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일흔여덟 번째 책.
★★★
읽지도 않았는데 읽었다고 착각하는 소설 작품들이 몇 개 있다. ≪작은 아씨들≫, ≪빨강머리 앤≫, 그리고 바로 이 소설.
그런 데엔 소설의 유명세가 가장 큰 이유다. 원작이 워낙 유명하니 이런 저런 곳에서 어떤 이야기인지 주워들을 기회가 충분했고,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영화 등도 많이 나와 있으니 소설보다 그것들에 이미 익숙해졌던 것. 이 작품 역시 일찌감치 영화로 접했고, 이십여 년 후 새로 만들어진 영화를 또 봤으니, 책을 읽으면서 내내 ‘로버트 레드포드’와 ‘리나르도 디카프리오’, 두 배우의 얼굴이 오락가락했던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막상 읽고 나니 어땠을까.
소설 자체로만 보면 눈에 띄는 요소는 딱히 없어 보인다. 계급 차이와 형편없는 주머니 사정 탓에 사랑을 포기했던 남자가 다소 의뭉스러운 방법으로 부자가 되어 여자 앞에 다시 나타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장벽에 걸려 좌절하고 파멸하는, 다소 평범한, 그리고 충분히 뻔한 이야기.
불륜과 사고, 의심과 오해, 질투와 살인 등의 요소는 이야기에 다이내믹함과 멜로드라마성을 부여하지만, 이런 서사적 장치 역시 크게 주목할 만한 건 아니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화려하지만 우울한 정서, 그것에 기인한 독특한 질감은 꽤 좋았다. 일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재즈 시대’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던 걸’이나 ‘모던 보이’들이 오늘날 ‘셀럽’, ‘패셔니스타’ 같은 대접을 받았던 우리의 일제강점기 시절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하지만 전쟁 후 경제 부흥과 몰락을 앞둔 미국과 식민지 조선은 문화를 소비하는 행태나 심인적 동기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개츠비’는 법을 어겨가며 돈을 모으고, 아무리 첫사랑이라지만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데이지’에게 추근거리다가 낭패를 본다. 작가는 이 사람을 통해 독자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작가는 주인공을 소위 반면교사의 인물로 삼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돈에 대한 개츠비의 욕망만 본다면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해 보여 오히려 인간적이다. 물질만능주의나 배금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고안된 인물이라면 과연 적절한 인물일지 의문이 든다. 개츠비의 욕망은 ‘이카루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당시의 금주법에 반하여 밀주 사업을 벌인 건 범법행위라고 쳐도, 특히나 전쟁이 남긴 폐허에서 살아남으려는 욕망이 팽배한 분위기라면 사람들은 더욱 물불 안 가리지 않았을까. 가난해서 사랑의 기회를 잃은 개츠비 같은 남자라면 더 그랬을 터.
개츠비의 파국은 그의 내면에서 온다. 사랑이 너무 지나쳤달까. 이기적인 속도로 폭주했다는 말도 가능하겠다. 당시엔 불륜이나 혼외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어땠는지, 어떤 법적인 장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데이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개츠비의 행동은 너무나 순수하고 외곬수인데다, 치열하다 못해 찌질해 보이기까지 한다. ‘톰’ 부부를 앞에 두고 자신과 데이지의 관계를 털어놓는 장면(7장)에선 ‘뭐 저런 자기 혼자만 알고 경우도 없는데다 머리까지 나쁜 인간이 있나’, 싶기도 했다. 제목의 ‘the Great’가 이런 뉘앙스였을지도.
내겐 이 소설이 비극적인 결말의 로맨스 소설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눈이 돌아갈 듯 모든 것이 변화무쌍한 요즘, 모든 동력의 저변에 돈이 흐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만능주의 어쩌구 하는 경고가 여전히 효력을 발휘할까 의심쩍다. 돈을 숭배하듯 하는 오늘의 세태가 위험한 건 사실일지라도 비상식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이 작품을 읽는다면 이 작품은 극히 평범한데다가 ‘올드’하기까지 하다. 이 화두가 2026년의 독자들에게 먹히려면 이 이상의 뭔가가 더 있어야 한다.
세상에 나온 지 꼬박 백 년이 된, 대단히 미국적인 이 소설이 당시의 미국과 서양 독자들을 각성시키고, 더 나중의 독자들에겐 대공황의 징조를 품은 선지자 같은 작품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적 배경을 걷어내면 남는 거라곤 화려함과 사치, 이후의 몰락, 치정과 살인 등이 엮어내는 한 남자의 비극일 뿐인 이 작품이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독자들에게 여전히 읽히고 고전으로 회자되며 추앙받는 이유는 뭘까 궁금하다.
고전이 시대를 관통해서 백 년 이후의 독자들에게 와닿는 건 이야기의 보편성, 원형성이 여전한 힘을 갖기 때문일 테다. 사실 이 작품엔 특별한 구석이 별로 없다. 통속적인 소재에 남발하는 우연, 자세히 들여다보면 플롯에 구멍 등, 구조적인 측면에서 봐도 흠결이 많다. ‘재의 고개’나 부릅뜬 눈이 그려진 빌보드 같은 상징도 다소 노골적인데다 메시지도 이미 낡았다.
그럼에도 부(富)를 향한 욕망, 일편단심의 사랑, 희생, 이성을 마비시키는 질투, 폭력성, 이기심과 자기 보존 욕구 등의 아주 보편적인, 시대를 뛰어넘는 인간 본연의 성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데 작품의 매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주 비슷하면서도 다른, 비슷한 시기에 쓰이고 발표된 ‘윌라 캐더’의 소설 ≪로스트 레이디(A Lost Lady, 23년)≫가 생각난다. 부유한 사업가의 안주인을 동경하는 마을 소년(이 작품에선 ‘닐’)의 시선으로, 그녀의 몰락과 그 이후의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이 작품에서도 ‘돈’의 문제가 중요한 화두로 다뤄진다. 남편이 죽고 재산을 잃어가는 귀부인이 세상물정 몰랐던 자신을 닦아세우며 어떻게 현실에 적응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구성, 세대가 교차되는 시기의 갈등과 혼란, 가치관의 대립 같은 화두는 두 소설이 공통적이지만, 윌라 캐더는 ‘돈’과 ‘물질’을 경계하는 관점은 지양하고 있는데 그런 지점에서 ‘피츠제럴드’의 소설과 차별된다. 윌라 캐더의 소설 역시 충분히 비극적이지만, 결말의 행간엔 희망이 스며있다는 점도 두 소설이 다른 점이다.
사족.
1. 한글 번역이 아주 까다롭기로 유명한 영미 소설 중 하나라고 한다. 피츠제럴드의 작품이 대개 그렇다고. 그 중에서 번역이 가장 유려하기로 소문난 ‘김석희’의 번역으로 출간된 ‘열림원’의 책을 골랐는데, 글쎄…, 번역 소설의 한계인가 싶기도.
2. 이 소재가 만약 당시의 미스터리 작가들의 손에 들어갔다면 어떤 소설이 태어났을까. 이 소설엔 미스터리 소설에 필요한 재료들이 모두 다 있다. 의혹에 싸인 과거를 안고 다시 나타난 남자, 삼각관계, 연적, 의문의 죽음, 시간 차 알리바이, 진실을 암시하는 메타포, 용의자들과 의외의 진상까지. 이 책을 읽는 도중, ‘애거서 크리스티’의 숨겨진 걸작 ≪파도를 타고(Taken at the Flood, 48년)≫가 생각났는데, 은근히 겹치는 설정들이 많아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