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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햐님의 서재
히어로 장르의 아메리카 코믹을 접한 것은 애니메이션이 최초였다.  그리고 2시간이 안되는, 만화 원작의 영화들이었다.  그동안 영웅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적이 있던가?  정의와 평범한 삶 사이에 놓여진 정체성의 고민, 인류에 대한 사랑 혹은 의리, 가끔씩 보너스로 주어지는 로맨스 정도.  눈으로 히어로가 보여주는 액션을 쫓는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면으로 처음 접하는 히어로물은 그야말로 놀라움과 경건함으로 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히어로의 반대편에 놓여있는 빌런(악당)에 대한 서문에서부터 질문에 대한 고민을 준비해야만 한다.  빌런의 배경은 정의내릴 수 있는 악이 아닌,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의'가 깔려있다.  깔려있어야만 한다.  작가를 납득시킬 수 없는 빌런의 배경은, 히어로가 아무리 멋지고 쿨하다고 하더라도 이야기 자체를 훌륭하게 꾸며주지는 못한다.


만화는 서문보다 훨씬 강하게 빌런의 존재와 마주시킨다.  히어로들이 빌런들의 공격에 의해 무력함에 빠져 빌런들이 자신의 정의를 실천하도록 방치하는동안, 독자는 시민들의 고민을 대신 해야만한다.  빌런들이 위하는 것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자신들의 정의를 설파하는 상대는, 히어로가 아니라 시민들이다.  히어로가 힘을 잃는 것은, 아무것도 구하지 못하는 것은, 늘 제자리에 맴돌며 도탄과 절망을 반복하는 인류를 방치하는 것은, 빌런의 것보다 더 큰 죄목이라고 외치고 있다.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들이 실천하는 정의라는 것은 고작 그런것 뿐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선과 악에 대한 시험이 아니다. 인류에게는 히어로와 빌런의 정의와 마찬가지로, 가장 행복하게 살아가야하는 의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만화는 어쩌면 처음으로 히어로 장르에서 인류를 제외시키지 않는 만화일지도 모른다.  히어로 장르에 존재하는 것은 히어로와 빌런의 대결 뿐이다.  히어로에게 구원받는 시민들조차, 그 선택은 자신이 원한 구원이 아닌 히어로의 의지에 의한 구원이다.  그런 시민들에게 처음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빌런에게도 정의가 있듯, 시민들의 정의에 대해서도.
 

2권에서 어떻게 진행이 될지 무척 흥미롭다.  단순히 만화라고 웃어 넘기기엔 한 페이지, 한컷, 한선에 담긴 장엄함이 가슴에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박력있는 그림체와 독자를 끊임없이 긴장시키는 플롯이 훌륭한 하모니를 이루며 아비규환의 지옥 혹은 기회의 땅에 독자의 몸을 밀어넣는다.  빠져나오려고 해도, 읽는 중간에 쉽게 책을 덮을수도 없다.  오랜만에 '인류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데도, 전혀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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