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 생명진화의 숨은 고리. 책의 제목이다. 책의 목차는 Link1, 2, 3, 4로 크게 나뉘어져 있고 각 링크들은 소주제 5개로, 소주제 하나에 6~8개의 짧은 꼭지들로 이루어져있다. 즉, 이 책은 기생충에 대한 짤막한 꼭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짧은 꼭지들의 맨 위에는 그 꼭지의 주제를 관통하는 문장을 써 넣었다. 굳이 써넣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필진이 넣었는지, 편집자가 임의로 넣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이 책은 기생, 하면 한번쯤을 들었을법한 지리멸렬한 이야기로 서문을 연다.
기생충은 현실이다.
우리는 흔히 기생충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에 기생하는 회충, 구충, 편충, 촌충, 이, 벼룩 같은 기생충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사람에만 기생충이 있는 것이 아니다. 기생충은 세상 모든 생물에 존재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기생충을 갖지 않은 생물은 지구상에 단 하나도 없다.(박성웅, 기생, MID, 2014, 15쪽)
기생충에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는 말은 기생충에 관련된 기사 한 꼭지만 읽어도 알 수 있는 정보라, 사실 별로 신기할 것도 없었다. 이렇게 첫 머리의 한 꼭지를 기생충의 다양성을 설명하는데 소비하는데, 차라리 회충, 구충 편충, 촌충의 차이점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하면서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게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루했다. 흡사,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을 처음 들었지? 놀랍지? 기생충은 이렇게 대단한 거야! 라고 말하는 걸 듣는 기분이었다.
그 다음 꼭지는 기생충에 대한 정의, 기생충의 일반적인 생활양식, 기생충이 그렇게까지 나쁜 건 아니라는 말과 오히려 생명체들이 기생충의 위협에서 벗어나려 진화를 함으로써 진화에 대한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 책의 제목과 의미가 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다만, 조금만 더 기생충에 대한 세밀한 설명을 곁들였다면 도입부가 더 흥미진진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전반적으로 깔끔하게 설명이었지만 기생충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들을 숙지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군더더기가 없는 만큼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을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아 도입부부터 흥미가 반감되었다. 또한 Link1의 소주제가 끝이 났지만 Link1에서 설명된 것들이 Link1이 끝나고 나온 기생충학자의 인터뷰에 또다시 나온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인터뷰를 덧붙였는지 모르겠지만, 같은 설명이 반복되는 건 달갑지 않았다.
서민교수는 《기생충 열전》에서 기생충을 “한 종의 생물이 다른 종의 생물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데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득을 취하며, 핵막을 가진 진핵생물이어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 경우 바이러스처럼 핵이 없는 생물들은 기생충에 포함되지 않는다. 《기생충 제국》을 쓴 칼 짐머는 “기생충은 다른 종에 붙어살면서 자신의 이득을 위해 다른 생물에게 피해를 주는 모든 생물을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기생충이라 할 수 있다”고 보다 폭넓게 기생충을 정의한다. 기생충, 정확히는 기생생활과 기생생물을 정의하는 것은 학자들마다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진핵생물과 원행생물, 바이러스 구분 없이 한 종의 생물이 다른 종의 생물과의 관계에서 일방적인 이득을 취하는 경우 모두를 폭넓게 기생생활로 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진핵생물 중에 다른 생물의 체 내외에 살아가는 경우만을 기생생활로 보는 경우도 있다. 즉 기생충, 기생생활, 기생생물의 정의는 보기 나름인 셈이지만, 여기서 변하지 않는 한 가지 핵심 주제는 바로 두 생물 간의 밀접한 ‘관계’다. 즉 기생충학이란 기생충과 그 기생충을 보듬고 있는 숙주의 관계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박성웅, 18쪽)
Q. 기생충이란 무엇입니까?
A. 다른 생물의 표면 위나 내부에서 살아가며 숙주의 고통을 양분삼아 살아가는 유기체입니다. 기생충이 잘 살수록 숙주는 힘든 삶을 살게 되죠. 기생충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나 광절열두조충 같은 것들이 모두 기생충에 포함되지요.(박성웅, 84쪽)
이렇게 기생충에 대한 정의가 세 번이나 나온다. 이 책에서는 기생충을 정의 내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생물, 숙주와 숙수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이는 결국 한 쪽이 일방적으로 이득을 취한다. 라는 정의에 포함되어있는 말이다. 위에 기생충에 대한 정의 세 가지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말이라는 것은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숙지할 수 있다. 세 가지 정의의 공통점보다는 세 학자들이 다르게 표현한 생물, 진핵생물, 유기체의 정의의 차이점과 관점이 어떻게 달라서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도 짚어주는 게 독자들의 이해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Link2 부터는 본격적으로 기생충에 대한 설명들이 나온다. 연가시, 메디나충, 리베이로이아, 니오트로피카, 기생 따개비. 총 5개의 기생충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조금 지루했던 Link1과는 달리 Link2의 내용들은 흥미롭게 읽혀진다. 연가시는 사람에게 감염될 일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사례들을 들어준 점이라거나 사람이 물에 발을 담그면 침투해 사람의 몸 안에서 번식을 하는 메디나충이야기라거나, 이 메디나충이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들고 다니는 막대기와 연관이 되어있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을 솜씨 좋게 엮어 풀어나간다.
다만 용어를 잘못사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이 부분인데,
연가시가 사람에게 감염되는 일은 거의 없는데, 어쩌다 발생하는 인체감염 사례는 연가시가 들어있는 곤충을 사람이 먹었을 때 생기는 경우다. 우리나라에서는 세 살짜리 여아가 귀뚜라미를 삼킨 후 15분 있다가 15센티짜리 연가시를 입으로 뱉어낸 사례가 보고되어있다.(박성웅, 97~98쪽)
감염이란 단어는 병원성 미생물이 사람이나 동물, 식물의 조직, 체액, 표면에 정착하여 증식하는 일을 의미한다. 위 사례에서 감염이라는 용어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Link3도 link2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기생충에 맞서 진화한 생물들의 이야기위주로 구성되어있다. 얼룩말의 얼룩무늬가 기생충을 피하기 위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이야기라던가, 말라리아에 대항해 백혈구의 모양을 바꾼 말라리아위험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들 같은. 인간은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의학의 발전과 인간의 진화 중 어느 쪽이 먼저일까? 하는 의문들도 던지며. 다만, 글의 말미에 등장하는 저자의 덧붙인 의견이 없었더라면 다방면의 사고가 가능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link4의 제목은 대결에서 공존으로이다. 기생충과 인간의 생존대결이 아니라, 인간이 필요에 의해 기생충을 몸 안에(?)기르고 기생충은 번식한다는 의미의 공존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꼭 그건 아니었다. 장에 염증이 생겨 설사와 복통이 계속되는 크론병을 치료하기 위에 돼지편충을 복용하는 치료책을 제시하는데, 이는 인간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기생충을 이용하는 것이지 돼지편충에게는 이점이 전혀 없다. 인간이 돼지편충에게 고통(인간의 장이 돼지편충에게 살기 좋은 조건은 아니니)을 주며 일방적으로 이득을 취하니, 인간이 돼지편충에게 기생하는 게 아닐까.
그 외에도 톡소포자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톡소포자충이 쥐에게 감염되고,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를 고양이 잡아먹고, 톡소포자충은 고양이의 몸 안에서 번식을 해 고양이의 대변을 통해 배출이 된다는 이야기 외에 톡소포자충이 인간을 왜 감염시키는지, 인간을 감염시킴으로써 얻는 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체 톡소포자충이 치매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만 이야기한다. 설명이 다소 부족했지만 내용은 흥미로웠고 더 자세한 것들을 찾아보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결국 이 책을 통틀어 저자들이 하고 싶은 말은 이 한마디이다. 기생충과 인간은 공존해야한다. 기생충은 더 이상 인간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면역체계가 무너져가는 현대인들에게 기생충의 이용은 필연적이다. 라는 말이다. 책의 내용들은 지나치게 교과서적이고 깊이가 다소 부족했지만 막 기생충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 사람이 읽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각 소제의 말미에 촬영을 하며 겪은 피디의 고충(?)이 녹아나오는 정말 짧은 소감을 실었는데 너무 짧은 탓에 피디의 생각이 우러나오지 않는 점도 보강이 되면 좋을 것 같다. EBS다큐를 책으로 보강한 것이니, 아무래도 기생 2권, 3권이 나올 가능성도 있을 가능성이 보여 적어본다.
한국의 교양서적시장은 굉장히 좁다. 그래서인지 깊이 있는 교양서들이 잘 팔리지도 않고, 흔히 말하는 유사과학 서적이 지배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을 계기로 더 좋은 책들이 나올 수 있는 발판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음 책은, 더 나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