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바로 딱 와닿지가 않아서 그 의미를 곱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각자 성향에 따라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반대로 사람들한테 상처받는 것이 싫다든가 이외 여러 이유들로 인해 의도적으로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뭐가 옳고 그른지를 언급하고 싶진 않다. 단지 성향과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소설 속 인물이 언급한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정신질환‘이라는 워딩이 좀 마음에 걸렸다. ‘사람 좋아하는 게 정신질환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할 정도로 그렇게 심각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근데 소설 속 인물이 이렇게 언급한 데는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본문을 좀 더 읽어나가면서 알아봐야 할 듯하다. 의문은 계속 유지한 채로 말이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정신질환이랑 비슷해."- P15
때로는 이름 몇 글자가 사람의 마음을 크게 뒤흔들어버리기도 한다.- P16
지금이란 때 / 때가 지금이라면 / 이 지금을 꿈쩍없는 / 지금으로 만들 수밖에- P21
우리는 교차하는 두 줄의 직선처럼, 한 지점에서 잠깐 만났다가 그대로 멀어진 것이다.- P23
매우 신기하게도(어쩌면 그렇게 신기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 늙어버린다. 우리의 육체는 돌이킬 수 없이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보면 많은 것이 이미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강한 밤바람에 휩쓸려, 그것들은ㅡ확실한 이름이 있는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이나ㅡ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 뒤에 남는 것은 사소한 기억뿐이다. 아니, 기억조차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우리 몸에 그때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런 것을 누가 명확히 단언할 수 있으랴?- P24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남의 마음을 짓밟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내거나, 불쾌감을 안겨주거나 한다.- P40
"중심이 여러 개, 아니, 때로는 무수히 있으면서 둘레를 갖지 않는 원." 노인이 이맛살을 한층 더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런 원을, 자네는 떠올릴 수 있겠나?"- P43
"정말로 중요한 건 학교같은 데서 절대 가르쳐주지 않거든."- P44
"그런 원은 분명히 존재해. 하지만 누구의 눈에나 보이지는 않지."- P44
"알겠나. 자네는 혼자 힘으로 상상해야 돼. 정신 차리고 지혜를 쥐어짜서 떠올려보라고. 중심이 여러 개 있고 둘레를 갖지 않는 원을. 그렇게 진지하게 피나는 노력을 하고서야 비로소 조금씩 그게 어떤 것인지 보이거든."- P44
"이 세상에 어떤 가치가 있는 것치고 간단히 얻을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는가." ...(중략)... "그래도 말이야,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그 간단치 않은 일을 이루어내고 나면,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P44
"프랑스어로 ‘크렘 드 라 크렘‘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나?"
...(중략)...
"크림 중의 크림, 최고로 좋은 것이라는 뜻이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에센스ㅡ그게 ‘크렘 드 라 크렘‘이야. 알겠나?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할 뿐이지."- P45
"다시 한번 눈을 감고, 열심히 생각하는 거야. 중심이 여러 개 있고 둘레를 갖지 않는 원을. 자네 머리는 말일세. 어려운 걸 생각하라고 있는 거야. 모르는 걸 어떻게든 알아내라고 있는 거라고. 비슬비슬 늘어져 있으면 못써. 지금이 중요한 시기거든. 머리와 마음이 다져지고 빚어져가는 시기니까."- P45
"나도 물론 그때는 무척 신경쓰였어." 내가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인지 곱씹어보았지. 상처도 받았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멀찌감치 물러나 바라보니 전부 아무래도 상관없는 시시한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 인생의 크림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라고."- P48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P49
어떤 것인지 대충 알겠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더 깊이 생각하다보면 다시 알 수 없어졌다. 그러기를 되풀이한다. 아마 그것은 구체적인 도형으로서의 원이 아니라, 사람의 의식 속에만 존재하는 원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를테면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무언가에 깊은 연민을 느끼거나, 이 세상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거나, 신앙(혹은 신앙 비슷한 것)을 발견하거나 할 때, 우리는 지극히 당연하게 그 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게 아닐까ㅡ어디까지나 나의 막연한 추론일 뿐이지만.- P50
세상 사람들에게 유머감각이 결여된 건지, 아니면 내 유머감각이 워낙에 비뚤어진 건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P56
듣기 전과 들은 후에 몸의 구조가 조금은 달라진 듯 느껴지는 음악ㅡ그런 음악이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법이다.- P67
"물론 죽음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지." 버드가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완만한 것이기도 해. 자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름다운 프레이즈와 마찬가지야. 순식간에 지나가는 동시에, 한없이 잡아 늘일 수도 있지. 동쪽 해안에서 서쪽 해안만큼 길게ㅡ혹은 영원에 다다를 만큼 길게. 시간이란 관념은 그곳에서 사라지고 없어. 그런 의미로 보면, 나는 하루하루 살면서 죽어 있었는지도 몰라. 그래도 실제로 맞는 진짜 죽음은 철저하게 무거워. 그전까지 존재했던 것이 갑자기 통째로 사라져버리지. 완전히 무無가 되어버려. 그리고 내 경우, 그 존재는 나 자신이었어."- P68
"죽을 때 내가 뭘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아?" 버드가 말했다.
"내 머릿속에 있었던 건 그저 하나의 멜로디였어. 그걸 도돌이표처럼 언제까지고 머릿속으로 흥얼거렸지. 그 멜로디가 도무지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거든. 왜 가끔 그럴 때 있잖아? 멜로디 하나가 머릿속에 달라붙어버리는 거. 그게 뭔고 하니,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1번, 3악장의 한 소절이었어. 이런 멜로디야."
버드가 작게 허밍으로 그 멜로디를 읇조렸다. 나도 아는 멜로디였다. 피아노 솔로 파트다.- P69
"베토벤이 쓴 멜로디 중에서 최고의 스윙이라 할 수 있는 소절이야." 버드가 말했다. "나는 그 1번 콘체르토를 옛날부터 좋아했어. 셀 수 없이 들었지. 슈나벨이 연주한 SP 레코드로, 그래도 희한한 일이지. 이 찰리 파커가 죽을 때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흥얼거린 것이 하필이면 베토벤의 멜로디라니. 그러고는 어둠이 찾아왔어. 막이 내리듯이." 버드는 쉰 목소리로 작게 웃었다.- P69
당신은 이 이야기가 믿어지는가?
믿는 게 좋다. 어쨌거나 실제로 일어난 일이니까.- P71
한때 소녀였던 이들이 나이를 먹어버린 것이 서글프게 다가오는 까닭은 아마도 내가 소년 시절 품었던 꿈 같은 것이 이제 효력을 잃었음을 새삼 인정해야 해서일 것이다. 꿈이 죽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실제 생명이 소멸하는 것보다 슬픈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때로 매우 공정하지 못한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P76
그곳에 있었을 중요한 메시지는 모든 꿈의 핵심들과 마찬가지로 미로 속으로 사라졌다.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P77
기억이란 때때로 내게 가장 귀중한 감정적 자산 중 하나가 되었고, 살아가기 위한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 큼직한 외투 주머니에 가만히 잠재워둔 따뜻한 새끼고양이처럼.- P79
그곳에는 음악이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곳에 있었던 것은 음악을 포함하면서도 음악을 넘어선, 더욱 커다란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 정경은 순식간에 내 마음속 인화지에 선명히 아로새겨졌다. 아로새겨진 것은 한 시대 한 장소 한 순간의, 오직 그곳에만 있는 정신의 풍경이었다.- P83
귀기울이면 거의 언제나 그들의 곡이 들려왔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비틀스의 음악은 우리 주위를 구석구석 둘러싸고 있었다. 마치 꼼꼼하게 바른 벽지처럼.- P86
우리의 인생은 결국, 그저 요란하게 꾸민 소모품일 뿐인지도 모른다.- P87
거창한 오해에 거창한 화해가 뒤잇고, 몇 가지 장애물이 안개 걷히듯 해소되고,- P88
"질투심이 많으면 가끔은 무척 힘들어."- P89
‘의미 없는 질문‘이란 답의 옳고 그름을 논리적으로 판정하기 힘든(혹은 판정할 수 없는) 질문을 말한다. 작품을 쓴 작가 본인조차 과연 판정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것들이다.- P97
문학에서 비교적 이치에 맞는다는 것이 과연 미덕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P98
"불은 불로 다스린다. 뭐 그런 말도 있잖아."- P101
‘너는 굿바이라 말하고, 나는 헬로라 말하네.‘- P114
내가 도쿄에서 만났던 한 여자는 그 종을 확실히 울려주었다. 그것은 논리나 이론을 따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의식 혹은 영혼의 훨씬 깊은 곳에서 멋대로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을 뿐, 개인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종류의 일이다.- P117
"자네가 그때 읽어준 아쿠타가와의 「톱니바퀴」에, 비행사는 고공의 공기만 마시기에 갈수록 지상의 공기를 견딜 수 없어진다…………… 뭐 그런 말이 나왔었잖아. 비행기병이라던가. 그런 병이 정말로 있는지는 몰라도, 그 문장이 지금도 기억나."- P118
사람에게는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것이 있다.- P129
그렇다.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 하는 데서 나온다.- P131
반쯤 어이없는 듯, 반쯤 감탄한 듯.- P137
물론 지는 것보다야 이기는 쪽이 훨씬 좋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경기의 승패에 따라 시간의 가치나 무게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시간은 어디까지나 똑같은 시간이다. 일 분은 일 분이고, 한 시간은 한 시간이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하든 그것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시간과 잘 타협해서, 최대한 멋진 기억을 뒤에 남기는 것ㅡ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P147
"죄송합니다. 저기 이거 흑맥주인데요"- P148
자, 팀이 이기기를 빌어보자. 그리고 동시에 (남몰래) 지는 것에 대비해보자.- P148
추함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P153
관찰한 바에 따르면, 내가 아는 아름다운 여자 중 많은 이는 자신의 아름답지 못한 부분ㅡ인간의 신체 환경에는 반드시 그런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ㅡ이 불만스럽거나 거슬리는 탓에 항상 심적으로 시달리는 것 같았다. 아무리 사소한 단점도, 잘 보이지도 않는 흠결 하나조차 그녀들은 그냥 넘기지 못했다. 어떤 경우에는 속앓이까지 했다.- P153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ㅡ혹은 못생겼다는 것을ㅡ나름대로 즐길 줄 아는 여자는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아름다운 여자에게도 어딘가 보기 싫은 구석이 있듯이, 어떤 못생긴 여자에게도 어딘가 아름다운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녀들은 아름다운 여자들과는 달리 그런 부분을 기탄없이 즐기는 듯했다. 대체도 없거니와, 비유도 없다.- P154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은 종종 보는 시각에 따라 완전히 뒤바뀐다. 빛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림자가 빛이 되고, 빛이 그림자가 된다. 양이 음이 되고, 음이 양이 된다. 그런 작용이 세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본질인지 혹은 그저 시각적 착각인지는 내가 판단하기 버거운 문제다.- P154
혼자 콘서트를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는 보통 소소한 연대감 같은 것이 생긴다.- P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