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어 엿보기
다이어리 2003/04/1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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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작가의 '일기'를 들추는 독자라면 뭔가 그이의 내밀한 것을 엿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작가의 일기나 편지글 같은 사적인 글들은 그이의 일상과 고민을 픽션에 기대지 않고 거침없이 발설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적인 글들을 통해 독자는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해의 층을 두텁게 하기도 한다.
버지니어 울프의 '일기'인 이 책은 작가의 내밀한 고통의 진상을 확인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겐 조금 부족할 지도 모른다. 긴 세월의 육성 중 단 한 권의 분량으로 발췌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덕분에 우리는 단 한 권으로 울프의 사적인 관계와 창작 과정, 일상의 사건에 대한 감정들을 오롯이 짐작할 수 있다.
블룸스베리 동료들과의 우정과 논쟁, 매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비평가의 논평에 긴장하고 친구의 죽음 이후에도 우정과 라이벌 의식 사이에서 서성이는 기록들은 어쩔 수 없는 인간 '버니지어'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이 책은 비평가와 소설가로서 정체성을 확장시켜 나가는 버지니어의 작업 일지로 읽혀도 좋을 것이다. 매 작품을 쓰는 동안 머리 속에 질주하는 다른 작품의 아이디어를 쫓는 기록을 보노라면 글쓰기가 또다른 글쓰기를 부르는, 한 작가의 창작 형태를 짐작할 수 있다.
고전문학과 동시대 문학을 종횡무진 오가는 왕성한 독서, 매일매일의 글쓰기는 허공의 시간에 다리를 잇는 버지니어 자신만의 즐거운 노역으로 읽힌다. 비록 '이것들이 다 무슨 소용 있을까'라는 반복되는 글귀로 허무함의 심정을 한켠에 남기더라도.
이 책을 통한 또 하나의 재미는 버지니어를 통해 1920년- 40년대를 전후한 영국 문학계의 지평을 유추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기를 통해서 뿐 만이 아니라 책 말미에 덧붙여진 '인물 해설'이나 친절한 '각주'들은 독자의 이해와 흥미를 돋운다.
덧붙여 버지니어의 시선으로 T.S 엘리어트, E.M 포스터, 토마스 하디, 예이츠, 프로이트를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2차 대전의 포격이 다가오는 소리에 점차 불길한 예감에 젖어드는 그녀의 심리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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