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원래 죽은 땅이었다.’로 시작하는 신비롭고 매력적인 소설. 손가락에 싹이 트며 식물들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 열일곱 살 나인의 이야기. 시들어가는 식물들을 살려 내듯이 죽은 땅을 살려내고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단순 가출로 처리되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실종 학생을 찾아내는 과정을 주축으로 한다.
나인은 외계인이고 남들과 다른 아이였지만, 있는 그대로를 믿고 인정해주는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성장한다. 나인의 친구들인 미래와 현재, 나인의 이모인 지모, 나인에게 비밀을 알려준 승택, 친구들의 가족들... 그들이 지닌 저마다의 사정들은 우리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는 문제들이기도 하다. 빈부의 문제, 소수자 차별, 부모들의 이혼, 부정 청탁, 환경 오염, 입시 교육 현실, 친구 문제, 선악의 판단...
소설은 현실의 문제를 담담하게 그리면서도 좌절하지 않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그 이면의 상처까지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삶의 순간순간마다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 누구와 함께 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이야기. 싱싱함을 잃고 무기력하게 시들시들 살아가는 젊고 불안한 영혼들에게 주는 아름다운 위로가 담긴 이야기였다.
우리는 그냥 딱보면 알아. 아, 쟤도 바깥에서 왔구나. 신호등이 깜빡일 때 걷지 않는 사람들 있잖아. 버스를 탈 때 노인이나 아이를 위해 한발 양보하거나 지하철에서 사람이 다 내려야만 타는 사람. 이상하리만치 느긋하게 질서를 지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외계인이야.- P61
요한은 언제나 무언가를 닦는다. 오늘은 가스레인지지만 지난번에는 식기였고, 지지난번에는 주방 바닥을 닦았다. 자신의 소유라는 건 저토록 닳아 없어질 때까지 닦아내는 것이구나.- P78
성에 갇혀 살던 아이가 성 밖으로 나간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아주 조금의 용기만 있다면, 문을 열고 발을 내디디면 그만이니까. 어려운 건 섞여 들어가는 일이다. 아이가 성에 갇혀 있는 동안에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던 세상의 쳇바퀴 속으로. 이방인을 맞이하는 조력자가 사라진 세상으로.- P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