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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님의 서재
  • 신에 관하여
  • 한병철
  • 15,120원 (10%840)
  • 2025-12-15
  • : 15,930
그가 <피로사회>에서 집요하게 드러낸 것은 외부의 억압이 사라진 대신 인간이 스스로를 착취하게 된 세계였다. 더 잘해야 하고 더 연결되어야 하며 더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삶은 점점 소진된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피로 그 자체가 아니라 의미 없이 계속되는 자기소모다.

이번 신작 <신에 관하여>에서는 성과와 효율의 언어로는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삶 앞에서 한병철은 내재의 세계 바깥을 다시 묻는다. 한병철에게 ‘신’은 종교적 귀환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신은 믿음의 대상이라기보다 성과와 교환, 설명과 관리의 질서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것이다. 생존을 넘어 존재로 건너가기 위해 다시 호출되는 이름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이 책은 혼자 말하지 않는다.
부제에서 드러나듯 <신에 관하여>는 시종일관 100년 전의 철학자 시몬 베유와의 대화 속에서 전개된다. 한병철이 베유를 선택한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그녀는 고통과 결핍을 제거해야 할 오류로 보지 않았고 오히려 그 빈자리를 통해 세계를 다시 사유하려 했기 때문이다.

베유의 ‘탈창조’와 ’빈자리‘ 개념은 특히 인상 깊다.
그것은 무언가를 더 쌓아 올리는 일이 아니라, 자아를 비워 세계가 스며들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성취와 자기계발로 끊임없이 자신을 확장하라고 요구받는 오늘의 삶과는 정반대의 태도다. 베유에게 중요한 것은 가득 찬 존재가 아니라, 신이 도달할 수 있는 빈자리였다.

내가 물러남으로써, 나를 철회함으로써, 나를 취소함으로써, 나는 사물들에게 왜곡되지 않은 실재성을, 아름다움을 되돌려준다. 탈창조가 창조를 해방한다. “내가 사라진다면, 내가 보는 이 사물들은 완벽하게 아름다워질 텐데! p.57

우리는 너무 많은 것으로 자신을 채우느라 비대해진 자아로 아무것도 머무르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정보는 넘치지만 고요는 사라졌고 소통과 연결은 강화되었지만 주의 깊게 바라보는 능력은 약해졌다. 한병철이 말하듯 종교의 위기는 곧 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무엇을 보지 못하게 되었는지, 무엇을 들을 수 없게 되었는지를 묻는다. 답을 주는 책이라기보다 삶을 다시 다른 속도로 바라보게 만드는 질문에 가깝다. 무위와 빈자리의 가능성을 건네주어 뜻밖에 위로를 준다.

빈자리의 신역학은 사물들을 모든 상상된 미래가 제거된 순수한 현재에 처하게 한다. 즉, 상상을 무력화한다. 어떤 상상도 끼어들지 않은, 단지 여기 있음이야말로 신성하다. (중략) 아름다움은 목적 없는 수단이다. 제자리에서 쉬며, 그럼으로써 모든 목적에서 벗어난다. 오직 어떤 목적도 추구하지 않고 무위할 때만 아름다움에 다가간다. p.108

책에 따르면 평소 내가 존경했던 근대의 화가 세잔은 주의의 천재란다.
세잔은 사물들의 신적인 질서에 절대적으로 순종한다. 시몬 베유의 어법으로 말하면, 세잔은 자신을 탈창조한다. 그는 없는 것이 되고 없는 자가 된다. 그렇게 다름 아니라 탈창조를 통하여 그는 창조에 참여한다. (중략)시몬 베유의 어법으로 표현하면, 신이 화가의 눈으로 자신의 피조물을 바로본다.p.111-112

다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현재를 온전히 살지 못하게 만드는 인간의 과도한 자의식과 상상력은 동물에게는 없는 불행을 자처하는 몹쓸 능력처럼 보인다. 세계는 본래 그 자체로 아름다운데, 판단하고 평가하며 목적에 매달리고, 기타 등등.
사심 가득한 인간이 끼어든 자리에서는 뭐하나 아름다움을 찾기 어렵다는 씁쓸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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