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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판본 단종애사 (端宗哀史) : 1457년 청령포, 단...
  • 이광수
  • 9,900원 (10%550)
  • 2026-03-30
  • : 3,561
이 책의 제목은 ‘단종애사‘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단종의 모습보다는 단종과 직접적인 대척점에 있는 수양대군을 필두로 하여 그외 다양한 인간군상들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가장 먼저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 수양대군과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기억되는 측면들이 많지만, 독자인 나는 이 소설 곳곳에서 기존 수양대군의 이미지와는 다소 상반되는 모습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수양을 보필하는 정인지, 한명회, 신숙주 등과 같은 사람들이 화근을 미리 없애기 위해서라도 단종을 하루속히 죽여야 한다고 끊임없이 간언하지만, 수양은 그간 겉으로 드러났던 이미지와는 달리 단종을 죽이는 것을 끝까지 허락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로인해 수양의 부하들이 심히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독자인 내 관점에서는 수양이 그래도 마음 속 한 구석에 최소한 일말의 선한 양심은 남아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가 이 책을 쓴 저자가 그저 지어낸 것인지 아니면 진짜 조선왕조실록같은 곳에도 나와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 책에 나온 내용들이 사실에 기반해서 적혔다는 가정하에서 생각해본다면 수양의 내면을 보여준 이러한 모습은 기존에 수양에 대한 안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나같은 독자에게는 새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이에 더해 수양이 권력을 획득한 뒤 단종을 따르던 충성스럽고 능력있는 신하들을 자신의 휘하로 삼고자 삼고초려하는 모습도 독자인 내 딴에는 나름대로 새롭게 느껴졌다. 물론 그들 중 대다수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이유로 수양의 제안을 결과적으로 거절하긴 하였지만 거절여부와는 별개로 수양이 인재를 귀히 여기는 모습을 보면서 수양이라는 사람이 나름대로 군주의 재목이 있었던 사람이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권력이라는 건 언제나 그렇듯 비정하기 짝이 없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다고 그랬던가. 한 나라의 왕은 오직 한 명밖에 될 수 없는 것이다. 수양이 아무리 내면에 자신의 조카인 단종을 아끼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할지라도 현실 세계에서는 두 사람이 공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수양도 결국 사람인지라 욕심이라는 게 없을 수가 없었고 그의 휘하에 있는 한명회나 권람 등과 같은 모사꾼들의 조언에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수양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엄청난 피바람을 몰고 온다. 선왕이었던 문종의 명을 받들어 단종을 섬겼던 신하들을 차례차례 죽여버리고 심지어는 직접적인 죄가 없는 사람들까지도 단종과 어떻게든 연결지어서 화근을 뽑는다는 명목으로 죄를 뒤집어 씌워서 죽여버린다. 예를 들면 역모로 몰아버린다든지 등의 이유로 말이다. 이 과정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죽어나갔던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보며 참으로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저런 피바람이 부는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 이러한 권력 싸움은 지금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져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당시 시대의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일신의 안위를 위해 기존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배신하는 캐릭터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성삼문과 함께 거사를 계획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한 김질이라든가 이 소설 마지막 부분에 금성대군이 수양대군을 대적하려고 하자 그 계획을 미리 알고 수양에게 고자질하려 하는 급창, 김효흡 등이 기억난다.

근데 무작정 이러한 배신자들을 욕만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과연 내가 저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어떤 의로움을 추구하기보다는 권력에 기생하여 일신의 안녕을 꾀하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솔직히 장담할 수 없을 듯하다. 떠오르는 권력인 수양에게 잘만 보이면 그야말로 인생의 팔자가 쫙 필 수 있을텐데 말이다. 무작정 그 배신자들을 욕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어쩌면 사는 게 다 잘먹고 잘살자고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런 배신자 같은 소인배들과는 달리 죽을 땐 죽더라도 끝까지 충절을 지켰던 인물들도 적잖이 만나볼 수 있었다. 우리가 소위말하는 사육신이라 불리는 사람들로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등과 같은 사람들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일단 대표적인 인물들만 몇 명 적어보았다.) 이들은 어떤 물질적인 부나 권력을 추구하기보다는 의로움, 충절 등과 같은 귀중한 가치를 추구했던 인물들이다. 이들 중에는 수양이 아꼈던 재능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기꺼이 죽을지언정 끝까지 수양의 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솔직히 권력이나 부를 탐했다면 단종을 버리고 수양의 밑으로 들어가 새출발을 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들에게는 그러한 것보다는 어떤 의로운 가치를 택하는 것이 더 의미있는 삶이었던 것 같다. 죽음의 순간에도 마음이 불편한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박팽년의 말은 독자인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상반되는 삶을 억지로 꾸역꾸역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그의 생각은 나를 포함한 수많은 독자들에게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인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는 단순히 역사소설 속에서 어떤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을 뛰어넘어 소설을 읽고 난 뒤 독자 각자의 삶에 적용할만한 시사점을 던져주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위에 적어본 것들 외에도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해보고 교훈을 얻어갈만한 다양한 포인트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나오는 작품이다. 혼란했던 시기의 역사적 배경과 그 안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살펴보면서 독자들 각자 나름대로 이런저런 것들을 배우고 느껴가는 시간이 되길 바래보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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