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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kcooky0901님의 서재
  • 도쿄도 동정탑
  • 구단 리에
  • 13,500원 (10%750)
  • 2024-07-31
  • : 1,093
범죄자가 동정받아야 할 존재로 여겨지는 사회? 대단히 파격적인 세계관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근미래 도쿄 사회에서는 범죄자를 ‘동정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호모 미세라빌리스’로 재정의하고,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도쿄도 동정탑’은 호모 미세라빌리스를 수용하는 최첨단 교도소로서 그들에게 풍요롭고 안락한 생활을 제공한다. 그리하여 탑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외려 탑 내부에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게 되는 기괴한 현상이 나타난다. 소설은 도쿄도 동정탑을 설계한 건축가 마키나 사라, 그녀와 미묘한 관계를 맺고 있는 청년 도조 다쿠토, ‘호모 미세라빌리스’라는 신개념을 제창한 사회학자 마사키 세토, 타워를 취재하러 온 미국인 기자 맥스 클라인, 이 네 명의 시점이 교차하여 전개되어 쉽게 읽히진 않지만, 그만큼 도쿄도 동정탑을 둘러싼 논쟁을 다각도로 풍부하게 그려내 흥미로웠다.


▫️AI를 활용해 집필한 소설?!

예술창작 영역에서의 AI 활용은 더 이상 특별히 신선한 화두는 아니지만, AI가 예술의 장에 ’난입’할 때마다 논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 구단 리에가 AI가 생성한 문장을 작품에 활용했다고 밝히면서 기자회견장이 소란스러워졌지만, 작품을 다 읽고 보니 오히려 AI를 사용했다는 점만 부각되면서 변죽의 논쟁에 의해 소설의 진가가 가려진 듯하다. 우려와 달리 이 작품에서 AI의 역할은 작품의 흐름에 영향을 끼칠 만큼 두드러지게 드러나진 않는다.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에서 “인간의 말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성형 AI가 등장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작가는 작중 인물들과 ‘AI-built’라는 생성형 AI의 문답을 넣어 소설을 구성했고, 실제 AI가 사용된 곳은 AI-built의 답변 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가가 작중 AI-built에게 AI챗봇으로서의 리얼리티를 부여하기 위해 AI를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작가 본인이 AI의 활용 사실을 밝혔으며 해당 문장 역시 전체 분량의 2% 미만인 점, 그리고 심사위원단 역시 “심사 당시 AI 사용 여부는 문제되지 않았다”고 표명한 점까지 고려하면, 『도쿄도 동정탑』은 오히려 예술창작에서 인간과 AI의 협업의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다.


▫️범죄자는 가엾고 동정받아 마땅한 존재?!

범죄자를 동정받아 마땅한 ‘호모 미세라빌리스’로 정의하며 범죄자 동정론이 사회에 널리 받아들여진 세계관을 구축한 것은 이야기의 기본 전제이자 가장 센세이셔널한 지점이다. 작중 범죄자 동정론자를 주도하는 사회학자 마사키 세토에 따르면, 범죄자들이 범죄자가 되는 이유는 개인적인 원인보다는 불우한 환경의 영향이 더 크기에 그들은 범죄자이기 이전에 “최초 피해자”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반면 죄를 짓지 않고 깨끗이 살아올 수 있는 사람들은 좋은 성장 환경을 누릴 수 있는 행복한 특권 덕분이라고 한다.

작가는 이러한 세계관의 전제만 세워두고 이 주제에 대해 더 깊게 담론을 펼치지는 않지만, 비현실적인 설정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도발적으로 꼬집고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문학의 역할을 충분히 다 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인터뷰에서 말한대로, “복잡한 현실을 복잡한 그대로 이야기로 만들어 표현하는 것”이 소설가로서의 그녀의 목표다. “이미 혼란한 세상을 보다 정확하게 그려내고자 노력한 결과”이기에 그로서는 최선이었던 것이다.


▫️’도쿄도 동정탑’ 혹은 ‘심퍼시 타워 도쿄’?

동아일보 인터뷰에 따르면 작가 구단 리에는 ”말로 대화하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 언어는 가장 중요한 테마이다. ‘호모 미세라빌리스’와 ‘호모 펠릭스’라는 새로운 정의, ‘심퍼시 타워 도쿄’냐 ‘도쿄도 동정탑’이냐에 대한 끈질긴 고뇌, 병적인 언어 강박으로 인해 그야말로 “언어로 만든 감옥”에 살고 있는 건축가, 무상으로 훔쳐온 말과 모범적으로 포장된 언어로 현실을 기만하는 AI… 이처럼 말에 대한 얘기는 소설 속에 편재한다. 언어에 대한 집요한 추적은 자칫하면 주제를 벗어난 말잔치나 언어유희로 치부될 수 있지만, 나는 오히려 이 소설이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건축물을 둘러싼 수많은 말들의 범람, 즉, “대독백의 시대가 도래했다”로 시작하여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각자의 독백을 나에게 던진다”는 몰이해의 미래를 예언하며 끝맺는, 철저하고 치밀하게 짜여진 ‘언어’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작중 건축과 언어의 관계를 나름대로 분석해 보면, 건축, 특히 교도소처럼 사회적인 기능을 하며 다분히 정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공공 건축은 그 자체로 거대한 ‘말’이다. 도쿄도 동정탑 내에서 호모 미세라빌리스는 행복해지도록 교육받는다. 타자와의 비교를 금지하고 타워 외부의 말을 차단한다. 예쁘게 치장된 말들로만 구축되어 결국엔 몰이해와 남용과 날조로 독백의 시대를 초래한다.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말과 현실의 괴리를 암시하는 하나의 장치로 이해한다면,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건축물로서의 ‘도쿄도 동정탑’이라기 보다는 언어과 관념으로서의 ‘도쿄도 동정탑’이 아닐까 싶다.


다른 리뷰들도 살펴보니 생각보다 호불호가 갈리는 듯 하지만(왜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항상 호불호가 갈릴까…),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최근에 읽은 신간 중 가장 독특하고 매력적이면서 완성도 또한 높은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과감한 상상력과 사회적 감수성이 돋보인다는 점, 그리고 풍부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도쿄도 동정탑』은 과연 역대 최단 시간에 결정된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의 타이틀에 걸맞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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