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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꽃님의 서재
  •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
  • 김유나
  • 15,300원 (10%↓850)
  • 2026-01-30
  • : 1,705

26년 여든한 번째 책.

 

★★★☆

 

<이름 없는 마음>은 작가의 등단작이다. 혈육을 책임지고 보살피려는 누나와 자신의 삶으로 도망치려는 동생이 부딪히는 순간의 모습이 담겼다. 이해와 몰이해, 애정과 간섭, 자유와 구속 등이 피를 나눈 사이만이 나눌 수 있는 공감과 연대에 실려 잘 표현됐다.

그가 나의 가족일지언정 나 밖의 영역에 존재하는 타인이다. 같은 가족 구성원이라도 나와 상관 없는 다른 형태의 삶, 더 친밀한 다른 누군가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린 종종 망각한다. 진심 어린 도움의 손길조차 때로는 버거운 통제로 작용할 수 있다. 타인의 삶과 방식을 우리는 충분히 인정하고 존중하는지의 질문은 뒤에 나오는 <너 하는 그 일>에서 반복된다.

 

<랫풀다운>은 새로운 시작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는 과거를 끊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 매몰차게 들릴까. 가끔은 지난 시간에 갇혀 미래를 향해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지 않은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헤어진 애인에 대한 기억과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해 새로운 사랑이 버겁거나, 지난 과오가 남긴 후회가 현재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일, 또는 악습을 자신도 모르게 반복함으로써 거듭되는 실패를 경험해야 하는 일이 있다. ‘새 술은 새 푸대에 담으라’는 옛말의 교훈이 생각나는 작품이다.

 

<너 하는 그 일>에서는 서로의 삶에 깊이 상관할 것인가, 아니면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고 있을 것인가의 질문이 읽힌다. ‘멀찍이 떨어져 바라본다’는 건 ‘기다린다’는 말이다. 주의를 놓지 않고 유심히 살피며 도움을 청할 때 ‘마침’ 그 자리에 있으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그리고 소중한 사람일수록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가장 인상 깊었던 <으름 씨 뱉기>에서는 과거(조상의 묘)와 미래(으름 씨), 그리고 현재(채림 가족의 삶)의 모습이 절묘히 겹친다. ‘시간의 영속성’ 안의 인간이 상상된다는 점에서 ‘김연수’의 작품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 안의 몇 작품들이 연상된다. 나를 둘러싼(내가 속한) 우주의 시간을 경험하는 동시에, 한 가족 내의 불통, 인구 문제, 해외 이민, 좀 더 크게 국가의 미래 같은 다양한 이슈들을 아우른다.

 

부부 은행 강도가 등장하는 <부부 생활>은 코믹한 인물과 황당무계한 설정을 활용하여 진행하다가 의외의 결말을 노리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친밀한 상대가 낯설어지는 순간의 서늘함이 일품이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은 어쩌면 섣부른 착각이다. 내가 보는 타인의 모습은 내가 그에게서 ‘기대하고’ 있는 바가 반영된 거짓의 상(象)일 경우가 많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건 우리가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 중의 하나다.

 

<물이 가는 곳>은 제목 그대로 낮은 곳, 밑바닥, 인간의 가장 속된 성질을 드러내는 이야기로 읽힌다. 우리 내면의 바닥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시간을 들여 탐색하라는 작가의 요구는 꽤 진지하지만 복잡한 구성, 과한 설명 등으로 다소 장황해졌다는 점이 다소 거슬린다.

 

<내가 그 밤에 대해 말하자면>은 열 살의 화자의 눈으로 본 어른들의 세계가 펼쳐진다. 통통 튀는 문체와 아이다운 호기심과 고집, 성격, 주변의 어른들도 각자 개성을 부여받아 인물들이 가장 두드러진다. 반면 방향을 알 수 없는 진행, 모호하기만 한 결말은 작품의 감상을 방해한다. 작가가 조금만 더 친절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의 첫 소설집. 일곱 편의 작품이 실렸다.

 

이야기들이 쉬우면서도 단단하다. 작가의 관록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술술 잘 읽힌다. 편하고 쉬운 문장으로 가독성이 좋다. 이야기마다 공감할 요소들이 많아 흥미롭다. 은연 중에 드러나는 유머 감각도 좋았고 힘을 뺀 작품들(<으름 씨 뱉기>, <부부 생활>)에서 오히려 작가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렸던 것 같다. 현실에 천착한 이슈들로 특정 독자층에 호소하기보다 폭넓은 독자들을 아우르려고 한다. 작가의 이런 의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김유나’ 하면 특정 지을 만한 강점이 보이지 않는 건 약간 아쉽다. 문체는 평범하고 구성이나 진행도 평이하다. 작가의 개성이랄까, 그런 걸 확인할 수 있었으면 더 기억에 남을 텐데. 물론 이런 게 기교뿐인 기교나 자극적인 설정 등을 거부함으로써 이야기의 진정성으로 승부를 보려는 작가적 야심의 증거일 수 있다. 평범하고 별 것 아닌 이야기를 하면서 지나친 장기 자랑을 일삼는 작가들도 더러 있다는 걸 고려하면 오히려 솔직한 태도다. 이건 작가의 분명한 장점으로 보인다.

 

문단에 정식 데뷔한 지 6년만이다. 소설집 한 권 내는 데 그만큼의 세월이 필요하구나, 생각하면 어떤 책이든 허투루 대하기 어려워진다. 이야기를 짓고 쓰는 일이 과히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구나, 그 삶이 참으로 지난하구나 싶다. 새삼 그들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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