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읽고보고듣고쓰고
최근 저자의 작품들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알게 된 작품이다.

처음부터 쭉 읽어나가다가 인상적인 문구가 눈에 띄어 밑줄을 그어보았다. 형태가 없는 것을 택하라는 말의 의미를 막연하게 추상적으로는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적용하면 좋을지는 솔직히 지금 이 시점에서는 그닥 감이 오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이 말을 기억해두었다가 앞으로 차차 살아가면서 경험해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형태가 있는 것과 형태가 없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형태가 없는 것을 택하라. 그것이 나의 룰이에요. 벽에 부딪혔을 때는 항상 그 룰에 따라 행동했고, 긴 안목으로 보면 그게 좋은 결과를 낳았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몹시 힘들었어도."- P31
세월은 그만큼의 몫을 분명하게 챙겨가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모습은 자기 자신의 변화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했다.- P34
"음악의 세계는 신동의 무덤이야."- P35
"물론 내게도 그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어.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포기한 거. 당연히 실망이 컸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헛수고로 끝나는구나 하고.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고 싶은 기분도 들었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귀가 내 손보다 훨씬 더 뛰어났어. 나보다 실력 있는 녀석들은 꽤 많았지만 나보다 귀가 예리한 녀석은 없었어. 대학 들어가고 얼마 뒤에 그걸 깨달았어.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지. 이류 피아니스트가 되기보다는 일류 조율사가 되는 게 나 자신을 위해서 좋겠다."- P35
"희한한 얘기지만, 조율을 전문으로 공부한 뒤부터 오히려 피아노 치는 게 즐거워졌어. 어렸을 때부터 죽을 둥 살 둥 피아노를 쳤잖아. 연습을 거듭해서 실력이 느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어. 하지만 피아노 치는 게 즐겁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것 같아. 나는 오로지 문제점을 극복할 목적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었어. 건반을 잘못 짚지 않도록, 손가락이 꼬이지 않도록, 사람들을 감동시키도록. 하지만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을 포기한 다음부터는 음악을 연주하는 기쁨이라는 게 겨우 이해가 되더라고. 음악이라는 게 이렇게 멋진 것이구나, 그제야 실감했어. 마치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홀가분했지. 짊어지고 있는 동안에는 그런 걸 짊어졌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지만."- P36
"그렇게 하면서 나는 가까스로 본래의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 자연스러운 모습의 나 자신으로."- P37
우연이 몇 가지 겹쳤어. 몇 가지 우연이 겹쳐서,- P40
"그건 아마도 내가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던 거예요."- P41
"계기가 무엇보다 중요했어요. 나는 그때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연의 일치라는 건 어쩌면 매우 흔한 현상이 아닐까라고요. 즉 그런 류의 일들은 우리 주위에서 그야말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하지만 그 대부분은 우리 눈에 띄는 일도 없이 그대로 흘러가버리죠. 마치 한낮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희미하게 소리는 나지만 하늘을 올려다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분명 우리 시야에 일종의 메시지로서 스르륵 떠오르는 거예요. 그 도형을, 그 담겨진 뜻을 선명하게 읽어낼 수 있게. 그리고 우리는 그런 걸 목도하고는, 아아,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참 신기하네, 라고 화들짝 놀라죠. 사실은 전혀 신기한 일도 아닌데. 나는 자꾸 그런 마음이 들어요. 어떻습니까, 내 생각이 지나치게 억지스러운가요?"- P42
무게를 지닌 과거는 어디론가 어이없이 사라져버렸고 미래는 아득히 머나먼 어둠침침한 곳에 있었다. 과거도 미래도 지금의 그녀와는 거의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그녀는 시시각각 이행하는 현재라는 시간 속에 주저앉아 파도와 서퍼들이 만들어내는 단조로운 반복의 풍경을 그저 기계적으로 눈으로 따라잡고 있었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구나. 그녀는 어느 시점에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P54
나는 그냥 나로 살아갈 뿐이야.- P61
"여자와 잘 지내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어. 첫째, 상대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줄 것. 둘째, 옷차림을 칭찬해줄 것. 셋째, 가능한 한 맛있는 걸 많이 사줄 것. 어때, 간단하지? 그렇게 했는데도 안 된다면 얼른 포기하는 게 좋아."- P80
굳이 생각해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내가 바라던 케이스였다. 하지만 나는 일정표를 한참동안 들여다보며 뭔가를 조정하는 척했다. 덥석 달려들듯이 일을 받으면 뭔가 다른 속셈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미심쩍게 생각할 수 있다.- P95
모든 사건은 뒤에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을 찾아내는 게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P101
중요한 흔적을 찾아내는 일은 까다로운 동물을 길들이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 쉽게 되는 게 아니다. 인내심과 주의력, 그게 이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그리고 물론 직관도.- P105
"때로 우리에게는 말이 필요가 없어요." 노인은 말했다. 내 인사말이 들리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한편으로 말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항상 우리의 개입이 필요하지요. 우리가 없어지면 말은 존재 의미가 없어요. 그렇죠? 그건 영원히 말해지는 일이 없는 말이 되어버리고, 말해지는 일이 없는 말은 더는 말이 아니겠지요."- P110
"이건 수없이 되풀이해서 생각할 가치가 있는 명제올시다."- P111
나는 다시 어딘가 또 다른 장소에서 문인지 우산인지 도넛인지 코끼리인지의 모양을 한 것을 찾아다니리라.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P120
"남자가 평생 동안 만나는 여자 중에 정말로 의미 있는 여자는 세 명뿐이야. 그보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아."- P123
"상이라는 건 어차피 업계의 기대치대로 가는 거잖아."- P129
남겨진 두 명 중의 한 명일까. 2구째 스트라이크일까. 그냥 보내야 할까 아니면 스윙을 해야 할까.- P130
"다른 뭔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어. 다른 선택지는 생각도 못 했어."- P130
"누구에게나 출발점이라는 게 있어. 아직 앞날이 창창하잖아. 처음부터 완전한 건 있을 수 없어."- P130
"관찰하고 관찰하고 또 관찰하면서 판단은 가능한 한 뒤로 미루는 게 소설가의 올바른 자세야."- P131
"작은 비밀이라는 건 매우 소중한 거야."- P132
"직업이라는 것은 본래 사랑의 행위여야 해. 편의상 하는 결혼 같은 게 아니라."- P133
"저마다 사연이 있는 법이니까."- P138
일단 말로 입 밖에 내버리면 어떤 종류의 일들은 아침이슬처럼 가뭇없이 사라진다. 언어의 미묘한 차이는 얄팍한 묘사로 변해버린다. 비밀은 더는 비밀이 아니게 되어버린다.- P141
"정답이 꼭 필요할 때는 정답을 내려주기로 했어."- P141
"준페이, 이 세계의 온갖 것들은 의지를 갖고 있어."- P144
이 돌은 외부에서 온 물체가 아니구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사이에 준페이는 그것을 깨달았다. 중요한 건 그녀의 내부에 있는 뭔가였다. 그녀 안의 뭔가가 콩팥 모양의 검은 돌을 활성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것을 원했다. 그러기 위한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었다. 밤마다 자리를 바꿔 이동하는 방식으로.- P147
전체적인 흐름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다음 이야기를 쓰는 것은 비교적 수월했다.- P148
"무엇보다 멋진 것은 그곳에 있으면 나라는 인간이 변화한다는거예요." 그녀는 인터뷰어에게 말했다. "아니, 그보다 변화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요. 높은 곳에 올라서면 그곳에 있는 것은 단지 나와 바람뿐이에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바람이 나를 감싸고, 나를 뒤흔들어요. 그렇게 바람이 나라는 존재를 이해합니다. 동시에 나는 바람을 이해하고요.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하는 거예요. 나와 바람뿐, 그밖에 다른 것은 끼어들 여지가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건 바로 그런 순간이죠. 아뇨, 공포감은 없어요. 일단 높은 곳에 발을 내딛고 그 집중 속에 빠져버리면 공포감은 사라집니다. 우리는 친밀한 공백 속에 함께 존재해요. 나는 그런 순간이 세상 무엇보다 좋은 거예요."- P154
투 스트라이크, 이제 남은 건 한 명이라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 이제 공포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다. 카운트다운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중요한 것은누군가 한 사람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이다, 라고 그는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야 하는 것이다.- P156
같은 무렵, 여의사의 책상 위에서는 콩팥 모양의 검은 돌이 자취를 감춘다. 그녀는 어느 날 아침, 그 돌이 더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걸 안다.-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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