '나'는 오해를 받고 도망친다. 자신이 범인이 아닌 다른 대안이 없다는 건 굉장히 큰 공포다. 주인공은 어리지 않았지만 어렸고 길을 몰랐기에 길을 모른다.
그렇게 달려 도착한 곳은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빵집이다. 겉으로 평범해보이는 이 빵집은 각자의 소망을 들어주는 마법의 빵을 팔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점장(마법사)와 소통하며 각 빵들이 가진 마법적 힘에 대해 알게 된다. 저마다의 효능마다, 저마다의 손님들이 찾아온다. '나'는 어른 (혹은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 들의 소망을 보며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지, 나의 빵은 어떤 것일지를 생각한다. 동시에 여러 사건들이 중첩되면서 점차 많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것보다도,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 왜 그 감정이 들었는가 등등 '나'는 점차 외부에 대한 질문에 내부를 답한다. 그 과정은 수없이 되뇌었던 검열이나 혐오와는 다르다. 가끔 우리는 나를 탐색하는 것으로 나를 위로한다.
그 최종적인 과정으로 작가는 꿈을 활용한다. 꿈을 통해 아이의 권력을 보여준다. 여기서 말하는 권력이란 어릴 때만 겪을 수 있는 인간의 사고 과정들을 말한다. 이건 동심이나 순수가 아니다. 작가는 아이의 마음을 권력으로 치환해 하나의 무기로 쥐여준다. 마치 마법처럼 형체 없는 자기 위로야말로 어릴 적부터 생겨나는 당신의 무기다.
사건의 실마리를 앞에 두고 소년은 선택한다. 마법 빵을 이용하여 시간을 돌릴지, 돌리지 않을지. 긴박한 순간 작가는 독자에게 자유를 선사한다. 바로 두 가지의 경우를 모두 보여주는 것.
두 결말의 유사성은 세계를 파괴한다. 어른이라는 세계와 그 속에서의 폭력, 가해자의 일상을 보장하지 않는 친절함으로 어른의 세계를 파괴한다. 두 결말의 이질성은 인간을 위로한다. 마법을 믿는 이에겐 마법을, 조금 더 망설이는 이에겐 시간을 선사한다. 우리의 고민은 애초에 하나의 답을 달고 태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어떤 경우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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