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살아가는 기준을 무엇일까. 어쩌다 보니 윌리엄 헤즐릿의 에세이를 세 권이나 읽어보게 된 필자(출판사에서 지속적으로 보내 줌)는 사느라 피곤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그의 날카롭고 염세적인 생각을 공유하다 보면 나까지 뾰족해진다. 급진적이고 양심적인 저항가의 생각은 펜 끝에서 더 날카로워졌다.
다만 영국인 답게 아일랜드, 스코틀랜드를 멸시하는 발언과 프랑스 혁명을 지지하며 영국 보수 권력을 비판하는 뉘앙스는 감안하고 읽도록. 그는 나폴레옹을 독재자가 아닌 세습 권력을 타파한 인물로 평가했고 프랑스 혁명의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지지했다.
표제어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는 동양의 공수래공수거, 인생무상, 무아지경과 닮았다. 나이 들어감과 돈이 없는 생활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환희와 고통을 넘나들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역자 후기에는 청춘의 시간, 감각, 존재 방식의 통찰은 BTS 화양연화 시리즈와 같은 주제를 다른 방식(글, 음악)과 언어로 풀어 냈다고 해석했다. 세 권을 읽어 본 후기로 시간이 없다면 이 책 하나만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화려함으로만 포장된 인플루언서들의 sns 글 뒤에 진짜 삶을 엿볼 기회, 불편한 진실과 나를 돌아볼 기회를 만날 수 있다.
아.. 명언이로다. 돈도 없고 몸이 아픈데 예술적 성취가 무엇인가. 에세이의 마지막은 그럼에도 인간은 생명의 불꽃이 꺼지기 전 이름을 남겨야 하며, 그것이 인류의 유산 중 하나임을, 병상에서도 책을 통해 고매한 정신을 간직하는 게 낫다고 말하지만. 아프고 돈 없고 배고프면 모두 귀찮아진다. 로코코 시대의 화가 윌리엄 호가스의 '가난한 시인(성가신 시인)'을 예로 들기도 한다. 그가 돈을 벌기 위해 거리의 부랑자의 삶이나 귀족을 풍자하는 연작을 그렸다면 윌리엄 해즐릿은 글로써 상상을 펼친 인물이다.
19세기 영국인이 쓴 돈 없이 가난하고 아픈 현실이 21세기 한국에서 살아가는 내게 공감을 이끌어 냈다. 고전은 시대와 나라를 떠나 공통적인 감정을 이끌어 낸다는 진리다. 돈 없는 가난은 사람을 우수꽝스럽게 만드는 불편함이라는 말이 꽂힌다. 또한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명랑한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탐욕이나 도덕적 판단이 아닌 인간 본질의 갈망이며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한다고 전한다. 우울하고 아픈 사람과 되도록 멀리하려는 습성은 내가 얻을 가치를 떠나 자연스러운 본능이란 말도 공감한다.
그가 내일 아침이란 희망으로 저녁은 굶을 수 있지만 아침, 즉 첫 끼니가 없으면 그날의 리듬이 깨지고 마음이 무기력해진다는 말도 공감한다. 가난은 사람을 작게 만든다. 인간의 위선을 마치 내 이야기처럼 들추는 통찰력에 반했다. 자신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바라보는 힘, 꼿꼿한 자존감은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