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읽고보고듣고쓰고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책이다. 본격적으로 읽기에 앞서 대략 살펴봤는데 기독교적인 색채가 비교적 강한 책인 듯하다. 아마도 저자가 기독교 관련 서적들을 많이 써왔던 분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나는 죽어도 기독교는 싫다는 분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종교 자체에 대해 혹은 타 종교에 대해 딱히 배타적이지 않은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이 책의 맨 처음에 나오는 문장이기도 한데, 시작부터 뭔가 선과 악의 대결구도가 강렬하게 펼쳐질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이 편지들을 읽는 여러분은 악마가 거짓말쟁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_C. S. 루이스- P1
믿음이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음과 같이 진리의 열매를 위하여 스스로 죽는 것을 뜻합니다.- P2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영원히 살아 있는 진리와 목숨을 맞바꾸는 자들을 우리는 믿는 이라고 부릅니다.- P2
「믿음의 글들」은 평생, 혹은 가장 귀한 순간에 진리를 위하여 죽거나 죽기를 결단하는 참 믿는 이들의, 참 믿는 이들을 위한, 참 믿음의 글입니다.- P2
"성경말씀에 승복하지 않는 악마를 퇴치하려면,
비웃고 업신여기는 것이 상책이다.
악마는 경멸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_마르틴 루터- P7
"오만한 영(靈), 악마는......
놀림감이 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
_토마스 모어- P7
악마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 인류가 빠지기 쉬운 두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그 내용은 서로 정반대이지만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인 오류들이지요. 하나는 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또다른 하나는 악마를 믿되 불건전한 관심을 지나치게 많이 쏟는 것입니다. 악마들은 이 두 가지 오류를 똑같이 기뻐하며, 유물론자와 마술사를 가리지 않고 열렬히 환영합니다.- P11
스크루테이프가 하는 말 중에는 심지어 그자신의 관점에서 볼 때조차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들이 많습니다.- P12
스파이크 목사나 환자의 어머니 같은 사람들이 전적으로 공정하게 그려졌다고 보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지구상에서 그런 것처럼 지옥에도 희망사항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요.- P12
악마들이 날짜를 매기는 방식이란 것이 지상의 시간과 전혀 무관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P12
유럽대륙의 전쟁사(戰爭史) 같은 문제는, 어쩌다가 한 인간의 영적 상태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한 스크루테이프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P12
웜우드Wormwood. ‘쑥‘이라는 뜻, 쑥은 쓴맛, 고난, 고뇌를 상징한다. 여기에서는 스크루테이프의 조카이자 신참 악마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P15
환자patient. 각각의 악마들이 맡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 P15
악마의 입장에서 ‘원수‘ 는 그리스도이다.- P15
환자를 교회에서 멀리 떼어 놓기에 가장 좋은 협력자는 논증이 아니라 전문용어란 말이다. 유물론을 진리로 믿게 만들려고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말거라! 그보다는 유물론이야말로 힘차고 단호하면서도 용맹스러운 미래의 철학이라고 믿게 만들어야 해. 네 환자는 그런 데 더 신경을 많이 쓰는 족속이니까.- P16
논증을 동원할 경우 우리의 투쟁 전체가 오히려 원수의 확고한 기반이 되어 버린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원수도 논리에 강하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P16
논증이라는 행위는 잠자고 있는 환자의 이성을 흔들어 깨우는 거나 다름없는 짓이야.- P17
그때 그때 드는 생각들이야 어떻게든 그 흐름을 비틀어서 우리에게 유리하게 끌어올 수 있지만, 네 환자는 그런 사고의 과정을 통해 찰나적인 감각적 경혐의 흐름에서 눈을 돌려 보편적인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치명적인 버릇을 들이게 될 게다. 그러니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의 시선을 감각적 경험의 흐름에 붙들어 두어야 해. 그것이야말로 ‘실제의 삶‘이라고 믿도록 가르치되, ‘실제‘ 가 무슨 뜻인지는 절대 묻지 못하게 하거라.- P17
네 환자는 너처럼 순전한 영적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너는 한 번도 인간이 되어 본 적이 없으니 (불쾌하게도 원수는 이 점에서 우리보다 유리하지!) 인간이라는 존재가 범속한 것의 압력에 얼마나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니는지 실감하기 힘들 게다.- P17
네가 맡은 환자만 해도 어려서부터 수십 가지의 상충되는 철학들이 한꺼번에 머리 속에서 난장판을 벌이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게야. 그래서 어떤 교리를 보아도 ‘참‘이냐 ‘거짓‘이냐를 먼저 따지기보다는 ‘학문적‘이냐 ‘실용적‘이냐, ‘케케묵은‘ 것이냐 ‘새로운‘ 것이냐, ‘인습적‘인 것이냐 ‘과감한‘ 것이냐를 따지게 되어 있지.- P16
‘실제의 삶‘ 앞에 ‘그 따위 관념‘ 들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P18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현실의 체감이야말로 혐오스러운 일개 논리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궁극적 안전장치"- P19
수세기 동안 우리가 쉬지 않고 공작해 온 덕분에, 이제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친숙한 일상에 눈이 팔려, 생소하기만 한 미지의 존재는 믿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니 계속해서 사물의 일상성을 환자한테 주입해야 해.- P19
꼭 한 가지만 명심해 두거라. 기독교에 대해 방어를 하겠답시고 과학(그러니까 진짜 과학)을 활용하려 들면 절대 안 된다는 사실 말이다. 과학은 결국 네 환자를 부추겨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사색하게 만들고 말 게다. 현대 물리학자들 가운데 그런 애석한 사례가 많이 있었지.- P19
만일 환자가 계속 과학을 가지고 장난치려 들거든, 경제학과 사회학을 들이게 하거라.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의 소중한 ‘실제의 삶‘에서 멀어지는 것만큼은 용납하면 안 돼. 뭐니뭐니해도 제일 좋은 방법은 과학서적 따위는 아예 읽지 못하게 하면서 ‘그런 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그럴듯하고 막연한 느낌만 심어 주는 거지. 어쩌다 주워들은 이야기나 이런저런 쪼가리 독서에서 얻은 것들이야말로 이른바 ‘현대과학의 부단한 탐구가 성취한 결실‘이라고 믿게 만들거라.- P20
너의 임무는 환자의 곁을 지키며 그가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요즘 네 또래 젊은 악마놈들 하는 말만 들으면, 우리 일이 선생질인 줄 알겠더라!- P20
네 환자의 몸에 배어 있는 습관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직은 우리에게 전적으로 유리하지.- P21
현재 우리의 가장 큰 협력자 중 하나는 바로 교회다. 오해는 말도록. 내가 말하는 교회는 우리가 보는 바 영원에 뿌리를 박고 모든 시공간에 걸쳐 뻗어나가는 교회, 기치를 높이 올린 군대처럼 두려운 그런 교회가 아니니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런 광경은 우리의 가장 대담한 유혹자들까지도 동요하게 만들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인간들은 그 광경을 전혀 보지 못한다.- P22
교인이 되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찾아오는 실망감이나 맥 풀리는 느낌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원수는 인간의 노력이 문턱을 넘으려 할 때마다 이런 실망감이 찾아오는 걸 허용하고 있다. 이 실망감은 <오디세이 이야기>를 듣고 매혹되었던 소년이 진짜로 그리스어를 배우려고 작정할 때 찾아오지. 연인들이 마침내 결혼하여 현실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할 때도 그렇고. 그러니까 실망감이란 삶의 모든 부분에서, 꿈으로만 간직해 왔던 야심을 힘겨운 실천으로 옮길 때 나타나는 표시인 게야.- P23
원수가 이런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이유는, 이 구역질나고 하찮은 인간 버러지들을 이른바 ‘자유로운‘ 연인이자 종ㅡ원수가 쓰는 말로 하자면 ‘아들‘ㅡ으로 삼겠다는 망측한 환상을 품고 있기 때문인데, 이 두 발 달린 짐승들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집요한지 변태적인 관계도 서슴지 않으면서 영적 세계 전체를 모독하고 있는 형편이다. 원수는 인간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인간 앞에 목표를 세워 놓고서도 단순한 감정이나 습관을 이용해서 끌고 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지. ‘제 힘으로‘ 해 내도록 내버려 두겠다는 게야. 바로 이 점이 우리에겐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위험도 따른다는 걸 명심하도록. 처음에 찾아오는 무미건조함만 성공적으로 이겨내면 인간들도 점차 감정에 휩쓸리지 않게 되고, 우리는 그만큼 유혹하기 힘들어지니까.- P24
단지 환자의 머리 속에 이런 질문만 떠오르지 못하게 하면 돼. ‘나 같은 사람도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다면, 어떻게 옆에 앉은 저들의 다른 결점만 보고 그들의 종교가 위선이자 인습에 불과하다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P25
문명생활에서는, 글자만 놓고 보면 아무렇지 않은 말인데도(단어 자체는 공격적이지 않으므로) 특정한 순간에 특정한 말투로 사용하면 마치 얼굴을 정면으로 때리는 듯 위력이 생기는 말들을 통해 가족간의 증오가 표현된다.- P29
최선의 방책은 진지하게 기도할 마음이 아예 생기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데까지 막아 보는 거다. 네 환자처럼 최근에 원수 편으로 복귀한 성인일 경우, 어렸을 때 앵무새처럼 따라 기도하던 버릇을 기억해 내도록 부추기거나 스스로 기억한다고 믿게끔 유도하는 게 아주 효과적이다. 그러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제야말로 완전히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 내면적이고 비공식적이며 규칙에 매이지 않은 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거든. 초심자가 이런 생각을 할 경우, 사실은 의지와 지성을 집중시키지 않은 채 막연하게 경건한 기분만 만들어 내려고 애쓰는 꼴이 되는데도 말이야.- P32
인간 중에 콜리지라는 시인이 있는데, 그는 자신이 "입술을 움직이며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랑을 위해 영혼을 가다듬었"을 뿐이며 기원(祈願)의 감각을 만족시킨 것이라고 쓴 적이 있지. 바로 이거다. 얼핏 보면 원수 편의 최고참들이 수행하는 침묵의 기도와 비슷하기도 하니, 영리하면서도 게으른 환자들을 오랫동안 속여 넘기기에 딱 좋지 뭐냐. 또 설사 그렇게까지는 못 한다 해도, 육체의 자세와 기도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사기치는 덴 문제가 없을 게다.- P32
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인이자 비평가- P32
잊지 말거라. 인간들은 자신이 동물이며, 따라서 육체가 하는 짓들이 반드시 영혼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는 점을 노상 잊고 산다. 그들은 악마가 자기네 마음 속에 이런저런 것들을 불어넣는 모습을 그리곤 한다만,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우리의 최대 과업은 그들의 마음에 이런저런 것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게 아니냐.- P33
혹시라도 이 작전이 실패하거든, 그 때는 환자의 의도를 좀더 교묘하게 오도하는 술책으로 한 걸음 물러서야 한다. 인간들이 원수 자체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에는 참패를 면할 길이 없지만, 다행히도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길이 많이 있지. 개중 간단한 방법은 원수를 바라보고 있는 환자의 시선을 그 자신에게로 돌려 버리는 것이다.- P33
환자가 제 마음속만 줄창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의지로 감정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게 만들거라. 환자가 원수의 사랑을 구하려 하거든, 실제로 사랑을 구하는 대신 사랑의 감정을 저 혼자 꾸며내려고 애를 쓰게 하는 한편, 제가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하란 말이지. 용기를 구하려 하거든 마치 용기가 불끈 솟아나는 것처럼 느끼려고 애쓰게 하고, 또 용서를 구하려 하거든 용서받은 것처럼 느끼려고 애쓰게 하거라. 제가 원하는 감정을 꾸며 내는 데 성공했느냐의 여부에 따라 기도의 성패를 평가하게 만들라구. 사실 그런 종류의 성패란 그 순간의 몸 상태가 좋으냐 나쁘냐. 상쾌하냐 피곤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걸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혹시라도 하지 않도록 잘 처리하고.- P33
물론 그 동안 원수도 놀고 있는 건 아니다. 기도의 자리에는 언제나 원수가 즉각 행동을 개시할 위험이 있지. 저나 우리나 순전한 영적 존재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체통이 있는 법인데도, 그 작자는 냉소적일 정도로 여기에 무관심한 나머지 인간 동물들이 무릎을 꿇을 때 아주 창피스런 방식으로 자신에 대한 지식들을 쏟아부어 준단 말이야.- P34
인간들은 처음부터 원수를 직접 인식할 수는 없지. 불행히도 우리는 직접 인식하고 싶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지만 말이다. 우리네 삶에 영원한 고통의 원인을 만드는 그 소름끼치는 광채, 칼로 찌르듯 아프고 불로 지지듯 무서운 그 불길을 인간들은 절대 모른다.- P34
환자는 주관적인 숭배의 감정을 객관화시켜서 그것을 곧 제가 경외하는 대상의 속성으로 생각해 버리거든.- P35
그 합성물의 성격이 어떻든 간에, 너는 환자가 바로 그것ㅡ자신을 만든 그 위격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낸 그것ㅡ에 대고 기도하도록 붙들어 매야 한다. 환자를 잘 부추겨서 자신이 만든 합성물의 내용을 끊임없이 바로잡고 향상시키는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하고, 기도하는 내내 그 합성물을 눈앞에 떠올리게 할 수도 있지.- P35
그런데 만에 하나 환자가 그 차이를 구별하게 되는 경우, 즉 ‘내가 생각하는 당신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이 알고 계시는 당신‘을 향해 의식적으로 기도의 방향을 돌리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시에는 우리는 즉시 궁지에 빠지고 만다.- P35
환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이미지들을 모조리 내던져 버리기라도 한다면, 혹시 일부 남는다 해도 그 생각과 이미지들이 주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전심으로 인정하는 가운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그 방 안, 자신의 곁에 실제로 존재하며 객관적으로 외재(外在)하는 그 존재에게 자신을 맡겨 버리기라도 할 때에는 그 이후의 일을 장담하기가 정말 어렵다.- P35
그런 상황ㅡ그러니까 진짜 벌거벗은 영혼으로 기도하는 상황ㅡ을 피하려고 할 때, 인간들도 사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이런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 도움이 될 게다. 그런데 때로 그들이 기대하지 못했던 것을 얻는 수도 있으니, 원!- P36
넌 우리가 수고의 대가로 받는 포도주ㅡ인간의 영혼을 뒤흔드는 고뇌와 혼돈ㅡ를 처음으로 맛보고 그만 취해 버린 게야. 널 탓할 맘은 없다. 젊은 몸뚱아리에 늙은이의 머리가 달려 있을 순 없는 법이니까.- P37
의무가 쾌락에 앞선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P38
이 순간에 실컷 탐닉하다가 나중에 먹이를 놓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네가 지금 처음 홀짝거리고 좋아하는 그 한 모금을 아쉬워하며 영원토록 목말라하게 될걸. 반면, 지금 여기에서 끈질기고 냉정하게 열심을 다함으로써 마침내 환자의 영혼을 안전하게 확보한다면, 그는 영원히 네 것이 될 게다. 네가 원할 때마다 언제든지 들이킬 수 있는 술잔, 절망과 공포와 당혹감이 철철 넘치는 산 술잔이 되는 거지. 그러니 순간적인 흥분에 넋이 빠져, 믿음을 갈아엎고 미덕의 싹을 잘라 버리는 네 본분을 잊어선 안 돼.- P38
대안은 얼마든지 널려 있어. 하지만 전쟁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라는 경고만큼은 일단 해 두어야겠다. 물론 전쟁은 재미있는 사건이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인간들의 공포와 고통은 고군분투하는 우리네 수천만 일꾼들이 받아 마땅한, 유쾌하기 짝이 없는 활력소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기회를 이용해 그 영혼들을 저 아래 계신 우리 아버지께 끌고 가지 못한다면, 전쟁이 일어난들 어찌 항구적인 이득이 있다 하겠느냐?- P39
인간들이 잠시 고통을 겪다가 결국은 우리 손에서 빠져 나가는 걸 볼 때마다, 마치 화려한 만찬의 첫 코스만 맛보고 나머지는 손도 못 대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럴 바에야 아예 처음부터 맛을 안 보는 편이 낫지.- P39
저 생긴 대로 야만적인 전투방식을 쓰는 원수는 제가 아끼는 인간들이 짧은 기간 불행을 겪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데, 그건 오로지 우리를 감질나게 하고 괴롭히기 위해서야. 사실 위대한 투쟁의 현단계에서는, 원수가 그어 놓은 봉쇄선의 위력이 상당히 크다. 그 작자는 봉쇄선 밖에서 우리가 겪는 이 끝없는 허기를 비웃으려고 그 따위 짓을 한다구.- P39
이때껏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두던 수만 명의 인간들이 자아보다 고귀하다고 믿는 가치와 명분에 눈길을 돌릴 수도 있지.- P40
인간들은 죽음을 예감할 수 있는 곳에서 죽는다. 그러니 원수 편에 있는 인간들은 그야말로 완전한 채비를 갖추고 죽음을 맞이하는 셈이지. 그보다는 모든 인간이 값비싼 요양원에서 죽는 게 우리한테는 훨씬 더 좋은 일이야. 거기에서는 우리에게 잘 훈련받은 거짓말하는 의사, 거짓말하는 간호사, 거짓말하는 친구들이 죽어가는 환자한테 살 수 있다고 장담하며, 아픈 사람은 멋대로 굴어도 좋다는 믿음을 부채질하고, 더 나아가 우리 일꾼들이 제 역할만 해 준다면 성직자가 환자한테 제안하는 것들을 죄다 보류시킴으로써 실제 상황을 은폐할 수도 있지!- P40
전쟁이 계속해서 죽음을 환기시킨다는 점도 우리에겐 크나큰 재앙이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무기 가운데 하나인 ‘세속에 만족하는 마음‘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되고 마니까. 전쟁통에도 자기가 영원히 살 수 있으리라고 믿을 인간이 한 놈인들 있겠느냐.- P41
원수 편에 속한 일당들은 고난이 이른바 ‘구원‘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원수에게 똑똑히 들어 알고 있거든. 그러니 전쟁이나 전염병 따위에 무너지는 믿음이라면 애당초 무너뜨리려고 수고할 가치조차 없다.- P41
인간이 원수의 본부에 구원을 요청하기만 하면 그의 요새는 거의 언제나 보호받게 되어 있다.-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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