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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보고듣고쓰고
이 책은 우연한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책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어떤 느낌의 내용이 나올지 궁금하다. 작가 소개란을 보니 헝가리 출신의 작가님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본문에도 동유럽 쪽과 관련된 지명들이 등장한다. 맨 처음에 티서강, 카르파티아산맥 등 개인적으로는 다소 생소한 지명들이 나오는데,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모두 실존하는 지명이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참 세상은 내가 아직도 알지 못하는 것들이 무수히 많은 곳이라는 것을 느꼈다.

초반부에 나오는 상황은 운행이 예정되어있던 기차가 한참을 기다려도 도무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철도원이 주먹구구식으로 임시 열차를 급히 편성하여 운행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가 뭔가 예사롭지 않아보였다. 마치 늘상 있는 일이라는 것처럼 무던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듯하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기차가 별다른 이유없이 1시간 반이 넘도록 연착되었다면 환불은 기본이고 이외에 추가적인 피해를 배상하라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빗발쳤을텐데, 소설 속에 나오는 지역의 사람들은 그냥 덤덤할 뿐이다. 어쩌면 제목에 멜랑콜리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그런건지도 모르겠으나, 아무튼 한국인의 성향과 동유럽 헝가리 사람들의 성향이 어느정도 다른 건 분명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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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다가 오늘 포스팅의 후반부에서 음악 이론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는데, 음악 이론에 능통하신 분들이라면 좀 더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수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얘기를 잠시 하자면 독자인 나는 음악이나 미술 등과 같은 분야와 관련된 이론 또는 배경지식이 전무한 관계로 내용을 보다더 심도있게 이해하는데는 아쉽게도 한계가 있었다. 물론 최대한 본문에 나온 설명들을 이해해보려 애써봤지만 어쩔 수 없었다.

"흐르지만 흘러가지 않는다."- P5
그냥 벌어지는 대로 다 받아들였다.- P12
사람들은 여전히 가까이 손에 만져지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일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P12
팔린카 : 중부 유럽에서 마시는 과일 브랜디. 헝가리에서 유래했다.- P13
최악을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게 최선이었다.- P15
‘무언가 그래도 진척을 보이고 있다‘- P18
화낼 길도 없이 솟아오른 쓰라린 분노는 무방비의 무력감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P26
‘다 끝났어, 끝났어, 이제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어.‘- P30
그가 ‘신이고 사람이고 간에 모르는‘ 사람, 다른 말로 불지옥의 두려움이란 없어서, 무엇이든(‘무엇이든!)할 수 있는 존재로 보인다는 점이 더 소름 돋았다.- P35
자신은 운명에 제멋대로 휘둘리는 제물이라는 느낌이 한층 더 짙어지기 시작했다.- P42
일은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돌아갈 리도 없었다.- P64
모든 새로운 일에 불굴의 지지로 덤비다 보면, 혼돈으로 향하는 똑같이 열정적인 기류의 아슬아슬한 흔적들이 감지되기 마련이고, 그래서 꽤나 당연히, 그렇게 자유롭게 촉발된 폭력들은 보호는 커녕, 그들이 붙들고 있는 회복 불능으로 죽어 매장된 것들을 산산조각 박살을 내버리고, 특색 없는 그들의 이기적인 삶의 따분함을 ‘드높은 집단행동의 열정‘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의심부터 하는 것이었다.- P68
그저 약간의 문제라곤, 보통 그런 경우가 그렇듯이, 아주 적절하지만 유일한 해결책을 성사시키는게 지난한 작업이란 점이다.- P72
굴하지 않고 초연해야 할 일도 많고, 염원해야 할 일도 많았고 들여다봐야 할 일도 많았다.- P79
그랬다. 그녀는 자신만의 정적과 평온이 필요했다.- P90
행동은 지체 없이 계획에 따라야 하니까.- P99
돈으로 되살 수도 없는 시간의 경과- P121
차르다시 : 헝가리 전통 민속 춤곡.- P123
그가 우주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쏟는다고 해서 반드시 우주도 그에 대해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는 정도는 알았으니까.- P138
그의 경험상 각각의 역사, 각각의 일, 각각의 운동과 각각의 의지의 행동은 끊임없는 반복적 주기의 일부이기 때문에- P138
쌍둥이처럼 정확히 같은 방향으로, 정확히 같은 단계를 밟아 진행하고 있었다. 마치 모든 운동과 지시의 겉모습 밑에 완전하고 불가분의 통합이 있고, 이런 통합이 어떤 인간들의 사건도 하나의 무한한 순간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것처럼...- P139
그의 추측으로는, 이런 유행병같은 공포의 확산은 하루하루 증가하는 진정한 재난의 확신에서 잉태되는 것이 아니라, 내재한 공포에 대한 감수성이 결국 실제 대재앙으로 이어지게 하는 상상력의 감염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었다.- P162
우리의 모든 순간은 동틀 녘과 해 질 녘을 순환하는 지구의 왈츠를 따라 행진하며, 겨울과 여름의 잇따른 물결을 타고, 가로질러, 행성과 별을 꿰며 지나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P165
우리는 우리의 생각, 행동, 상상력에 실패했어. 심지어 우리가 왜 실패했는지 이해하려는 안쓰러운 시도조차 실패했어.- P173
다른 말로 실패작이 된 셈이지. 이 우주에 낯부끄러운 실패작이라서, 가면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는 거야.- P174
세상은 혼자서 상당히 행복하게 허물어지고 황폐하게 파멸할거야. 그래서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하게끔, 그래서 무한정 진행을 하도록.- P174
‘이는 완전히 ...(중략)... 우주 공간에서 무력한 우리의 궤도비행만큼 명백한 일이니까.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잖은가.‘- P174
‘어지러운 느낌이 드는군. 어지러워. 그리고 신에게 죄송스럽지만, 지루해. 만들어지고 부서지는 데, 탄생과 죽음으로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원을 맴돌고 있는 연유에, 차갑고 기계적인 역학의 맹목적 명백함보다 원대하고 절대적인 계획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어떻게든 떨쳐버린 사람들처럼 지루하게 느껴져.‘- P174
‘그건 한때 아마... 아주 먼 옛날에... 그런 느낌이 있었을 수도.‘ ...(중략)... ‘있지만, 오늘날 모든 게 실현돼버린 이런 서러운 인생살이 골짜기에서, 우리는 그런 문제에는 입을 닫는게 더 나을 수도 있어. 적어도 이 모든 일에 시동을 걸었던 존재의 희미한 기억은 그대로 내버려두는 게 나아. 입을 다물고 침묵하는 게 낫지.‘- P175
‘고인이 된 우리 수호신의 분명 아주 숭고했을 의도들을 짐작도 하지 말아야 해. 왜냐하면 우리가 얼마나 최선으로 목적을 향해 노력했는지 추측하는 일로 치자면, 알다시피 아주 질리도록 많이들 추측했지만, 그 과정에 어떤 성과도 이루지 못했으니까.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여기 어떤 성과도 이루지 못했고, 다른 것도 거둬들인 게 없어. 이쯤해서 한번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왜냐, 또렷한 시력이라는 바람직한 선물로 과분한 축복은 받지 못했기 때문이지. 우리가 재삼재사 세상을 향해 덤벼들 때 끊임없는 과도한 호기심은, 아주 까놓고 말해서, 혁혁한 성공과는 참 멀었어. 그리고 기이한 순간에, 무언가 시시한 비밀을 발견하면 우리는 즉시 호된 대가를 치러. 내가 형편없는 농담을 하더라도 봐주시게.‘- P175
‘내가 돌을 던지니, 내려와. 그리고 내 머리를 강타해. 교훈은 이거야. 실험해보자, 하지만 조심해서‘- P175
왜냐하면 우리가 혹시나 약간의 기회를 손에 쥐더라도 그런 기회를 자주 낭비해버리니까.- P182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갈 것이야- P182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찾아오는 불편이 보기보다 훨씬 더 엄청나다- P183
그는 의심쩍은 모험에 참여하겠다는 현실적 욕망이 없을뿐더러, 무언가 실험 삼아 덜컥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든다는 생각도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환상의 황홀과 결실 없는 추종의 비참함‘ 사이에 날카롭게 그어진 선을 모른 척 가로지른 적도 없는 사람이다 보니, 그런 어질어질한 여행길 대신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되돌릴 수 없이 여기 붙박이는 일‘이 전부임을 능히 알았다.- P183
그런 진흙탕 속에서는 아주 짧은 걸음도 힘에 부친다- P184
그의 ‘기념비적인 인내로 버틴 지속적인 시련‘을 기억 속에서 깡그리 지워버리고 싶었다.- P185
거침, 둔감함, 심히 파괴적인 증오의 지옥불과 무신경한 상스러움이 수십 년 세월을 넘자 그는 완전히 무력해졌다. 무력했지만 방어력도 없었다. 그녀를 참을 수도 없었으나(아주 잠깐이라도 이혼을 언급하면 무지막지한 욕설이 머리 위로 마구 쏟아지니)없앨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는 거의 삼십 년 동안 들볶이며 그녀와 한 지붕 아래 참고 살았고 그러던 어느날, 삼십 년 악몽의 세월 후에, 그의 삶은 ‘더 이상 내려갈데도 없이‘ 낮은 지점에 도달했던 것이다.- P187
그는 일어서고 싶었다. 아마 물 한 잔 마셔야겠다는 생각이었던 듯한데 발이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 순간에, 그는 그게 통풍이 안 되어 일어난 잠시 지나가는 발작 증상이 아니라 오십 년이 넘는 동안 황혼과 집으로의 귀로에 지쳐서 생긴 영구적인 피곤, 넌더리, 비통함과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극도의 비참함에 사로잡힌 탓이라고 이해했다.- P187
자리에 누우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단일 분도 더 잃지 않으리라. 그날 밤 침대에 몸을 누이던 그 순간에 그는 ‘광기, 저능, 따분함, 멍청함, 꼴사나움, 몰취미,
조잡함, 유치함, 무지와 대체적인 어리석음으로 향하는 인간의 타락이라는 커다란 짐‘은 다시 오십 년 세월을 더 자고일어나도 떨쳐버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P188
피타고라스가 최초로 발견했다고 하는 협화음은 간단한 정수의 비로 만들며 이런 피타고라스 순정률은 완전5도 음정의 비율로 쌓아올려 12반음계를 만드는데 한 옥타브인 5도권을 다 돌면 원래 음으로 돌아오지 않고 조금 높게 되어 어긋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대수적으로 계산한 평균율이 건반악기에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조율사가 말하는 5도는 순정 5도로 피타고라스 음룰에 맞아 그가 들고 있는 소리굽쇠에 맥놀이 현상이 없이 ‘들어맞는‘ 음정이지만 피아노의 평균율 조율과는 틀어지게 된다.- P190
(‘어떻게 이 작고 어여쁜 5도가 저기에 들어갔을까? 진짜 유감이구나, 얘야. 하지만 너를 한두 번 줄감개를 풀어줘야겠구나...‘)- P190
에스테르는 그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젊은 시절 이후로 죽 그는 확고부동한 확신 속에서 살아왔다. 그에게 조화와 울림으로 된 전능한 마법을 구성하던 음악은 상상할 수 있는 한 완벽의 근사치에 가까운 존재였기에,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쓰레기와 불결에 대항하는 인류의 유일하고 확실한 보금자리를 제공했는데, 환기도 되지 않는 답답한 홀에서 나는 싸구려 향수의 악취 속에서 프라흐베르거의 노망난 수다는 그런 투명한 관념을 모욕하는 조악한 폭력으로 느껴졌다. 프라흐베르거에 대한 분노가 봇물처럼 터졌다.- P190
그러나 조율사의 단어들은 그렇게 쉽게 갖다 버릴 수 없었다. 사이렌의 목소리처럼, 그 단어들은 귓속에서 통곡을 했고, 그를 고문했고, 이런 별 잘못 없어 보이는 잠깐의 잡담이 곧 어디로 이끌지 이미 어림짐작이라도 한 듯, 그는 그 모든 말을 마음속에서 몰아낼 수가 없었다.- P191
조율사의 말에 자연스럽게 자신이 예술원 교육 시절에 배운, ‘지난 이삼백 년간 유럽악기들은 소위 평균율 음높이에 따라 조율을 해왔다‘는 취지의 문장이 선명히 떠올랐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이런 단순한 발언 아래 정확하게 무엇이 깔려 있는지는 그의 관심사가 전혀 아니었으므로, 어떤 특별한 의미를 알아보지 못하긴 했지만, 쾌활한 프라흐베르거가 한 차례 혼자서 투덜거리는 소리는 이제 내심 무언가 애매한 미스터리가 있다고, 음악적인 발성의 완벽함에 대한 그의 필사적인 믿음이 으스러지기 전에 벗어나야 하는 일종의 모호한 짐처럼 지그시 다가왔다.- P191
그 뒤 그는 퇴직 후 몇 주가 지나, 자신을 뿌리째 뒤흔들 듯 휘몰아쳤던 가장 위험스러운 피곤의 소용돌이들을 넘어서자마자 그 주제에 몰입하는 끝없는 고투에 이를 앙다물고 착수했다. 그리고 그 주제에 몰입하다 보니, 끝까지 버티는 고집스러운 자기기만의 판타지들의 족쇄를 벗어나야 한다는 고통스러운 몸부림이 수반된다는 점이 금방 확연히 드러났다. 왜냐하면 복도에 가득 찬 먼지 낀 책장관련 책들을 다 읽는 동시에, 사면초가가 된 가치들을 지금까지 방어하려는 데 썼던 마지막 환상들로 ‘음악적 저항‘까지 완수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P192
프라흐베르거가 ‘순정 5도를 줄감개 한두 번 푸는‘ 것과 똑같이, 그래서 단지 돌이킬 수 없이 최종적으로 어두워진 하늘이 남을 때까지, 그 역시 용감무쌍한 신기루의 발상들을 퇴색시켰다. 꼭 필요 없는 것은 벗겨내며, 아니 오히려 개념의 기저를 이루는 필수적인 것을 일깨우며,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음악적인 소리와 비음악적인 소리의 감별을 시도했다.- P192
전자인 음악적 소리는 배음倍音 혹은 배진동overtone 이라는 단순 물리적인 현상에서 발생하는 특정 대칭들이다. 즉 고유의 진동은 이른바 주기파로 전체 연속 시리즈를 구성하는데 이들은 정수들의 관계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고유의 특징이 있다.- P192
그런뒤 계속 두 가지 소리가 서로 하모니를 이루는 관계 속에 존재하게 되는 필수적인 조건들을 조사했다. 그리고 ‘기쁨‘ 혹은 그런 음악적 감정의 등가물은 앞서 언급한 두 개의 소리나 음색이 최대한 많은 수로 화성을 생성할 때, 그리고 서로의 소리가 임계적으로 근접한 경우는 가능한 한 가장 최소로 있을 때 일어난다. 이 모든 것으로 마침내 그는 어떤 의혹의 그림자도 한 점 없이 12음계 조성의 개념을 분석하고 항상 한탄스러웠던 음악적 역사의 정거장들을 밝혀낼 수 있으리라, 거의 결정적인 결론에 도달했었다.- P192
그는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때마다 그 무심한 마음의 상태 때문에 구체적인 세부는 곧잘 잊어버리는 통에 부득이 기억을 늘 새롭게 하며 내용을 넓혀나가야 해서, 그렇게 열에 들뜬 몇 주를 지나는 동안 그의 방은 발 디딜 틈 없이, 함수, 미적분 수식들, 콤마, 센트, 진동수로 목록을 작성한 엄청난 양의 종이들로 된 산에 파묻혔다.-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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