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acuwjd님의 서재
  • 그래도 춤을 추세요
  • 이서수
  • 15,300원 (10%850)
  • 2025-08-20
  • : 2,500
많은 분들이 읽고 글을 남겨주신 이서수작가님의 세번째 소설집 「그래도 춤을 추세요」를 그 자리에서 한순간에 읽은 기분은 뭐랄까, 이루 말할 수 없는 데 8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이 14년 전 3개월 남짓한 물류센터에서의 일뿐이었지만 한 편 한 편이 와닿았고 그 안에 담겨진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아서 각 단편에서 인상깊었던 구절들만 여기에 올리고 글을 마무리할까합니다.

(이어달리기)
어려운 글 말고 그냥 내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잘난 척하는 글 말고 하루를 낭비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깨닫는 글 말고 그저 담담하기만 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의미 따위 없는 글. 그냥 내가 이렇게 산다고 적는 글. 우리 외엔 아무도 읽지 않는 글. (31쪽)

(춤은 영원하다)
어느샌가 버티는 것과 살아가는 것이 동의어가 되었다.
(......) 나는 몸부림을 쳐야지만 겨우 남들처럼 살 수가 있었다. (45쪽)
늙지 않는 마흔이라고. 세상에 기대하는 것 없이, 과도한 욕심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돈을 벌며 차츰 늙어가되 꼰대는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젊은 마흔이라고. (53쪽)

(광합성 런치)
대표가 너무 까칠해지지 않도록 마음의 수분을 적절하게 보존해주고, 직원들의 열을 밖으로 내보내 녹는 것을 방지해주는 사람. 그러나 버려질 땐 껌 종이처럼 꼬깃꼬깃하게 뭉쳐져 가차없이 던져지는 존재, 그게 나라는 걸. (93쪽)

(AKA 신숙자)
서운한 마음을 구멍난 양말 얘기로 감추는 신숙자는 어떤 사람인가. 코가 오똑한 미인. 배움은 질색하는 사람. 예술을 향유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은 노인. 초상화 속 헬레나 루빈스타인처럼 여러 겹의 얼굴을 갖고 있는 여성. 별나고 이상하며 가끔은 기이하기까지 한 엄마. AKA 신숙자. 신숙자라고도 알려진 누군가. 그러나 밋밋하고 단순한 이력서는 그것을 조금도 드러내지 못한다. 나 역시 숙자씨의 진짜 얼굴은 모른다. 신숙자인 척하며 문장을 길게 써봐도 펄럭이는 깃발처럼 형태가 자꾸만 변해 도무지 부동 상태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뾰족한 핀으로도 뚫리지 않아 박제가 불가능한 나비 같다. (143쪽)

(운동장 바라보기)
나는 경계가 없는 사람이고 용감한 사람입니다. 국경 너머 사랑과 행복을 찾아다니는 지구 시민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에 있고, 너무나 많습니다. 앞으로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152쪽)
(......) 나를 개척자라고 불러주세요. 나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이곳에 온 사람입니다. 한국은 내가 어머니가 되길 바라지만 나는 그저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161쪽)

(잘지내고있어)
잘 지내고 있어? 아버지는 내 안부를 묻고 있었다. 그러나 이젠 이 메시지에서 두 가지의 다른 의미가 느껴졌다.
(다시 돌아올 것처럼) 내가 없는 동안 잘 지내고 있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내가 없더라도 잘 지내고 있어. (213쪽)

(미식 생활)
알은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만 깨지는 게 아니다. 평범한 맛일지라도 소중한 기억을 건드리면 반드시 깨진다. 그리고 알이 깨졌다고 말하고 싶은 상대가 있을 때도, 없는 줄 알았으나 뒤늦게 발견했을 때도, 있는 줄 알면서 망설였을 때도, 누군가 계속 지켜본다는 걸 알면 알은 기어이 깨진다. (251쪽)

(청춘 미수)
쉽게 돈을 벌면 나중에 다른 노동을 못하게 된다는 말이, 몸을 갉아내듯이 쓰고, 원인 불명의 질환에 시달리고, 수시로 정신을 빼앗기고, 나를 철벽 방어해야 하는 위험한 일터에서의 노동, 그런 노동에 영영 적응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던 엄마의 말이. (278쪽)
사람은 혼자 있으면 안 돼요. 생각이 한군데로 고이거든요. 흐름이 없는 물웅덩이처럼, 그것도 작디작은 물웅덩이처럼 고인 채로 가만히 썩게 돼요.
(285쪽)
이서수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