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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은 언제나 있다!
  •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리베카 솔닛
  • 15,300원 (10%850)
  • 2015-05-15
  • : 9,211

학교 다니던 시절 나름 진보적인 이론들을 섭취하고 실천도 해보려고 애쓰던 그때, 스스로에게 했던 가장 진지한 질문 중 하나는 '여성주의자라고 말할 것인가'였다. '학출'들이 공장에 들어가는 전위적인 시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주변에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들은 대부분 '몇 년' 동안 불효하며 학생운동을 할 것인지가 1차 고민거리였다. 비교적 주변부에 있던 나는 주변부이기 때문에 별 고민도 안 하다가, 막상 사정이 급하게 되니 취업을 미루고 얼떨결에 불효를 하기도 했는데, 그것조차 큰 고민은 아니었던 듯하다. 친구들이 졸업하고도 계속 운동을 할 것이냐 고민할 때 나를 붙잡은 질문이 '여성주의자'였다. 정확히 말해 이 질문은 '여성주의자로 살 것인가'가 아니라 '살 수 있는가'였다. 

그때 내게는 '모든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다'라는 말처럼 훌륭한 말이 없었고,그걸 여성주의처럼 잘 설명하는 게 없어 보였다. 이는 곧 여성주의자임을 자임하려면 일상의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할 감수성과 지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 여겨졌던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 주변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남성들이 운동하는 테마에 한해서만 운동하는 마인드가 작동했던 데 반해, 여성주의자들은 온갖 것에서 여성주의 마인드를 발동시키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대로 생각하고 반응하고 생활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성평등에 관한 이슈는 일상의 매순간에 묻어나오니까. 그들의 똑똑함과 삶 자체를 그에 맞게 구현해가는 모습이 대단해 보여서, 내 깜냥엔 저렇게 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듯하다. 

내가 감탄했던 여성주의의 감수성이란 예컨대 이런 것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것을 문제 삼는 것. 여자라면 한번쯤 겪어본 일상의 숱한 맨스플레인 유형 코미디를, 그동안 많은 여자들은 귀찮아하면서도 적당히 감당해주었다. 그런데 이 저자는 거기에서 비탈길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여자는 뭘 몰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여자는 생각이 없고 여자는 남자 하기 나름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발전되고 여자는 맘대로 해도 되고, 여자가 내 뜻대로 안 움직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응징하는 변태적 합리화로 굴러떨어지기 쉽다는 것. 끔찍한 여성혐오의 징후가 사실은 이런 일상적인 행태로 드러난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쓸모이자 매력 아닐까 싶다. 

아, 이 책의 매력은 또 있다. 이런 생각에 한 번 동의하게 된 사람들은 맨스플레인에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는 것. 일상에서 거슬릴 일이 점점 늘어나는 만큼 불편하고 불온해지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인문사회과학 책의 할 일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남는다. "이 전쟁에서 사람들은 죽을지언정, 생각은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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