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불멸을 원하는 영웅들만이,
안으로 돌린 눈으로
내면의 진아를 본다.
- 까타 우파니샤드
P30.
나는 오직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모습 그대로 살고 싶었을 뿐이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것을 살아보려고 하는 의지야말로 우리가 진정한 개성화로 성큼 다가가는 한걸음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노력한 결과로 얻거나 도달하거나 성취하거나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표현할 수 없는 것임은 물론이요, 붙잡을 수도, 담아둘 수도, 체험할 수도 없습니다.
의지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추구는 여러분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추구는 이미 존재하는 그것이 자체의 고유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을 방해합니다.
이 상태는 앎이 없는 자연스러운 상태입니다.
그것은 이미 존재합니다.
여러분은 원래의 자리에서 한 걸음도 떼지 않았어요.
본래 한걸음도 내디딜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짓, 이해하려고 애쓰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려 애쓰는 짓의 부재상태야말로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드러날까요?
나도 모르고 여러분도 모르고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은 저절로 드러나기 시작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힘으로 그걸 알 방도는 없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일 테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를 드러낼 겁니다.
P224.
당신은 오늘 당신 내면의 나무에 어떤 자양분을 주었나요.
제 개성화의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는 느낌에 뿌듯해집니다.
당신 내면의 나무에 이름을 붙여주세요.
여러분은 지금 뭘 하고 있죠?
생각은 우리를 소모시키며, 불행히도, 우리가 생각을 그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방법은
우리를 더욱 더 소모시키는 결과를 빚어냅니다.
여러분은 생각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생각들을 골라잡습니다.
생각은 보호 메커니즘입니다.
당신은 생각의 제약에서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겁니다.
여러분은 오로지 자신이 생각에 관해서 갖고 있는
지식을 통해서만 생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을 체험하든 간에 그것은 죄다 생각이 빚어낸 것입니다.
생각과 경험의 전체성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생각들과 경험들은 따로따로 떨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온갖 것에 이름 붙이기를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구, 새로운 단어, 새로운
관용구들을
복창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짓이 죄다 그런 것뿐입니다.
여러분은 그 모든 짓이
의식에 때를 묻히는 짓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생각에 따라 생각하고,
사회의 느낌에 따라 느끼고, 사회의 체험에 따라 체험합니다.
이승에서 여러분이 얻은 지식들뿐만 아니라
수천만 년 동안 쌓인 지식,
유사 이래 모든 인류가 겪은 경험들을 통해서
켜켜이 쌓인 지식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지식.
여러분은 그런 모든 지식의 소산입니다.
여러분이 성스럽고 특별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
그런 것들이 말끔히 사라질 때
여러분은 본래 면모를 회복합니다.
P31.
에고에서 셀프로 가는 길
여러분은 추구하는 것을 통해서 자아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하지만
자아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애쓰는 그 자가 바로 자아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것을 하든, 어떤 레벨에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든,
그 모든 것은 다 자아중심적 활동입니다.
자아란 놈은 아주 영리한 놈입니다.
그것은 유구한 역사를 통해 생존해왔기에
이 세상에 있는 온갖 속임수와 책략들을 훤히 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Self)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것과는 전혀 다른 것, 아주 근사한 것,
판타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판타지로 비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다른 종류의 판타지에 관심을 갖게 될 겁니다.
어떻게 여러분이 스스로를 없애는 일에 관심을 가질 수가 있겠어요?
자신이 보는 모든 것을,
자신이 내면에서 느끼고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해야 한다는 끊임없는 요구가 사라진다면
여러분의 자아가 최후를 맞이할 것이기에
자아는 끊임없이 그런 요구를 합니다.
여러분이 자기로 알고 있고 자기로 경험하고 있는 ‘나’는
자기 존재가 끝장나기를 원치 않습니다.
‘나’는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마음은 그 자신을 죽이지 못합니다.
할 일은 마음의 진정한 성품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아는 자가 되기를 그만 두십시오.
그러면 완전함이 있습니다.
문화나 문명 같은 것들은 늘 우리를 일정한 틀에 맞추려고 합니다.
그럴 때 인간은 인간이 아닙니다.
문화의 구속을 받고 있는 한
인간은 진기한 동물 정도에 머무르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개인적인 과거뿐만 아니라
인류의 모든 과거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곧 과거의 모든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고
체험한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 유산 총체의 짐에서 해방될 때라야
그는 생전 처음으로 개인이 됩니다.
가장 놀라운 기적, 곧 삶 전체를,
생각하는 방식 전체를 변혁하는 데 필요한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비로소 참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은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스스로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P217.
세상을 소유하려 하지 말고
당신 자신을 온 세상을 향해 선물하기를
그대가 그 몸이 아니라
영이라는 것을 발견하면
아무 한계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한계도 없는 곳에
물적이거나 영적인 세계가 어디 있습니까?
그대는 늘 진아(Self) 안에 있지,
세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는 그대의 인상이며,
에고의 결과이자 마음의 산물입니다.
그대가 세계를 볼 때는 진아를 놓쳐 버린 것입니다.
진아를 붙들면 세계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신이 되는 것은 50.1:49.9입니다.
여러분들의 몫50.1%와 우리들의 몫 49.9%가
결합하여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
자신의 인성을 모두 포기하고
모두 비워 내어 신성에게 자리를 내어 준 인류들은
신이 함께하는, 신이 동행하는 신의 자녀들이 되는 것.
이 관계가 끝까지 가는 것은 아니며,
100:100이 이루어지는 때까지이고,
여러분들의 영이 바로 설 때까지.
바로 참된 그리스도가 될 때까지.
여러분은 자신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완전한 항복이며 전면적인 포기,
모든 노력과 의지가 끝나 버린 포기 상태,
모든 원함이 완전히 없는 상태,
총체적인 무력함입니다.
그런데 인성이 신성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완전한 순복)이
존재성의 소멸로 받아들여져
인성이 주도권을 차지한다면
이때 세상을 소유하려는
사이비 교주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 리뷰는 97%
<라마나 마하르쉬와의 대담>
<그런 깨달음은 없다>
<극이동&신세계>
에서 발췌, 편집하여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