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원 미상의 남자의 부탁을 받고 여자친구와 함께 특정한(?) 양을 찾으러 떠나기로 한다. 근데 이 여정이 최소 1달 이상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보이자 기르던 고양이를 위에서 언급한 신원 미상의 남자에게 맡기기로 한다. 오늘 처음 밑줄친 부분에서는 ‘나‘가 고양이를 부르는 별도의 이름이 그동안 없었음을 보여주는데, 마지막에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는 말이 뭔가 철학적으로 느껴졌다. 독자인 나의 철학적인 지식이 부족한 관계로 이 말이 어떤 철학자와 관련이 있는지까지는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게 만드는 문장임은 분명해보인다.
근데 글을 쓰다보니 문득 ‘데카르트인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지나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뭐 이런 말 있지 않나? 물론 아닐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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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는 ‘나‘와 신원 미상의 남자 밑에서 일하는 어느 운전사와의 다소 추상적인(?) 대화가 오가는데, 어떤 사물의 본질에 대해 탐구해가는 듯한 모습이 나름대로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름이 뭐죠?"
"이름은 없어요."
"그럼 뭐라고 부르지요?"
"부르지 않아요"라고 나는 말했다.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이에요."- P272
"하지만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 아닙니까?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데 이름이 없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은데요?"
"정어리도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지만, 아무도 이름 같은 건 붙이지 않아요."
"하지만 정어리와 인간 사이에는 우선 마음의 교류 같은 게 있을 리 없는 데다 제 이름이 불린다고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그야 뭐, 붙이는 건 자유겠지만."- P272
"다시 말해서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고 인간과 마음을 교류할 수 있으며, 게다가 청각을 가진 동물만 이름이 붙여질 자격이 있다는 말이 되겠군요."- P272
"그렇다면 목적성이라는 것은 이름에 있어서는 양의적인 요소겠네요?"
"그렇습니다. 목적성만이라면 번호면 되지요.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이 당한 것처럼 말이지요."- P276
"하지만 말이죠, 만약에 이름의 근본이 생명의 의식 교류 작업에 있다면 왜 역이나 공원, 야구장에는 이름이 붙어 있지요? 생명체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중략)...
"호환성이 없기 때문 아닐까요. 예를 들어서 신주쿠 역은 하나밖에 없고 시부야 역과 바꿀 수는 없잖아요. 호환성이 없다는 점과 공장에서 생산되는 대량 생산물이 아니라는 점. 이 두 가지면 어떻습니까?"- P276
"그렇다면 그것은 물체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역할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뜻이 되겠군요. 그건 목적성이 아닌가요?"- P277
"가령 내가 의식을 완전히 포기하고 어딘가에 꽉 고정되었다고 하면, 내게도 훌륭한 이름이 붙을까요?"- P278
"비행기 덕분에 열 시간 이상이나 시간이 절약되는 셈 아냐? 그만큼의 시간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시간은 아무 데도 안 가. 가산될 뿐이지. 우리는 그 열 시간을 도쿄에서든 삿포로에서든 마음대로 쓸 수가 있는 거야. 열 시간이면 영화를 네 편 보고 식사를 두 번 할 수 있지. 안 그래?"
"영화도 보고 싶지 않고, 식사도 하고 싶지 않다면?"
"그건 그쪽 사정이지. 시간 탓은 아니야."- P281
"있잖아, 시간은 팽창해?"라고 그녀는 내게 물었다.
"아니, 시간은 팽창하지 않아"라고 나는 대답했다. 내가 말했는데도 전혀 내 목소리 같지 않았다. 나는 헛기침을 한 다음 가져온 커피를 마셨다. "시간은 팽창하지 않아."
"하지만 실제로 시간은 늘어나고 있잖아. 당신이 말했듯이 가산되고 있고."
"이동에 필요한 시간이 줄었다는 것뿐이야. 총 시간은 변하지 않아. 단지 영화를 많이 볼 수 있다는 것뿐이란 말이야."
"영화를 보고 싶다면 말이지?"라고 그녀는 말했다.- P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