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예순세 번째 책.
★★★
‘버로니카’라는 장래가 촉망되는 여성이 육교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가족들에게는 그것만으로 충격인데, 생전에 그녀가 가족 몰래 정신과 상담 치료를 받고 있었음이 사후에 밝혀진다. 버로니카의 동생은 언니의 자살에 정신과 상담의 ‘브레이스웨이트 박사’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믿는다. 언니의 뜻밖의 비극에 얽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리베카 스미스’라는 가명으로 브레이스웨이트 박사의 상담실 문을 두드린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리베카 스미스라는 가명의 여성이 상담 치료를 받으면서 기록한 수기이고 또 하나는 브레이스웨이트 박사의 전기 형식의 글이다. 두 종류의 글이 번갈아 나오며 진행하는데, 가상의 작가(아마도 실제 작가 자신)가 익명의 기증자로부터 전달받은 리베카의 수기를 중심으로 자신이 한 조사를 토대로 쓴 브레이스웨이트 개인의 삶의 기록을 추가하여 완성한 책, 이라는 것이 이 작품의 전체적인 설정이다. 내가 보기엔 이런 얼개가 꽤나 복잡하고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작가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실제 일어난 일’로 여겨지길 바랐던지, ‘콜린 윌슨’, ‘폴 매카트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같은 실존 유명인사들을 카메오로 등장시키거나 언급한다.
일단, 정신의학을 부정하면서 정신과 상담치료를 업으로 삼고 있는 브레이스웨이트는 여러모로 특이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60년대 정신의학계의 ‘앙팡 테러블’로서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반목하며 갖은 방법으로 반기를 드는 그 바닥의 문제아다. 난잡한 사생활과 여성 편력은 덤이요, 기성세대에 도전하면서 그들의 악습을 답습하는 모순도 보인다. 강한 매력과 캐릭터성에 반해 이 인물의 서사는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작가는 브레이스웨이트의 삶을 마치 유명인의 ‘위키피디아’에서 볼 수 있는 ‘바이오그라피’ 수준의 글로 압축한다.
리베카라는 가명으로 박사에게 접근한 인물은 보다 마땅한 대접을 받는다. 언니의 죽음에 박사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의심은 거의 일방적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인물이 보이는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 같은)모습은 그녀의 의심이 전혀 근거가 없을뿐더러, 어쩌면 이 여자가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적어도 평범한 보통의 정신상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독자로 하여금 품게 만든다. 이 인물이 작품 전반에 걸쳐 보이는 모습은 마치 서랍 안에 작은 비밀 서랍이 있고 그 안에 또 다른 서랍이 발견되는 식이다. 그렇게 다양한 양상의 성격과 인격이 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할 수 있을까.
‘진짜 나’는 존재하지 않고 ‘현재의 나’만이 존재한다는 브레이스웨이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나다운 게 뭔데?’라는 대사도 말이 된다. 우리의 사회적인 모습은 모두 가면이다. 그것들은 신중히 선택되고 교묘히 연출된다. 그 중에 ‘진정한 나의 모습은 바로 이것’이라고 우리는 분명하게 말 할 수 있을까. 그 어느 것도 내가 아니고 동시에 모든 게 나다. 리베카 스미스의 실제 이름이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리베카인 동시에 어떤 누구도 될 수 있다.
소재나 이슈가 꽤나 흥미로운데 반해, ‘이야기책’으로서 성공적인가, 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작품 전체가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의 한 ‘주장’, 내지는 ‘학술적 이론’을 설파하기 위해 소설 형식을 빌려온 느낌이 강하다. 브레이스웨이트 쪽의 이야기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위키피디아의 한 페이지처럼 읽히고, 리베카 스미스 쪽의 이야기는 제목처럼 정신과 상담 치료의 한 사례 연구 보고서처럼 읽힌다. 이제 생각해 보니, 불필요하게 복잡한 얼개는 소설로서의 얄팍함을 커버하기 위한 ‘가면’이었던 것처럼 여겨진다. 여운도 없고 의미도 없는 에필로그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