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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꽃님의 서재
  • 네가 누구든
  • 올리비아 개트우드
  • 16,020원 (10%890)
  • 2025-11-07
  • : 280

26년 쉰여섯 번째 책.

 

★★★

 

비밀스러운 과거로 거의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미티’는 이웃집 ‘레나’에게 매혹된다. 빼어난 외모에 인형의 집 같은 저택에 윤택한 살림. 하지만 그 모든 부유함은 레나의 것이 아닌, 남자친구 ‘서배스천’의 소유이다. 미티의 동거인인 노년의 ‘베델’은 아름다운 레나에게 질투 어린 편견을 갖고 있다. 베델에게도 아픈 상처가 있다. 그리고 미티가 보기에 레나는 남자친구의 통제로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기본적으로 여성 (퀴어) 서사에 A.I.를 위시한 첨단 과학, 어둠 속에서 곪아가는 상처, 남성성의 폭력과 희생되는 여성성, 여성들의 연대, 과거와의 화해, 나는 누구일까, 라는 실존적인 질문까지, 모든 재료들이 이야기 안에서 비교적 조화롭다. 하지만 다소 산만하다.

 

이야기는 주로 미티의 시각으로 전개되는데 미티의 서사는 그냥 평범하다.

정작 흥미로웠던 인물은 따로 있는데 바로 레나. 과연 이 사람의 정체는 뭘까. 첨단 기술이 낳은 결과물일까, 아니면 단순히 트로피 와이프에 불과한, 남성성의 희생양일까. 어느 정도 힌트와 암시만 난무할 뿐, 작품이 끝나고도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레나의 정체는 모호한 결말과 더불어 기이한 여운을 남긴다. 어떤 경우로든 레나는 통제 가능한, 누군가의 통제 하에 있는 존재다. 느닷없이 청소기를 돌리고 제 몸에 스스로 상처를 입히는 행동은 자신에게 없는 주체성과 독립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인공성이 농후한 집을 떠나 미지의 초원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레나에게 적절한 퇴장이다.

 

이러한 레나의 캐릭터 성은 양면성을 갖는다. 레나는 첨단 기술의 노예처럼 되어 가는 현 세태를 비판하는 도구로도 기능하고 억압받는 여성성을 대표하는 기능도 하는데, 이는 작품의 감상을 다양하게 해주는 장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작가의 의도를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소설을 S.F. 범주에서 읽어도 될까. 큰 반감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스릴러 장르로 소비하는 데엔 무리가 있다. 그리고 퀴어 서사와 살인사건 등은 모난 돌처럼 도드라져 군더더기처럼 보여 작가가 취사선택에 실패한 것처럼도 보인다. 데뷔작이니 만큼 쓰고 싶은 것들을 한 작품에 모두 쏟아 부은 느낌이랄까. 두 작품을 하나로 합친 것처럼도 보인다.

 

첨단 과학 기술을 폭력적이고 억압하는 남성성에 비유한 것이 재미있지만 이는 어느 정도 작가의 편견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혁신’은 기존의 질서를 와해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반란’이다. 첨단 기술은 인간에게 편의를 주는 쪽으로 발전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것들은 인간을 길들이다가 결국엔 옭죈다. 기계의 가치는 인간이 그것에 얼마나 종속되느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온갖 편리한 기계에 굴복하고 인간성을 잃어간다.

 

책장을 덮고 생각해 보면, 이 부분에서 작가의 통찰력이 가장 빛나지 않았나 싶다. 반면, 레나가 정말 ‘도망친 기계’라면, 여성의 외관을 갖추기만 했을 뿐 성별이 없으므로 ‘가족오락관’에서 성대결 펼치듯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여성들의 주체성과 연대를 말하기 위해 꼭 남성을 적으로 돌려야 했을까. 남성을 최대 빌런, 주적으로 삼는 건 어느새 여성 서사의 통과의례, 필수 요소처럼 되어 버렸다. 불필요하고 무의미해 보인다. 오히려 폭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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