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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보고듣고쓰고
지난번 포스팅까지 해서 일단 이 책에 나왔던 17개의 스토리는 다 읽었다. 오늘은 옮긴이가 번역을 하면서 생각하거나 느꼈던 것들을 허심탄회하게 독자들에게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앞부분만 잠깐 읽어봤지만 번역이라는 게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한국어는 장문을 쓰기가 쉽지 않은 언어다. 고종석의 말마따나, 관계대명사를 이용하여 절을 무한히 늘어뜨릴 수 있는 영어와 달리 한국어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절을 연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P666
영어는 주어 바로 뒤에 동사가 나오고 나머지 문장 성분들은 동사가 미리 지정한 자리에 놓이기에 구조를 분석할 때 인지 부하가 크지 않지만, 맨 뒤의 서술어를 봐야 비로소 문장의 구조를ㅡ심지어 긍정, 부정 여부까지도!ㅡ파악할 수 있는 한국어는 끝까지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으므로 문장이 길어질수록 인지 부하가 커진다. 그런 탓에 주어와 서술어 사이가 너무 멀어지면 미처 서술어에 도달하기도 전에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다.- P666
영어 문장은 대부분 명사로 끝나고 다음 문장 또한 명사로 시작하기에 두 명사를 똑딱이 단추처럼 결합하여 문장을 연결하는 방법을 쓸 수 있는 반면에, 한국어는 문장이 용언으로 끝나기에 연결 어미를 이용해야 한다. 이런 탓에 영어 복합문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어순이 뒤죽박죽이 되기 쉽다.- P667
문법에 맞게 문장성분을 배열하면서도 시간적, 논리적 순서와 정보 구조(이미 아는 정보가 먼저 나오고 새로운 정보가 뒤에 나오는 원리)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어 번역가라면 누구나 골머리를 썩이는 과제다.- P667
연결 어미를 써야 한다는 말은 (영어에서는 관계대명사절에서 암묵적으로 전제되는) 문장과 문장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나타내야 한다는 뜻이다. 영어에서 ‘brother‘라고만 썼어도 한국어에서는 ‘형‘인지 ‘동생‘인지 알아내어 구분해줘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P667
문장들이 대부분 ‘다‘로 끝나는 한국어 문어체는 낭독할 때 딱딱하게 들리며 교착어인 한국어의 풍부한 어미를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지만, 만연체를 구사하여 문장들을 연결하면 리듬감을 살리고 연결 어미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P667
본문을 보면 접속사가 거의 쓰이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연결 어미로 절과 절의 시간적·논리적 관계를 표시하기 때문에 접속사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어가 영어에 비해 오히려 만연체의 본령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다.- P667
번역에서 골머리를 썩인 것 중 하나는 종속절의 주절을 파악하는 문제였다. 영어에서는 종속절이 주절 앞에 올수도 있고 뒤에 올 수도 있는데, 절이 두 개이면 종속절이 아닌 절이 당연히 주절이겠지만 종속절 앞뒤에 둘 다 절이 있으면 그중 어느 것이 주절인지를 문법적으로는 파악하기 힘들다. 종속절이 언제 끝나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문장의 의미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P668
영어판에서는 인칭대명사를 특이하게 구사한다. 영어에서는 인칭 대명사의 선행사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기에 이를 위한 장치(성, 수, 인칭대명사와 선행사의 거리)에 주목하게 마련이지만, 이 책에서는 선행사를 알 수 있는 단서를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P668
종속절 문제와 지금의 선행사 문제는 독자에게 더 능동적인 독해를 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명상으로서의 독서‘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글쓰기 전략이지만, 번역자는 자신의 해석을 신뢰할 수 없기에 끊임없이 고뇌에 빠지게 된다.- P668
드러남 또는 깨달음으로서의 에피파니(예술적, 종교적 경험)의 순간은 텍스트로부터 독자에게 직접 나타나는 것- P669
‘가모‘의 한자 ‘鴨(오리 압)‘은 ‘압록강‘의 ‘압‘과 같다.- P669
주인공이 강렬한 햇빛에 눈이 머는 것은 일생일대의 목표에 사로잡혀 일상의 행복을 보지 못하는 현실을 돌이켜 보게 한다. 우리는 일상의 행복을 언제든 손에 쥘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하찮게 여기지만, 한번 놓치면 평생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크로폴리스만이 아니다.- P675
어쩌면 예술가의 임무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 존재들의 호소에 귀 기울이는 것 아닐까?- P679
쉼표의 ‘쉼‘은 잠시 멈추고 휴식하라는 뜻이기도 하고 숨을 쉬라는 뜻이기도 하다. 쉼표에는 ‘들이쉼표‘와 ‘내쉼표‘가 있는데, 구를 반복하거나 나열하기 위한 들이쉼표는 독자에게 긴장의 끈을 당겨야 할 때를 알려주는 반면에 하나의 의미 덩어리가 완성되었음을 나타내는 내쉼표는 독자에게 긴장의 끈을 늦추고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를 알려준다.- P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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