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논리에 사로잡히기는 「폴이라 불리는 명준」에서 아들진욱이 죽은 원인이 앤디 워홀에게 있다고 믿는 명준의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명학수는 실체적인 진실 없이 상상적으로 구조화된 세계에서는 정체성 역시 체계의 산물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데 더 공을 들이는 듯하다. 소설은 오리지널리티를 흔드는작품들을 내어놓은 앤디 워홀을 등장시킴으로써 지금의 우리에게고정된 정체성은 없으며 단지 어느 체계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그것이달라질 뿐임을 강조한다. 미국 이민 2세대인 이명준이 ‘Paul Lee‘
가 되어 더 이상 명준으로 불리지 않고, 이후 앤디 워홀을 연기하는배우로서 (연극이 끝난 후에도) 앤디 워홀의 가명인 ‘밥 로버트‘나
‘앤디‘라고 불릴 때, 무엇이 진짜 그의 이름이며 그의 본질이라 할 수있을까. 이러한 문제를 소설에서 다룸으로써 명학수는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가 그저 어떤 체계로 구성된 산물에 불과함을 강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