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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너님의 서재
  • 영원한 천국
  • 정유정
  • 17,820원 (10%990)
  • 2024-08-28
  • : 72,267

문학이론에서 수용미학이라는 것이 있다. 작품이 세상에 나오면 독자들은 작품과 대화를 나누면서 작품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을 하고 그것이 작품의 의미를 확장시킨다는 것이다. 고 김민기 선생님의 아침이슬이 그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한 시대의 큰 물줄기였던 것처럼. 

7년의 밤을 읽었을때가 생각난다.  기억에는 ’이런 작품을 어떻게 쓸 수가 있지?’라고 생각하면서 순식간에 작품을 읽었던 것 같다. 나에게  이 작품은 그러한 감동을 주었다. 


첫 장은 참 낯설고 이상하다. 뭔가 시공간이 뒤틀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마치 브레히트가 낯설게하기 효과를 통해 카타르시스의 자리에 관객의 낯설음과 의아함을 넣으면서 발생하는 관객의 반응처럼 말이다. 그 낯설음과 실오라기 같은 궁금함이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그리고 그 궁금함은 증폭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전개는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마치 갑자기 광풍이 몰아치듯. 한 순간의 광풍이 사그러지고 다시 작품은 잠잠해진다. 그런데 읽을 분량이 한 챕터가 더 남아있다. ‘왜 여기서 끝을 내지 않는거지?’ 불안하다. 마치 태풍 전 고요처럼. 

책을 덮으면서 이 모든 궁금증이 비로소 해결된다. ‘왜 장 제목이 반복되는지, 왜 1장이 나에게 그렇게 낯설었는지. 마지막 장이 다시 1장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경주의 의뢰의 이유 즉 ‘도망치지 않는다면 견뎌낼 수 있다면 내가 그 세상에 존재했던 이유’가.


어떤 독자는 앞부분을 읽으면서  기존의 작품과 다른 낯설음때문에 놀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장까지 읽으면, 작가의 상상력과 디테일함에 놀랄 것이다.


끝으로 에필로그 해경의 말. “ 나는 경주를 오독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의식이라는 외피에 가려진 ‘무엇’이었다.(...) 그의 본성이 웅크리고 있는 ‘무엇’이 무엇인지. 

견디고 맞서고 이겨내려는 욕망이었다. 나는 이 욕망에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어쩌면 신이 인간 본성에 부여한 특별한 성질일지도 몰랐다. 스스로 봉인을 풀고 깨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어떠한 운명의 설계로라도 변질시킬 수 있는 항구적 기질이라는 점에서.”가 어쩌면 뒤틀린 시공간의 세계에서 작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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