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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보고듣고쓰고
지난번 포스팅의 후반부에서 ‘게오르크 칸토어‘라는 인물이 소개되었는데,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이 사람은 독일계 러시아인 태생의 수학자로 무한 개념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선구자로 유명했다고 한다.

본문에는 이 사람이 연구했다고 알려진 무한 개념과 관련된 다소 철학적인(?) 얘기들이 나오는데, 내용이 내용인지라 때론 굉장히 추상적이고 뜬구름잡는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의미를 두어번 곱씹어가며 읽다보니 이해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내가 그동안 잘 몰랐던 어떤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한 번 알아 가보겠다는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던게 나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거대한 흐름에서는 자신 바깥에 아무것도 없어, 그리고, 그리고 이것이 핵심인데 자신 안에도 아무것도 없다고!!! 따라서 이 탐구적 검토에서 결과를 얻으려는 건 생산적이지 못해, 그게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까닭이야, 우리가 연구에서 올바른 방향을 저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이란 없기 때문이라고,- P479
그래,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그렇다‘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우리가 ‘오로지‘ 말할 수만 있는 이유이지, 그것은 하지만 확장할 수 없어, 확장은 우리 두뇌 속 과정이거든,- P479
나는 이걸 다시 언급할 거야, 나는 다시, 또다시, 또다시 결코 그만두지 않고 되풀이하니까, 일반적으로, 네가 눈치챘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반복을 좋아하거든, 반복은 마비를 일으키니까, 이 마비는 직관이 생겨나거나 탄생하는 데 매우 필요해,- P479
우리는 여기서 단지 과정을 직면하고 있어, 그것을 통해 우리가 옳다고 확증된 길을 따라 나아가면 우리는 즉시 결과에 도달할 거야, 이 결과가 개탄스럽다는 게 문제이지만,- P480
처음의 처음으로부터 그것은 무엇으로 이어졌던가, 그것은 실재의 구성 요소가 있다는, 존재한다는 위대한 가설, 위대한 부족적 사상으로 이어졌어, 이로써 그것이 실재 ‘바깥‘에 있는, 실재 너머에, 실은 그위에 존재하는 실재의 구성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배제돼,- P480
이제 다시 이것으로, 이 공간성으로, 이 모든 양적 오류와 더불어 돌아왔어, 말하자면 처음의 처음에 신과 신적인 것, 그리고 온갖 삼라만상이 생겨났어, 그리고 이건 유일한 바이러스, 유일하게 치명적인 실제 바이러스, 온 인류를 불치병에 걸리게 하는 유일한 바이러스야, 이로부터 실제로. 하지만 실제로, 그리고 진실로 우리는 결코 스스로 해방할 수 없을 거야, 생각을 말살하려 해봐야 소용없어, 우리 자신이 생각에서의 어떤 결과에 도달하지 못하게 끊임없이동원해야 하는 일관되고 지독하고 무시무시하고 엄격한 주의력, 정신은 결코 단 한 순간도 이것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하지 못해, 이 가설들이 처음 생겨난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조차 무의미해,- P480
하지만 주로는 이른바 근대성을 이야기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 그에 따르면 어떤 것은 믿음 없는 앎, 신 부재의 자명함, 기타 등등을 토대로 삼아, 이 시대는ㅡ한편으로 기세등등하고 한편으로 괴멸적이고 한편으로 의기양양한데ㅡ깊이 들여다보면 이 시대는 자유가 아니라 치욕의 연대기에 불과하며 다시 한번 무신론자들이 득세했고 이는 개탄할 만한 일이니 그들이 실제로는 조금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용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요, 한 발 더 내디디는 용기, 신이 없다는 관념에서 그들이 실제로 ‘제시한‘ 조치를 취하는 용기, 이것이야말로 언제나 그들에게 결여된 것이었으니 그들은 비난받았으며 어쩌면 오늘날에도 일관성이 결여되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바, 글쎄, 아니, 내 너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건대 그들에게 결여된 것은 용기였으니 그들은 비겁했고 이날까지도 여전히 비겁하며 참된 무신론자는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고 (물론 여전히 그럴 수 있었음에도) 어쨌든 저 측은한 거렁뱅이들, 어제와 오늘의 무신론자들, 그들은 거창한 문장을 내뱉었고 자신들의 말 때문에 즉시 바지를 적시고 말았으나 그들이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그 중요성을, 자신들이 방금 발견한 것의 놀라운 중요성을 깨닫지도 못했기에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무가치한 일이기 때문이며ㅡ그가 대합실에서 손을 내두르며ㅡ그들의 문제는 그들 중에서 더 똑똑한 자들조차 그 기본적 의미가 엄연히 존재할 때 네가 무언가를 발견했는데도 그것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직 없고 개념은 아무런 쓸모가 없을 때 그 의미를 가지고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었으나 그 의미는 엄연히 존재하고 바로 손안에 있고 미끄러져 달아날까봐 네가 강박적으로 움켜쥐거니와 물론 네가 손을 펴면 그것은 미끄러져 달아나고 너는 그것을 찾아내려 하지만 그것은 어디에도 없으니 그게 세상 이치이며 그들이 손을 펴지 않았다면 그들은 문제의 핵심을 바로 자신의 손안에서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인바 내가 비유를 뒤섞더라도 양해해준다면 말이지만, 그들은 그것을 깨달았을 것이고 그들은 그것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나, 그가 덧붙이길, 아니, 그들은 결코 그러지 않았으나 그것은 지금은 제쳐두기로 하자,- P482
신을 부정하는 것은 단지 죄수의 감방에 지나지 않으니 그것은 분노, 오만에서, 위대함을 언뜻 보는 것에서 비롯하며그 뒤에는 위대함에 대한 질투가 도사리고 있으니 그것이 터무니없으면서도 명약관화한 것은 우리가 분명히 보는 사실, 이 욕망마저도 전적으로 오해에서 실탄을 얻기 때문인바 분명히 보려는 우리의 욕망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P482
그래, 내 말하건대 그것이 얼마나 흥미로운 실수인지, 명약관화를 원하는 것이 어떤 문제에서든, 무한의 문제이든 초월의 문제이든 그 어떤 것에서든 우리가 분명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나게 흥미로운 실수인지 깨달아야 하거니와 이것들은 단순한 주제가 아니요, 이것들은진정한 비실재요, 심리학이나 신심리학으로 다루어야 제격인바 이 두 학문이 인간의 어리석음이 낳은 시들어빠지고 보잘것없는 열매로서 당장 근절되는 것 또한 최선이겠지만그럼에도 여기서 우리가 다뤄야 하는 것은, 말하자면 칸토어와 그의 신이니 우리가 이를 다룬다면 적어도 ‘무언가‘를 다루는 셈인바, 말하자면 우리는 두려움을 다루고 있는 것이요, 칸토어와 그의 신이 흥미롭다면ㅡ그들은 실제로도 흥미로운데ㅡ우리는 그것을 다루어야 하며 그것이 이 지점에서 우리가 이것에 다시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까닭이니- P483
두려움이 인간 존재를 정의하는 것임은 그것이 단순한 감정이요, 쉽게 없애버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인데, 글쎄, 아니, 우리는 그것을 쉽게나 어렵게나 없애버릴 수 없으니 그것은 두려움이 우리의 질문ㅡ칸토어와 그의 신ㅡ한가운데에 있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아내는 것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나 그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으니 여기서 우리의 임무는 우리의 시선이 두려움의 범위 전부를 포괄하도록 하는 것이며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음, 물론 그것은 우리가 두려움을 그 모든 결과와 더불어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뜻이며 이 말인즉 인간을 그저 보기만 하라는 것이나, 아니,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지구상의 뭇 생명 모두를 살펴보라는 것인데, 아니, 그것도 마뜩잖으니 이런 식으로 표현해보자,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생물계와 무생물계의 모든 구성원을 봐, 그러면 너는 두려움이 이 생물계와 무생물계에서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한 요소임을 알게 될 것이니 두려움 이외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그 밖의 무엇도 그토록 무시무시한 힘을 속에 지니지 않았기 때문으로, 두려움을 제외하면 그 무엇도 생물계와 무생물계의 어느 것 하나 그토록 거대한 정도로 정의하지 못하기에 모든 것은 두려움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데,- P484
이것을 추적해도 저것을 추적해도 두려움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므로- P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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