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영이는 가족을 속였다. 유서를 남기고서는 여행을 다녀왔다. 준영이의 유서를 발견한 부모님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부모님의 수심은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식이 된 도리로 가까이에서 보기 힘들 정도였다. 난 그 충격으로 환각증상을 겪으면서 독일에도 다녀왔다.
준영이는 모두를 속였다. 준영이가 정말로, 진심으로, 진지하게 자살을 결심한 줄로 알았다.
물론 유서가 발견된 것 말고는 준영이가 정말로 자살을 감행했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었기에, 일말의 희망을 놓지는 않았었다.
평소에 큰 사고를 친 적이 없는 녀석이라서 가족들의 충격은 매우 컸었다. 그가 지금까지 친 가장 큰 사고는 대학교 2학년 때에 학고를 받은 게 거의 다였다.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준영이의 과실이 아니므로, 그가 친 사고라고 보긴 힘들다.
이 사건, 그러니까 준영이의 실종사건 또는 준영이의 가짜 유서 사건은 신문에까지 나왔다. ‘나라대 대학생, 유서 남기고 사라져’, ‘나라대 학생, 유서에서 징벌적 등록금제 비판’ 등의 제목으로 몇몇 신문에서 보도도 했다.
경찰에 실종신고만 했는데, 준영이가 나라대의 학생이며, 유서의 내용에 당시 화제였던, 나라대의 징벌적 등록금제도에 대한 언급 내지는 비판이 있었기 때문에, 그 경찰서에 출입하던 기자들이 데스크와의 상의 후에 기사를 쓴 거 같다. 나는 몰랐지만, 기자가 어머니에게 전화도 했었다고 한다.
대략 한 달 전이었다. 공항 벤치에 앉아 게이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난 눈이 침침했다. 며칠 동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자는 것도 아니고 자지 않는 것도 아닌 몽롱한 상태가 계속됐다.
일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 시뻘건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며 연거푸 커피만 마셨다. 직장 사람들은 그런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의식이 들었다. ‘얼마나 남동생을 돌보지 못했으면 자살하겠다는 유서를 쓸 때까지 방치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 모든 불행이 나의 책임이라고도 생각했다. ‘내가 조금 더 훌륭한 사람이었다면 준영이는 자살하지 않았을 거다. 부모님도 비참해지지 않았을 거다.’라고 생각했다.
비행기 탑승 시간까지 삼십분 정도 남았다. 엠피쓰리에 담아온,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돈트 에스크 와이’에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거칠게 뭉그러지는 기타 소리가 귀를 간지럽게 했다.
준영이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노래를 방에 크게 틀어놔서 볼륨을 줄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는 했다. 준영이는 음악을 스피커로 틀어놓는 걸 좋아하지만, 난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 3번 게이트에서 비트겐슈타인이 걸어왔다. 준영이의 자살로 허우적거리는 나를 다시 일상의 궤도로 올려놓은 사람이 비트겐슈타인이다.
그는 회색 정장에 푸른 넥타이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전자총에라도 맞은 것처럼 분자로 쪼개져 허공으로 사라졌다.
환각현상이다.
눈을 살짝 감거나 잠시 멍한 상태에 빠져 있으면, 비트겐슈타인이 나타났다.
준영이가 자살한지 속고 있을 때, 우연히 어느 남성잡지에서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이 환각으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내가 준영이에게 어떤 존재였는가에 대한 답을 간절히 구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트겐슈타인은 버트란트 러셀의 제자다. 그는 1889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철강 사업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했던 카를 비트겐슈타인. 하지만 카를의 재력은 가족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와 그의 가족은 매우 불행했다. 첫째, 둘째, 셋째 형이 모두 자살했다. 첫째 형 한스는 미국에서, 둘째 형 루돌프는 독일에서, 셋째 형 쿠르트는 1차 세계대전의 접전지에서 자살했다.
나보다 더 불행했을 비트겐슈타인에게서 위로를 얻었다. 난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을 잃은 줄만 알았고, 그는 세 명의 형을 잃었으니까.
내가 헤쳐가야 할 길의 표지판을 비트겐슈타인이 갖고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의 형들과 준영이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주변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것. 비트겐슈타인의 형들은 세계대전이라는 참극 속에, 준영이는 징벌적 등록금제도라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나와 비트겐슈타인에게도 공통점이 있었다. 친형제를 잃어버렸다는 것, 하지만 절망하기보다는 떠나간 형제의 몫까지 살아서, 남은 자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겠다고 발버둥을 쳤다는 것.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다. ‘철학은 생각될 수 있는 것에 한계를 그음과 동시에 생각될 수 없는 것에 한계를 그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고.
그때의 난 영원히 침묵하고 싶었다. 모든 사물과 개념들을 생각할 수 없었고, 어떠한 감정과 생각도 말로 꺼내기 힘들었다.
잠에서 깼다. 고개를 들어, 멀뚱멀뚱, 비행기 천장을 바라봤다.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온몸이 쑤셨다. 책이나 영화를 보고 싶진 않았다.
고개를 돌려서, 주변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찰했다. 복도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잠이 든 남자,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 열심히 영화를 보고 있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커플…….
“승객 여러분. 이제 곧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합니다. 안전벨트를 제대로 매고 있는지 확인해주십시오.”
자세를 고쳐 자리에 똑바로 앉았다. 푸석푸석해진 마른 얼굴을 손바닥으로 몇 번 문질렀다.
주원이가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게이트 앞에 서 있었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친구의 소개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3년 전에 직장을 그만두고 독일로 유학을 와 있다.
“점을 뺐네?”
“어떻게 알았어? 역시 자기구나.”
주원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그녀의 집으로 갔다.
둘이서 따뜻한 토마토 파스타와 오징어 먹물 빵을 먹었다. 그리곤 캔 맥주로 입가심을 했다.
맥주가 입술에서 마를 즈음 창문을 열었다.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봤다.
준영이가 떠올랐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지압을 하기 위해서 손가락으로 머리를, 쿡쿡, 눌렀다.
“한 달만 쉬다가 갈게. 괜찮겠지? 자긴 원래 일정대로 움직여. 난 독일의 애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 취재 좀 해보려고. 회사에서 시킨 건 아니고. 내가 해보고 싶어서…….”
“직업은 못 속인다니까.”
그녀도 나의 환각증상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러웠다.
“난 요즘 논문 때문에 정신이 없어.”
“독일인 남자친구가 생긴 건 아니지?”
“남자친구들은 많아. 자기는 아주 특별한 사람인 거고. 자기는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인 거고.”
짐을 풀고, 주원이와 밖으로 나왔다.
골목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했다. 거대한 박물관이나 신전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주원이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마트 앞에서 서성였다.
눈길이 머무는 곳에 금발머리의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광합성을 하고 있는, 신비스러운, 오후의 나팔꽃처럼 보였다.
그녀는 저녁의 햇볕이 따가운지 작은 손바닥을 펼쳐서 햇빛을 가리려고 했다.
“내일 아침으로 스테이크를 해줘도 괜찮겠지? 난 이제 거의 적응해서 괜찮긴 한데…….”
“응? 괜찮아. 그런데 오늘 주말이니?”
“아니. 평일이야. 왜?”
“애들이 이른 시간인데 집에 있어서…….”
“쟤넨 원래 그래. 독일 애들은 수업이 일찍 끝나. 고등학생쯤 되는 애들도 오후 2시면 수업이 거의 다 끝나. 수업이 끝나면 취미활동을 하고, 그렇지, 뭐……. 친구나 가족들이랑 놀고……. 음……. 처음에 한국인들이 독일에 오면 그런 거에 적응을 못해. 나도 그랬어.”
“특이한 나라네.”
“아프면 학교도 가면 안 돼. 아픈데 학교에 가면, 병원균을 친구에게 옮길 수 있다고, 싫어한다기보다는 금지해. 그건 비상식적이며, 매우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것이지. 병이 다 나았다는 진단서를 제출해야,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어.”
“그거 괜찮은 거 같은데…….”
“아이스크림이나 먹을래?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을 먹는 게 최고야. 준호 씨, 이것들 좀 들고 있어봐.”
주원이는 아이스크림가게로 들어가더니, 초콜릿과 땅콩가루가 듬뿍 얹어진, 꽤 큰 아이스크림 두 개를 들고 나왔다.
“걸으니까 좀 낫지?”
“너랑 장 보는 것도 좋고, 얘기하는 것도 좋고. 기분이 한결 좋아졌어. 독일의 애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어.”
“내가 유학을 와서, 자기랑 도련님에게 신경을 많이 못써서 미안해. 다 잘 될 거야. 준영 씨가 진짜로 자살을 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잖아.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일단 자기부터 지친 마음을 좀 풀어.”
차창을 열었다. 차안으로 한 무더기의 상쾌한 바람과 한 다발의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왔다.
뒤쪽 시트에 놓은 바구니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꺼냈다.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플라타너스들을 보면서 샌드위치를 오물조물 씹었다.
“준영이는 자살한 게 아닐지도 몰라. 비밀조직의 음모에 빠져서 억지로 유서를 남긴 걸 거야. 아니다. 준영이에게 적용하기에는 너무 끔찍하다. 우리를 속이고 하와이나 괌 같은 곳에서 숨어서 지내고 있을지도 몰라. 신분을 위조하고 성형수술을 하고, 국가를 위한 비밀작전을 수행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국정원 같은 데 취직을 한 건지도 몰라.”
주원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움켜잡고서는 묵묵히 앞만 봤다. 그녀는 운전에 몰두하고 있었다.
준영이에 대한 음모설이 007 시리즈 같은 공상이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을 지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말이라도 누군가에게 하지 않으면, 숨이 막혀서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준호 씨. 아우토반이야.”
“아우토반? 속도 무제한인 도로?”
“아우토반이라고 모두 속도가 무제한인 건 아니야. 무제한 구간이 있고, 제한 구간도 있어. 무제한 구간에서도 권장 속도가 있고. 그러니까 일반도로랑 별로 다를 건 없어.”
“양파랑 비슷하다. 독일은 까면 깔수록 뭔가 계속 나와.”
“그건 뭐든지 다 그렇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원래 다 어느 정도는 다층적이지 않아? 그런데 준호 씨. 이제야 좀 준호 씨 같다.”
아우토반에 있다고 하니까, 잊고 지냈던 일이 떠올랐다.
나와 준영이의 어렸을 적 꿈은 카레이서였다. 둘 다 독일의 전설적인 드라이버인 미하엘 슈마허를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어렸을 때, 우리가 슈마허에게 보인 열정은 대단한 것이었다. 슈마허의 포스터를 방에 붙여놓고, 슈마허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카레이싱 게임도 즐겨했다.
둘 다 슈마허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준영이가 날 따라한 것에 더 가깝기는 하지만…….
“다 왔어, 준호 씨. 투비아 공원이야.”
홀로코스트에서 수천 명의 유대인들을 살렸다는, 투비아를 기리는 조각상들이 잔디밭에, 띄엄띄엄, 놓여 있었다.
식탁에서 빼온 테이블보를 보리수나무의 그늘 아래에 돗자리삼아 깔았다. 피크닉 가방에서 샌드위치, 피자, 과자, 사과와 물통을 차례대로 꺼내서 테이블보 위에 늘어놓았다.
주원이가 파슬리가 얹어진 피자 한 조각을 떼어서, 내게 줬다.
우리를 둘러싸고, 바람이, 아주, 살랑살랑, 불었다.
피자를 손에 들고서, 물통을 찾으려고 고개를 숙였다. 테이블보 위로 개미 한마리가 올라와 있었다. 작고 검은 일개미가 빵부스러기로 다가갔다. 개미가 빵부스러기를 몇 번 건드리더니, 빵부스러기를 끌고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평화로웠다. 나를 둘러싼 모든 존재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주원이가 피자를 오물거리면서 내 뺨에 입을 맞춰줬다.
“형은 왜 살아?”
“답답하다. 창문을 좀 열게.
담배를 한 대 필래? 주원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지만,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니까 이해해줄거야.
형도 아주 평범한 대학생활을 했지만, 너처럼 1학년 때부터 토익을 공부하고 그러진 않았어. 우리 위에 선배들은 대학만 졸업해도 취직이 잘 되는 분위기였어. 호황기였거든.
난 IMF가 와서 조금 힘들었어. 이직을 하려고 하는데, 수습기자를 뽑는 방송사가 한군데도 없는 거야. 경력으로 움직이기엔 경력이 너무 짧았고……. 난감했지. 한 달에 30만원을 받으면서 하루에 12시간씩 일한 적도 있어. 거의 1년 정도를 그렇게 산 거 같아.
음…….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된 희망을 제시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
나도 너에게 인생의 밑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얘기해준 적이 없잖아.
밑그림이 참 중요하지만, 내게 밑그림 따위는 사치였어. 상상할 수 없다기보다는 없으니까 생각할 수 없는 것에 더 가까웠어. 그럴 여유가 없었어. 우린 모두 너무 바빴어.”
“형의 말이 맞아…….”
“한줄기의 빛도 없는 골방에 갇힌 상태로 지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더라. 입학하자마자 토익 공부를 하면서 취업하기 위한 각종 활동들에 파묻혀 살았잖아. 어학연수, 봉사활동, 인턴, 그런 것들을 하면서 말이야.
끝없는 경쟁 속에서 무언가를 갈망할 권리조차 박탈당했을 수도 있어. 꿈을 잃어버린 거지.
우리는 그게 아니라고, 우리에 비하면 넌 얼마나 행복하냐고, 남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너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모르고.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꾸리는 필수적인 요소 같은 거, 연애, 우정, 자신만의 목표 찾기, 그런 것들을 가르쳐주는 것은 잊어버리고…….”
담뱃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하엘 슈마허도 항상 챔피언은 아니었잖아. 부상으로 복귀를 미룬 적도 있잖아. 실격을 당한 적도 있고. 1위였다가 하위권으로 밀린 적도 있지.”
준영이가 실종됐을 때, 우리의 교육제도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거기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어디로든 발을 내딛고 싶었다.
준영이가 징벌적 등록금제도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걸 안다. 준영이처럼 평화로운 시대만을 살아온 청년에게는 그것이 큰 벽으로 다가왔을 수 있다.
녀석이 유서를 남기고 사라지고서, 녀석의 방에서 우연히 녀석의 일기장을 봤다. '등록금 때문에 같이 공부하는 친구와 친해지기 힘들다.' '오늘도 상원이와 크게 다퉜다.', 이런 문장들을 읽었다.
OECD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의 교육수준은 1위이다. 핀란드는 2위이다. 어느 날 어떤 자리에서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한 교육자가 핀란드의 한 교육자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어떻게 따라오실 건가요?’ 핀란드의 교육자가 이렇게 답변했다. ‘핀란드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뭔지 아세요? 핀란드 학생들은 행복하고, 한국 학생들은 불행하다는 것이에요.’
핀란드의 교육은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 그들은 고학력의 학생들보다 저학력의 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떨어트리는 교육이 아니라 끌어올리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 우월반의 수업은 없지만, 우리가 열등반으로 부르는 수업은 있다. 그들은 그것을 당연한 상식이자, 윤리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어울리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반대다. 저학력의 학생들은 일치감치 평균 이하라며 밑으로 떨어트린다. 우월반과 열등반으로 나눠서, 열등반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빼앗는다. 좋은 환경과 각종 특혜는 우월반의 아이들의 몫이 된다. 우리는 그것을 상식이라고 말한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주원이의 핸드백에서 차키를 꺼냈다.
한국 면허가 독일에서도 통용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차를 끌고 좀 달려야했다. 안 그러면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부르릉, 낮게 으르렁거리는 녀석의 엔진소리에 마음이 놓였다. 살 거 같았다.
끄윽, 트림이 났다. 딱 맥주 캔 한 개를 먹었지만, 경미한 수준이라고 해도 음주운전은 안 될 거 같았다.
얼마 안 가서, 도로변 공터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밤하늘엔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초코쿠키 위에 뿌려진 땅콩 조각처럼 보였다.
쌀쌀했다.
술도 깨고, 추위도 이기고 싶어서, 뛰었다.
어둠 속으로 한 발자국을 내딛을 때마다 내 안에 고인 무언가가 출렁였다. 세밀한 영상으로까지는 떠오르지 않지만, 준영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등산복 차림의 비트겐슈타인이 나타났다.
그는 파란색 등산화, 테가 둥그렇게 늘어지는 파란색 등산용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물통을 담았는지 아니면 책을 넣었는지, 작은 등산용 가방도 메고 있었다.
“당신은 참 대단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었잖아. 하지만 당신도 형들의 자살로부터 자유롭진 않았어.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았을 때, 당신은 지인에게 이렇게 말했어. ‘암에 걸렸다는 게 놀랍지 않아. 난 더 살고 싶지 않아.’ 이건 모든 걸 포기한 인간이 할법한 말이야. 당신이 형들의 자살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명백한 증거이지.”
형들의 자살은 여러 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모되어, 그를 괴롭혔을 거다.
‘괜찮은 거니?’, ‘너도 자살하는 건 아니지?’ 무심코 타인들이 뱉은 이런 말들은 비트겐슈타인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을 것이다. 누구도 풀 수 없는 미분문제가 되어 그의 마음에 적혀 있었을 것이다.
물안개가 올라왔다.
‘근처에 저수지나 호수가 있나봐.’
조금 걸었다.
호수인지 저수지인지, 거대한 물웅덩이가 보였다.
숨이 막힐 때까지 그 주변을 뛰었다.
숨이 차서, 팔을 무릎에 대고 벤치에 앉아 헉헉거렸다.
하늘 한쪽에 떠 있는 달을 힐끔 봤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이국의 꽃 위에서 천천히 기어가는 작은 달팽이를 봤다.
인공의 빛이 장승처럼 곳곳에 서 있었다.
셔츠를 끌어올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가슴과 배에 맺힌 땀을 손으로 털어냈다.
다시, 현기증이 날 정도로 뛰었다.
바람으로 만든 듯 투명하며, 파란 잎들이 약간 섞인 버스가 왔다.
내가 어리둥절해서 타지 않고 머뭇거리자, 준영이가 내렸다. 뒤이어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리버 피닉스도 내렸다. 비트겐슈타인과 축구공을 든 히스 레저도 내렸다.
‘형. 나랑 에이미, 피닉스가 한 편이고, 형이랑 비트겐슈타인, 레저가 한 편이야. 이해했지?’
히스 레저가 내게 공을 패스했다. 난 준영이에게 패스.
비트겐슈타인이 내 팔을 툭 쳤다. ‘정신을 차리라는 신호인가보다’했다.
준영이는 피닉스에게로 패스, 피닉스는 우리 골문 앞에 와 있던 준영이에게 패스. 준영이는 기회라는 듯이 발을 높이 들어 골대를 향해 힘껏 슛.
골이었다. 난 환하게 웃었지만, 비트겐슈타인과 히스 레저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곧 웃었다.
이건 게임이니까. 게임에 불과하니까.
고개를 흔들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채 헉헉거리며, 나 홀로 공터에 쓰러져 있었다.
헤어짐에는 항상 흔들림이 동반되게 마련이다. 나를 위한 변명이다. 남은 생을 꾸역꾸역, 그게 말라비틀어질 정도로 구차한 것이라고 해도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내 안의 부패한 것들을 모조리 몰아내고, 혈액형이 바뀔 정도로까지 나를 개조해서라도 살아남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이라도 좋아. 내 삶을 즐길 거야. 삶은 문제집이 아니야. 항상 컴퓨터용 사인펜을 품에 넣고 다니며, OMR카드의 작은 동그라미 밖으로 벗어나지 않으려고 조마조마하게 살 필요는 없어.
물론 가끔 그래야 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곧 인생이 되는 순간엔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버려.’
“새벽에 나가서 뭐 한 거야?”
“에이미 와인하우스랑 축구했어.”
“이따가 신경정신과에 같이 가자, 자기야. 거부감을 갖진 말고. 독일인들은 신경정신과에게 편하게 다녀. 친한 친구한테는 스스럼없이 얘기도 하고, 그렇지, 뭐…….”
주원이가 당근과 브로콜리가 들어있는 수프를 줬다.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
기침이 났다. 거의 쓰러질 때까지 뛰었다. 선선한 아침 공기에 그대로 땀을 식혔더니 감기몸살이 왔었다.
물을 한 모금 입에 물고, 주원이가 준 감기약을 탁탁 털어 넣었다. 나도 이제 마냥 강철체력은 아니다.
“수업을 듣고 올게. 영화도 보고 그래.”
다리가 약간 저렸고, 머리도 아팠다.
유자차가 먹고 싶었다.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주전자에 물을 넣고,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았다. 주원이가 유자차는 찬장에 있다고 그랬다.
병들이 서로 부딪혀 달그락거렸다.
주전자의 물이 끓으면서 수증기와 함께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머그컵에 유자차를 한 숟가락 듬뿍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유자차의 새콤달콤한 냄새와 뜨거운 김이 얼굴로 쏟아졌다.
그리고 엠피쓰리를 컴퓨터의 스피커에 연결했다. 스피커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음악을 잔잔하게 틀었다.
유자차를 몇 모금 마시자, 목이 편안해지면서 두통도 가라앉는 거 같았다.
따뜻한 물로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다. 화장실 거울에 나를 비춰봤다. 주름살이 늘었지만, 아직 탱탱했다. 20대 후반이라고 해도 믿을 거 같았다.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려 덮었다.
눈을 감았다.
검푸른 바다가 보였다. 난 잠수부가 되어 해저로 들어갔다.
흰긴수염고래를 만났다. 손을 뻗어서, 지방이 듬뿍 저장된 흰긴수염고래의 배를 만졌다.
흰김수염고래가 준영이의 목소리로 말을 했다.
“형, 나 그때 많이 아팠어. 몸보단 마음이 아팠어. 형이 나한테 왜 그럴까, 얼마나 힘들면 나한테 그럴까.
형 때문에 자살한 건 아니야.
우리도 그렇게 넉넉한 형편은 아니잖아. IMF 때, 부모님이 하시던 화장품 가게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서 빚이 생겼잖아. 그 빚을 아직도 다 못 갚았다는 걸 나도 알아. 부모님도, 형도 힘들게 일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는 걸 뻔히 아는데, 내 등록금 부담까지 주긴 정말 싫었어.
그런데 성적이 낮으면, 성적이 높은 애들보다 등록금을 더 많이 내라잖아. 4.3점 만점에, 학점이 3.0 미만이면 최저 6만원에서 최고 600만원까지 등록금을 내야해. 0.01학점이 부족할 때마다 6만원씩 추가돼.
가족들에게 이런 등록금 부담을 주기 싫은 게 어디 나뿐이었겠어? 다들 그러니까, 나중엔 친구고 후배고 선배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지더라고. 관계라는 것 자체가 희미해지더라고.”
“그렇다고 유서를 쓰니? 겁쟁이야? 바보야? 우리가 너한테 그 정도밖에 안 됐어. 그렇게 쉽게 버려도 되는 사람이야.”
얼마나 잤을까.
오른쪽 어깨에 뻑뻑한 통증이 왔다. 그래서 잠에서 깼다.
팔 굽혀 펴기를 했다. 20번쯤 하니까, 어깨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왔다.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했다. 독일의 애들은 학교도 일찍 끝난다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건드렸다.
베이지색 니트를 입은 비트겐슈타인이 윙크를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바람으로 만든 듯 투명하며, 파란 잎들이 약간 섞인 버스 옆에 서 있었다.
어디로든지 떠나고 싶어서 그와 함께 버스에 탔다.
버스의 내부도 투명했다. 발 아래로 바퀴와 바닥도 보였다. 엔진 같은 부품들도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버스의 손잡이마저도 투명했다.
손잡이에서 물방울이 밑으로 똑똑 떨어졌다. 하지만 물이 바닥에 고이지 않았다. 버스가 스펀지처럼 물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내 손을 봤다. 실핏줄이 보였다. 배를 봤다. 심장과 폐가 보였다. 나도 투명해져 있었다.
버스는 마치 에너지나 빛으로 이뤄진 것처럼 물질들을 통과했다. 거리의 사람들, 승용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거 같았다. 투명한 버스와 난 그들에게서 지워져 있었다.
숲에 도착했다. 주황빛으로 변해가는 햇빛을 받으며, 숲속으로 돌진했다.
“투명한 버스의 운전사가 누구인지 알아? 당신이야. 투명한 버스가 왜 숲으로 왔는지 알아? 당신이 숲으로 가길 바랐기 때문이야. 당신의 무의식적인 바람을 투명한 버스가 읽었기 때문이야.
투명한 버스에 타면 아무도 당신을 볼 수 없어. 그리고 어디로든 갈 수도 있어. 당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갈 수 있어. 동물의 몸속으로도, 우주로도, 책속으로도 갈 수 있어.”
무한대의 기호가 얌전히 누워있는 괄호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대학생활에 회의를 느껴서 주변의 관계를 모두 정리한 채 군대에 갔었다. 나보다 네댓 살이나 어린 선임들의 폭력에 시달렸다. 폭언은 기본이고, 철모로 머리를 얻어맞는 일도 종종 있었다. 계급이 낮은 자를 복종시키기 위한 각종 얼차려들은 과연 인간이 선한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만들었다.
그럴수록 나는 물들지 않으려고, 후임들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대했다.
이상하다는 걸 느낀 건, 제대 후였다. 입대하기 전의 나로 돌아가지질 않았다. 누군가 밥에 독을 탔을 거라는 망상에 빠져서 밥을 먹을 수 없던 적도 있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심하게 대하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검은 빨래와 흰 빨래는 구분해서 빨아야한다는 준영이의 일상적인 말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것조차도 명령으로 들렸다.
준영이가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어서 다퉜다. 그때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했다. 준영이를 발로 걷어찼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서는 사과를 했지만, 나도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준영이도 사과를 받아줬었다. 하지만 그 일 때문에 시골로 내려가서 반년 정도 혼자 공부하면서 살았다. 죄책감과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그 행동을 했던 것이 준영이를 더 외롭게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