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의 내용 중 학교에서 시를 쓰는 장면이 있습니다. 시의 주제는 ‘평화’. 시작하는 문장과 끝나는 문장이 정해져 있고, 글씨의 기울기와 사용할 수 있는 종이의 개수, 글 쓰는 자세까지 모든 게 정해져 있으며. 그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체벌이 따라오기 때문에 아이들은 섣불리 글을 적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밀리아와 아이들이 글짓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평화를 반대한다거나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아무 할 말이 없었을 뿐.
평화에 대해 아는 게 뭐지?
누구한테 물어볼 수 있지?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어밀리아가 아는 사람 누구도
평화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노 본스 51쪽
보호받아야 마땅한 아이들조차 학교에선 선생님의 체벌을 피하고자, 집에선 밤마다 찾아오는 외부인에게 숨기 위해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70년대 벨파스트. 이 시기를 살아가는 모든 이가 평화를 알지 못합니다.
1953년 휴전 협정으로 한국과 북한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입니다. 꽤 오래전에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모두가 긴장 상태에 들어갔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뉴스에도 밥을 먹고, 회사에 가고, 약속을 잡으며 일상을 이어 나가지요.
얼마 전, 한 커뮤니티에서 차라리 북한과의 전쟁을 바란다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분단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젠 완전히 ‘남’으로 느껴지고, 우리나라가 인구에 비해 땅도 좁다며 정당화하기도 하고.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논리적인 척 번호까지 달며 나열하는 댓글에는 ‘당연히’ 우리가 이길 거라는 예언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어나지 않은 전쟁보다 이기는 전쟁이 더 좋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인생을 게임처럼 리셋할 수 없듯. 전쟁 역시 우리가 이기면 끝나는 별거 아닌 일이 아닙니다. 무너진 자연과 건물, 전기와 물을 복구하는 것부터. 목숨을 잃은 생명을 수습하고, 살아남았지만 모든 걸 목격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 설령 이긴 전쟁이라고 할지라도 그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방에서 벌어지는
동기 없는 범죄 가운데
또 하나가 일어났을 뿐.
노 본스 41쪽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더 이상 아무 일도 아니게 되고. 그것을 방관하거나 못 본 채 척 지나가는 것이 일상이 되어. 어떤 것이 평범한 일상인지 알지 못하는 삶. [노 본스]를 읽다 보면 한 방송에서 유시민 작가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전쟁의 반대는 평화가 아니라 일상이다.” 만약 전쟁에 대해 가벼운 마음을 안고 있는 분이 있다면 무너진 삶이 일상이 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길. 이 책을 읽는 내내 ‘전쟁’은 장난으로도 사용할 수 없는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