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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혜님의 서재
  • 석탄아틀라스
  • 하인리히 뵐 재단 외
  • 13,500원 (10%750)
  • 2021-03-19
  • : 41

  후쿠시마 사태 이후 핵 발전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한국의 전력생산체계를 찾아 본 일이 있었다. 당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전력의 70%가 석탄 발전으로 공급된다는 사실이었다. 현재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에너지로써 석유를 상상하고, 가장 위험한 에너지로 핵 발전을 생각하던 나에게 석탄의 등장은 뜬금없었을 뿐더러 에너지 자원에 대한 나의 무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석탄아틀라스는 아직도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그러나 우리가 한 물 간 에너지라고 무시했던 석탄이 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철저한 통계와 자료를 통해 직면하게 한다. 유럽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호주의 주요 석탄 수입국이고, 신규 석탄발전소를 아직도 짓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돌아볼 때  결국 우리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석탄의 채굴로 인한 파괴적 오염과 인권침해는 이산화탄소 배출과는 별개로 다루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한번 파괴된 생태계의 복원은 회복이 어렵다. 즉, 복원한다고 해서 회복되지 않는다.  지역주민의 삶 역시도 파괴를 피할 수 없다. 지역은 한 사람의 경제적, 사회적 삶의 기반이니, 개인에게는 자신의 터전을 뺏길 사실에 대한 상처 회복이 참 지난한 과정일 것이다. 밀양 송전탑 할매들을 보자. 서울사람한테 전기를 보내겠다고 내 땅에 그 무시무시한 고압 송전탑을 짓겠다는 한전과 끝까지 싸웠던 그 멋진 할매들… 그 할매들에게 보상보다 중요한 것은 내 평생의 시간과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들의 땅이 품고 있는 가치와 상징이었다. 그렇게 우린 할매들에게 빚을 졌다. 그리고 석탄으로 인해 자신의 공간을 잃은 사람들과 자연 안에서 살고 있던 많은 생명에게도 빚을 졌다. 우리의 풍요는 그렇게 수많은 빚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나의 죄책감은 억울하기도 하다. 나는 구조와 제도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인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구조의 공고화에 기여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며, 구조에 균열을 만들 수 있는 개인들의 연대로 시스템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 바로 여기에 우리의 할 일이 있다. 요구하는 것. 석탄발전소의 신규 건설 중지를 요구하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미래세대가 안전하게 자연 안에서 공존하며 살 수 있음을 요구하는 것, 우리는 요구해야 한다. 그 요구를 하기 위한 시작이 바로 이러한 정보들이 담긴 책을 함께 읽고, 내용을 공유하고, 퍼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의 등장은 귀중하다. 기후위기를 다룬 책은 많지만 석탄이라는 에너지원 하나를 중심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가 담고 있는 큰 그림을 보여주는 책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인류의 안일함이다.  우리는 늘 최악의 상황에서 어떻게든 현실과 타협하려는 존재일까?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조금씩 버텨가며 상황을 피해가려는 꼼수로 기후위기에 대응해왔던 버릇은 이 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기술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환상, 혁신적인 전환이 아닌 점진적 전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믿음까지… 사실 기후위기는 우리의 그러한 낭만적인 믿음 아래 점점 더 심각해졌는데도 말이다.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기술의 환상' 이 위험한 이유는 마치 우리가 지금의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고, 탄소를 줄일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대량생산-대량소비 체계의 전환, 소비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소비주의, 생태적 가치의 측정없이 진행하는 모든 발전계획 등… 지금 인류가 유지하고 있는 모든 생활세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할 때 진짜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탄소중립은 그 극복을 위한 목표이지, 그 자체로 기후위기의 극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에서 언급한 "풀뿌리 에너지 전환"은 정책적으로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시도해 보면 좋을 것 같다.

    70%의 전기 에너지를 석탄을 통해 얻고, 발전소를 운영하는 인력은 직접 고용이 아닌 하청으로 운영된다. 얼마 전 20대 청년 김용균이 사망한 곳도 석탄 발전소였다. 작년 7개월 간 지속되어 코알라의 30%가 사라지고, 수많은 이재민을 만든 호주의 산불은 기후위기의 영향 때문이었다. 이후 많은 환경단체들은 호주의 석탄 수출을 비판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호주의 석탄을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한국의 기여가 없었겠는가? 한국도 석탄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국가이다. 이 책은 직접적으로 한국의 사례를 다루고 있지 않지만, 모두 다 한국의 이야기이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을 덧붙이자면 방대하지 않게 핵심만 언급해서 내용을 이해하기 쉬었고, 특히 번역이 깔끔해서 책이 술술 잘 읽혔던 점이다. 많이 사람들이 책을 읽고, 에너지원으로써의 석탄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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