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이었나, 아버지 따라서 "국제무역전시장"(아직 "코엑스" 아니었다)에서 열리는 중소기업 신제품 박람회인지 뭔지 가서 처음 본 물건 중에 "오양맛살"이란 게 있었다. 지금은 맛살이란 거, 여기저기서 다 내는 모양인데, 하여간 그때는 그것밖에 없었고, 처음에는 별다른 호응이 없다가 수년 뒤부터 갑자기 "맛살 시장"이 생겨났는지 여러 업체에서 경쟁적으로 비슷한 제품을 내놓게 되었다.(그러고보면 그 맛살이란 것, 오양이란 회사의 자체개발품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당시 내가 처음 먹어본 맛으로는 뭔가 오뎅 같지도 않고 햄 같지도 않은 것이 요상야릇했는데, 지금은 김밥부터 샐러드를 비롯해서 이런저런 "간단한 요리"(결코 "복잡한 요리"에 들어가는 법은 없더라)에는 꼭 들어가는 필수 재료가 되었다. 그것 참. 사람들의 입맛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현란한 광고 선전 선동의 결과인지는 모르겠다. 아참, 그때 그 전시장에서 본 신제품 가운데 역시 처음에는 반응이 미미했다가, 수년 뒤에 갑자기 "돌풍"을 일으키며 지금은 집집마다 한 통씩은 다 있는 "필수품" 대열에 끼어든 또 한 가지 물건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옥시크린"이었다.(전시장에서 나눠주던 옥시크린 샘플을 어따 쓰는지 몰라 한참 갖고 있다가 버렸다는. 그 당시 그 업계의 지존은 "하이타이"였다. 수퍼타이도 비트도 아닌 오리지날 하이타이...)
네이버 첫화면에 모 중견기업 창업자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소동이니 뭐니 하는 뉴스가 나오기에, 뭔가 싶어 들어가보니 바로 오양수산 창업자인 김 아무개 씨 이야기였다. 창업자 겸 회장이 투병 중에 장남이 부회장으로 경영을 승계한 모양인데, 대주주인 어머니와 다른 형제들과 갈등이 심했는지, 아직 장례를 마치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주주들이 지분을 경쟁업체인 사조산업에 매각했고, 졸지에 경영권이 넘어가게 되자 회사 임직원들이 황당해 하며 일종의 실력저지로 장례식장을 점거했는지 어쩌는지 하는 모양이다. 그것 참... 무슨 기업 드라마나 <시마과장>의 한 대목도 아니고... 하여간 두고두고 이야기될 만한 황당한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유족 측에서는 100억원 대의 주식 매각 대금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다는데, 글쎄, 굳이 그렇게 드라마틱(말 그대로)한 방법까지 취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돌아가신 양반의 장례식장에서도 요란법석을 떨게 만들다니,그것도 좀 망자에 대한 예의는 아닌 것도 같고... 이거 여차 하면 장례절차도 지연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드니까, 문득 더운 초여름에 시황제 이야기가 생각나서 좀 오싹하기도 했다. 뭐냐면, 시황제가 지방 순시 도중에 사망했는데, 유언은 장남을 왕으로 삼으라는 것인가 그랬는데, 주위의 권신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해 얼빵한 차남을 왕으로 삼으려고 일단 왕의 사망 사실을 숨기고 서둘러 수도로 향했는데, 한여름이라 시체 썩는 냄새가 나니까 그걸 숨기기 위해 생선을 잔뜩 사다가 왕이 탄 수레에 함께 싣고 갔다던가, 뭐 그런 황당엽기스러운 일화가 있었다는 거다. 어째 이번 뉴스를 보니 그 일화가 떠오르는지... 어차피 수산물 가공업체로 일가를 이룬 양반의 이야기라서 그런가...
그나저나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어느 뉴스의 말미에 고인을 "오양수산 및 법문사 창업주"로 소개한 부분이었다. 오오. 법문사라면 "신판," "개정판," "신정판," "신수판," "삼정판," "개정신판" 등 갖가지 머릿글자를 달고 나오는 온갖 <원론>, <총론>, <개론>, <각론>, <개설>, <총설> 류 대학교재의 산실이 아니던가. 보도에 따르면 고인은 1953년에 법문사를 설립하고, 1966년에 오양수산을 설립했다고 하니. 그럼 나중에 비록 엉뚱한 길(?)로 나아가긴 했지만 그래도 원래는 "출판인"이었다는 뜻인가 싶다. 법문사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이 회사는 세 가지 임프린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학교재 전문 법문사, 사전류 전문 민중서림, 그리고 교과서 팀이었다. 이중 민중서림은 원래 "민중서관"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던 사전류 전문 출판사가 1973년에 문을 닫자, 그곳에서 내던 책을 인수해서 "민중서림"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출판사를 차린 것이라고 한다. 오오. 또 이런 스토리가 있었다니. 오늘 처음 알았다. 그나저나 민중서림이라고 하면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이 2005년엔가, 한국의 역대 연봉자 가운데 10위권 안에 든 사람이 바로 민중서림 직원이라는 일화였다. 다시 한 번 인터넷을 뒤져보니 2005년 9월의 어느 뉴스에 국정감사 당시 건강보험료 납부액 추정 고액 연봉자 순위에서 김앤장, 삼성전자, 씨티은행의 뒤를 이어 민중서관의 K모씨가 9억여 원으로 5위에 올랐다고 나와 있다. 예전에 처음 그 뉴스를 접할 때에는 어디서 들었는지 "사전 전문 편집자"라고 해서, "오오, 출판사 직원이 억대연봉자라는 꿈 같은 일이..." 하고 무지막지 감탄했는데, 글쎄, 오늘 보니 오양수산 창업자의 차남 김 모씨가 현재 법문사와 민중서림 대표로 있다고 나오는 걸 보니, 혹시 그 고액연봉자 K모씨와 동일인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창업주나 사장은 따로 있고, 정말 연봉 10억씩 받는 고액 편집자가 있는지도 모른다. 내 추측일 뿐이니까.)
하여간 오늘 오양수산-법문사-민중서림의 관계를 알고 보니, 단순히 "사전 출판사가 웬 돈이 그리 많아서 억대 연봉 직원을 둘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도 의문이 어느 정도는 풀리는 느낌이다. 물론 사전이나 교재 출판사는 단행본 출판사와 매출 단위 자체가 다르기도 하겠지만, 뭐, 모기업이 어느 정도 빠방한 곳이면 출판사 치고는 무척이나 안정된 구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오양수산 정도면 아직 대기업 반열에느 못 들어가는지, 뉴스 보도마다 "중견기업" 운운 한다. 도대체 어느 정도기에 중견기업인가 보았더니 연 매출액이 약 1000억원 정도 된다고. 검색해 보니 보통 단행본 출판사 가운데 1등 먹는 민음사가 작년까지인가 연 매출액 400억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하긴 민음사가 200억 매출로 "부동의 1위"를 굳히던 시절, 당시 일반 중소기업 중에서는 유동골뱅이가 200억 매출의 "중소기업"이었다니, 뭐, 이것도 그럴 듯하다. 뭐, 책 팔아서 그 정도 규모로 키웠으니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뭐, 맛살 팔아 중견기업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문득 출판계라는 곳, 참으로 아기자기 깜찍발랄 귀여운 규모가 아닌가 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출판인 가운데 종종 "외도"(치정이 아니라 사업상의) 하다가 쪽박 차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들은 것 같은데, 다들 "맛살" 대박이라도 노렸던 것일까. 궁금하다.
하여간, 지금 돈 없어 쩔쩔매는 1인 출판사 사장님들도 힘들 내시길... (이 글을 읽고 힘이 날까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