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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kcooky0901님의 서재
  •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 허연
  • 10,800원 (10%600)
  • 2020-06-17
  • : 7,183
『불온한 검은 피』를 통해 처음 접했던 허연 시인의 시. 독서 편식이 심해 시에 대해 무지했던 나를 처음으로 시의 세계로 이끌어 준 작품이라 지금까지 여전히 변함없이 사랑하는 시집이다. 『불온한 검은 피』가 “소주병을 깨서 세상의 옆구리를 한번 찌르는 심정으로” 쓴 음울하고 처량한 비가라면,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는 심연 속에서 별을 바라보는 사람의 애달픈 노래 같다. 주로 시인의 생활과 인접한 공간 속 대상들을 소재로 하는 이 시집은 더럽고 슬픈 세상의 모서리에서도 여전히 삶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는 시인의 뭉근하고 애잔한 몸부림 그 자체다. 어쩌면 반항과 울분으로 점철된 한 청춘의 거친 모서리들이 다듬어지고, 이제는 체념과 수긍, 그리고 얼마간 넉넉해진 마음씀씀이로 세상을 살아가는 시인의 모습이 그대로 담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시집에는 특히나 ‘이승과 저승’, ‘천국과 지옥’, ‘신전’, ‘성자’, ‘십자가’와 같은 종교 색채의 시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책 말미에 실린 발문을 읽어보니 허연 시인은 가톨릭 구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사제가 되기를 강요받았다고 한다. ‘정해진 운명’으로부터 항상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었던 시인은 성스러운 것들을 부정하고 외면하면서 결국 시인의 길을 택했지만, 어쩌면 자신에게 가장 가치 있는 삶이었을지도 모르는 숙명의 길을 거부했던 것에 대한 후회, 죄책감이 뒤늦게 콤플렉스로 작용한다. 그의 시편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자기부정의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완전하고 성스러운 존재가 아닌 죽음과 두려움의 존재로 표상되는 ‘신’. 아마도 시인에게 신이란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허연 시인을 이야기할 때 따라붙는 수식어들은 주로 허무주의자, 냉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아웃사이더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또 다른 페르소나, “주머니에 푸른색의 추억과 상실로 날카롭게 닳고 닳은 유리구슬을 가지고 있는 그런 소년”에 대해 말하고 싶다. 시집의 발문을 맡아 쓰신 박형준 시인의 말대로, “허연에게 시란 슬프고 더러워서 오히려 푸른 유리구슬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허연의 시를 사랑하는 건 그 담담한 듯 처절하고, 허무한 듯 희망적이며, 슬프지만 위로를 주는 복잡미묘함 때문이다. 나에게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는 시인 스스로의 우울감에 대한 푸념이 아닌, 자신의 비참함을 마음껏 울고 노래함으로써 전하는 검푸른 위로 같았다. 쓸쓸한 날엔 그 쓸쓸함을 억지로 억누를 필요가 없다고. 우리 모두가 있는 힘껏 흔들리고 무너져도 된다고. 절창은 제외된 자들의 몫이라고. 슬프고 더러워도 “모든 미래가 푸른빛으로 행진”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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