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론강
타버릴 것들 다 타버린 거돈사 빈터에
부론강이 올라와 한나절 쉬었다 가듯
비우려면 이렇게 비울 것.
부처까지 타버린 폐사지 바닥돌로 남아
시간을 잊고 지키는 사랑일 것.
스님까지 다 떠난 절터 느티나무로 남아
폐허의 곁에 선 사랑일 것.
길은 엎드려 비로소 길이듯
낮은 데로만 흘러 강이 되고,
너나없이 평평하여 비로소 강이지 않던가.
낮은 데로 흐를수록 넓어지는 부론강에서
그대여, 나를 만나자.
서있는 것, 날아가는 것, 헤엄치는 뭇 생명을
품어 먹이는 어미의 강에서
그대를 비춘 부론의 강물이 나를 비출 때
문득 새소리에 귀가 열리리.
빗방울이 강의 품에 안기며 돋는 무수한 말도 들리리.
옥수수 알알이 영글다말고
들오리떼 따라 푸드덕 날아 올라
자맥질하며 흐르는 강에서, 그대여,
- 부론강에서 만나자.
그대가 타버릴 것 다 타버린 폐사지일 때,
내가 가슴 가득 흐르는 강물일 때,
** 부론을 다녀온 것은 오래된 일이었다. 90년 가을에 농활을 갔던 곳. 우둘두둘 터덜거리는 시골버스에서 내려, 라면과 솥이 묶인 짐꾸러미와 배낭을 메고, 황금빛 들길을 걸어 걸어 들어갔다. 농활을 간 집의 주인은 서른다섯 먹은 노총각 형님이었는데, 머리가 하야신 노모와 둘이 살았다.
지금은 깨끗한 포장도로가 쪽 나고, 자가용이 있는 시절이지만, 그때만 해도 흙먼지 풀풀 날리는 멀고 먼 벽지였다. 누렇게 익은 벼를 베고, 노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마셨다. 낫질이 서툰 친구는 벼를 베려다 제 발등을 찍기도 했다. 둘이 살던 조용하고 외로운 벽지에 농활을 온 대학생들이 버글버글해서 였을 것이고, 생전 구경하기도 어려운 처녀애들이 그중 반이기도 해서 였을 것이다. 시커먼 주인형님은 연신 싱글벙글 좋아했다.
강물에 가을 윤슬이 반짝이던 강가에 깨밭이 있었다. 형님은 농사짓는 틈틈이 배를 타고 고기를 잡아다 팔기도 했는데, 농활대 준다고 낡은 비료푸대 반가득이나 메기를 잡아오기도 했다. 푸덕거리는 메기를 강물에 한번 헹구고 강가에 흔들리던 깻잎을 따서 싸먹었다. 막걸리 한 사발에 안줏거리였다. 메기뼈가 억셀줄 알았는데, 진한 깻잎향에 묻혀서 사르르 사라지던 일이 놀라웠다. 햇살도 따숩고 논둑에 수다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아름다운 가을이었다.
농활을 다녀온 얼마 후에 형님 소식을 들었다. 장가를 못간 노총각은 배를 타고나가 그만 붉게 타는 가을 강이 되었다고 했다. 그 후론 부론으로 농활을 가지 못했다. 우루과이라운드로 농산물 수입제한이 풀리고, 농민들이 설 땅이 없어지던 때였다. 부론강, 이 말을 들으면 언제나 그 아침 안개 짙던 저녁의 붉은 강이 생각난다.
그리고 삼십년이 흘렀다. 지금은 폐사지처럼 된 농촌마다 또 새로운 생명들이 둥지를 틀었을 것이다. 찬미가 그랬고, 원우도 그렇게 강물처럼 부론으로 흘러왔다. 장가를 못간 농부와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농사를 작파한 농부가 폐사지를 떠난 스님들처럼 부론을 떠나고, 임진왜란 때 타버린 부처님처럼 먼 들의 벼와 강가의 깻잎이 세월에 타버리고 없을 때에도, 그리고 폐사지의 잡초처럼 찬미와 원우가 흘러 들어올 때에도, 부론강은 바닥돌과 같이 느티나무와 같이 여전히 그곳을 지키고 흘러간 모양이다.
코로나로 서로가 서로에게서 격리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잠재적 바이러스가 된 이 시절에도 뜨문뜨문한 시골의 이웃들은 부론강과 함께,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사람의 가장 무서운 상처도 사람이고, 가장 강력한 치료약도 사람이다. 찬미가 그리워한 건 사진을 찍는 것이 좋던 자신이고, 원우가 그리워 한 것도 시를 쓰는 것이 좋던 자신이었을 것이다. 사랑은 상대에게서 발견하는 자신을 보는 일. 섬강이 남한강을 만나는 곳에, 더 낮은 자세로 엎드려 사는 농부들과 그러므로 더 넓어지는 예술가들이 함께 사는 곳에, 부론강이 있다. 부론에 가면, 나를 비춰주는 강물같은 그대를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삶이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늘 강물처럼 흘러간다. 도심의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도로에서, 흘러가는 것은 강물이 아니라 우리였다. 우리는 흐르다 지치고 상처받았지만, 강물은 흐르되 보듬고 품고 기르며 간다. 서있는 것들, 날것들, 물것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고도 넉넉해서, 감나무를 만나면 홍시도 되었다가, 까마중을 만나면 까마중알에 빙그르 맺히기도 하고, 갈대와 버드나무와 오리나무와 느티나무를 세우고, 들오리떼의 날개짓에 매달려 날아오르다, 메기와 가물치와 붕어를 가르치며 흐른다. 산을 담기도 하고, 구름과 파란 하늘을 품기도 한다. 오랜 그리움에 쏟아내는 반가운 말처럼 무수한 빗방울의 돋움을 담으며, 바람이 물결을 헤적이는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한다. 거기서 그대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대가 간직한 그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느 날, 나는 문득 부론으로 가고 있을 것 같다. 부론강가에서 그대를 생각하고 있을 것만 같다. 폐사지 같은 삶이 환해질 것이다. 격정으로부터 좀 더 느리게 흐르는 법도 배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