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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보고듣고쓰고
어제 상권을 완독했고 오늘은 하권을 읽는다. 상권 마지막 부분에서 유키의 아버지인 마키무라 히라쿠는 자기 가족의 상황이 여의치 않은 관계로 주인공인 화자에게 유키를 정기적으로 만나며 돌봐줄 것을 요청하지만 화자는 그 부탁을 거절한다. 사람을 의무적으로 만나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유키가 필요로 할 때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에 대해서는 딱히 거부감이 없었다. 화자 본인도 양 사나이와 관련된 다소 비밀스런 얘기를 유키와 나눌 수 있는데다, 그간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인간적인 친밀감도 어느정도 쌓였기 때문이다.

이후 이어지는 내용에서 화자는 이제 갓 열세살인 유키가 몇 년 후에 어떻게 성장해있을지를 조심스레 상상해보다가 문득 인간의 최고 전성기(절정기)에 대한 생각에 이르게 된다.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이 이와 관련된 것인데, 이건 어떤 특정 인물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일반적인 인간에 대한 얘기로 보인다. 여기서의 핵심은 어떤 시기인지 특정할 수는 없지만 모든 인간은 각자의 인생에서 절정기가 반드시 있으며 그 고점을 찍고 나면 거기서 조금씩 내려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글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든 생각은 자기 인생의 전성기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해서 마냥 좌절해있을 필요도 없고, 반대로 지금 인생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자기 인생에 전성기가 왔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그저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게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기묘하게도 인간에게는 각기 절정기라는 게 있다. 거기에 올라서 버리면, 다음에는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이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절정기가 어딘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 괜찮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분수령이 닥쳐온다. 아무도 알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열두살 때 절정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별로 시원찮은 인생을 보내게 된다.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계속 올라간다. 어떤 사람은 절정에서 죽는다. 많은 시인이나 작곡가들이 질풍처럼 살다가 너무 급격히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바람에, 서른 살도 되기 전에 죽었다. 파블로 피카소는 여든 살이 넘어서도 힘찬 그림을 계속 그리다가 그대로 편안히 죽었다. 이것만큼은 끝이 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법이다.- P12
당신이 행복해지지 못할지도 몰라, 하고 양 사나이가 말했다. 춤을 추는 수밖에 없어. 모두가 감탄할 만큼 잘 추는 거지.- P13
"사람은 불합리한 사랑에 빠지는 때가 있어. 더 좋아하는 상대를 고를 수 없을 때도 있고. 그게 사랑이라는 거야."- P15
"어른의 세계에서는 모두들 서로 농담을 하고 웃거든. 어쩌면 시시한 농담일지도 몰라. 하지만 너도 그런 일에 익숙해져야 해."- P15
죽지 않고 살아남을 것.- P16
혼자서 지내는 사람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가지 능력을 익히게 된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P24
"모두들 나이를 먹어. 세상도 변해. 신화라는 건 모두 언젠가는 죽어버려. 영원히 존속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P27
"그런 때는 가만히 있으면 돼. 그러면 모든 게 지나가. 시간문제야."- P35
"모든 사람들이 룰을 존중하며 지켜 주는 건 아니니까. 상대를 잘못 선택하면 지독한 꼴을 당하게 돼."- P37
"모두들 각기 원하는 방식이 달라. 그래서 이따금 엇갈림이나 오해가 생겨나지. 그리고 사람이 죽는 수도 있어."- P38
"죽은 사람에 관한 일이면 급히 생각할 필요는 없어. 괜찮아, 어차피 죽었으니까. 좀 더 기운을 차린 다음에 천천히 생각해도 돼. 내가 하는 말 알아듣겠어? 어차피 죽은 거야, 아주, 완전히, 죽었어. 해부되고 냉동된 상태로 있단 말이야. 네가 책임을 느끼든, 어쩌든 간에 되살아나지 않아."- P38
"여행이란 건 그런거야. 생각이 나면 바로 떠나는 거지. 그게 요령이라고. 별다른 준비물도 필요 없어. 시베리아에 가는 것도 아니잖아. 모자라면 저쪽에서 사면 돼. 저쪽에도 무엇이든 팔고 있으니까."- P45
"사람에겐 각기 나름대로의 능력이라는 게 있는 거야."- P45
"긴장을 푸는 거야. 몸의 힘을 빼는 거야. 그뿐이야."- P46
"뭐든 경비로 처리되는군."- P49
나는 고개를 저으며, 메이의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몰아냈다. 다음에 언젠가 생각하기로 하자. 지금 생각하기엔 너무 무거운 화제다. 너무 무겁고 너무 뜨겁다.- P51
틀림없이 뭔가 좋은 방법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다. 나는 그 방법을 떠올렸다. 잘될지 어떨지 여부를 떠나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있다.- P51
세상에는 가지각색의 이름들이 있다.- P53
"세상이 나날이 까다로워져 가고 있어. 자신이 가난뱅이인지 부자인지조차 알 수 없다고. 물건은 풍부하게 있는데, 갖고 싶은 게 없어. 돈은 얼마든지 쓸 수 있는데, 정말로 가지고 싶은 것을 위해서는 쓸 수 없어."- P54
"우리 집은 좀 구식이라 그런 식으로 가르쳤어. 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고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숫자에는 신경을 쓰지 말고, 열심히 일해서 분수에 맞게 살면 되는 거라고 말이야. 자질구레한 일에 얽매이지 말고, 통 크게 힘차게 살아가라고 말이야. 그건 하나의 사고방식일 수는 있어. 적어도 당시에는 그랬지. 하지만 분수에 맞도록 살아간다는 관념 그 자체가 사라져 버린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런 사고방식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 그래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고 말았지. 통 크게 굴지 않게 되고, 자질구레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만 남았어. 최악의 상태야. 무엇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나는 통 알 수가 없어."- P55
"일하는 건 좋아해, 별로 싫어하지 않아. 그러나 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정말 답답해. 이따금 두려워질 때가 있어."- P55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인생이 있지"라고 나는 말했다. "사람마다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고. Different strokes for different folks."- P56
같은 세대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확실히 여러 가지 종류의 수고를 덜게 된다.- P56
"감추고 있는 게 아니라, 가르쳐 주기가 귀찮았을 뿐이야. 무슨 글자냐, 그런 이름이 흔한 거냐, 어느 곳 출신이냐 같은 것만 물으니까. 대답하기가 귀찮아서 남에게 이름을 가르쳐 주는 걸 좋아하지 않아.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번거로운 일이야. 언제나 똑같은 대답을 해야 하니까."- P57
"그 어둠은 사악한 게 아니고, 네게 악의를 품고 있지도 않아. 그러니 두려워할 건 없어. 거기에 어떤 것이 살고는 있지만ㅡ너도 그 발소리를 들었지ㅡ결코 너를 해치지는 않아. 무슨 상처를 입히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만일 또 그 어둠과 마주치면, 가만히 눈을 감고, 거기서 엘리베이터가 되돌아오기를 기다리면 돼. 알겠어?"- P61
그럼 다음 뉴스- P63
될 대로 되라지, 라는 것이다. 점을 따라 선을 그어 갔더니, 이렇게 됐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었는데 여기까지 와버렸다. 나는 춤을 잘 추고 있는 것일까? 나는 머릿속으로 지금까지의 사태 진행을 차례로 더듬어보고, 그때마다 내가 취한 행동을 하나하나 체크해 봤다.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썩 좋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한 번 더 똑같은 입장에 놓인다 할지라도, 나는 역시 마찬가지로 행동할 것이다. 이게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일단 발은 움직이고 있다. 스텝을 계속 밟고 있다.- P64
여러 종류의 소리들이 물결처럼 몰려왔다 몰려가곤 했다. 이따금 그 소리에 섞여 내 심장의 고동 소리가 들렸다. 내 심장 역시 지구의 거대한 영역 중의 하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P67
이상한 일이지만, 여자의 목덜미는 나이테처럼 차례차례 나이를 먹어 간다. 왠지 알 수 없고,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물어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쨌든 소녀는 소녀와 같은 목덜미를 하고 있고, 성숙한 여인은 성숙한 목덜미를 하고 있다.- P69
"괜찮아, 또 내일이 있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돼. 내일이 지나면 또 모레가 있어"- P70
너희는 너희끼리 하면 돼. 나는 나대로 해나간다고. 나는 더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세계가 좋단 말이야.- P73
주문을 받으면 무엇이든 씁니다. 요컨대 눈 치우기와 같은 거죠- P79
마치 히치콕의 영화 장면 같다고 나는 느꼈다. 점점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되어 간다. 무엇이 정상이며 무엇이 뒤틀려 있는 건지 판단할 수 없게 되어 간다.- P83
"식욕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당신은 언제나 그래. 일이 잘되어 가면 식욕도 생겨."- P83
"훈련하면 됩니다."- P90
"그녀의 사진은 뭐라고 할까, 시라는 것을 벌거숭이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가 언어를 고르고 골라 뼈를 깎듯이 자아낸 것이, 그녀의 사진에서는 한순간에 구현되어 있는 겁니다. 구현(enbodiment). 그녀는 공기 속에서, 빛 속에서, 시간의 틈에서 그것을 날쌔게 잡아내서, 인간의 가장 깊은 부분에 있는 심적 정경을 구현하는 거예요."- P91
"무엇이 탁 갈라지며 튀어 오르는 듯한 느낌. 아무런 예감도 없이 갑자기 세계가 튕겨 나가면서 갈라지는 거예요. 시간이나 빛 따위가 dissilient 하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천재예요."- P92
"천재는 매우 희귀한 존재입니다. 일류 재능이라는 건 어디에나 있는 게 아니에요. 천재와 마주칠 수 있다는 것은, 천재를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해야겠죠. 그러나ㅡ"라고 그는 말하고,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양팔을 벌리는 것처럼 오른팔을 바깥쪽으로 내밀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혹독한 체험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 자아를 바늘처럼 찌릅니다."- P92
"나는 알게 됐어요. 이는 일생에 단 한 번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이런 만남은 일생에 한 번밖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말입니다. 그런 건 알 수 있어요, 확실히. 그리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과 함께하면 아마 나는 언젠가는 후회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함께하지 않으면 나의 존재 자체가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P93
"마음의 평온은 손에 넣기 어려운 거예요."- P94
소용돌이든 맹렬한 회오리든 모래바람이든 간에 스스로 선택한 이상은 어떻게든 그 길로 가는 수밖에 없다.- P94
하지만 대체 뭐라고 말해야 좋았단 말인가?- P95
나는 너무 냉정한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팔이 하나밖에 없든, 둘 다 온전하게 갖고 있든, 시인이든 시인이 아니든 간에, 여기는 거칠고 힘든 세계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어른이다. 우리는 이미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다. 적어도 처음으로 대면하는 상대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기본적인 예의의 문제다. 너무 냉정하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저어도 아무것도 해결되지는 않지만.- P96
"친구란 제삼자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발적인 관계입니다. 내 기억이 틀림이 없다면."- P98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어중간한 친구가 아니라, 우선 자신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주는 세계입니다. 우선 그것을 분명히 알아 둬야 해요."- P98
나이를 먹으면 암시의 암시성이라는 것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암시성이 현실의 형태를 띠기까지 가만히 기다릴 수 있게 된다. 페인트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P100
"난 어떻게 해야 해?"
"성장하는 수밖에 없어."
"성장하고 싶지 않아."
"성장하는 수밖에 없어"라고 나는 말했다. "싫어도 모두들 성장하는 거야. 그리고 문제를 안은 채 나이를 먹고, 모두들 싫어도 죽어 가는 거야. 옛날부터 죽 그래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거야. 너만이 문제를 안고 있는 건 아냐."- P102
"솜씨가 좋은 게 아냐. 단지 애정을 기울여 정성스레 만들었을 뿐이야. 그러기만 해도 상당한 차이가 있어. 자세의 문제야. 여러 가지 사물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사랑할 수 있어. 기분 좋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기분좋게 살아갈 수 있고 말이야."
"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는 거구나?"
"그 이상은 운이야"라고 나는 말했다.-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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