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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꽃님의 서재
  • 달걀의 온기
  • 김혜진
  • 15,300원 (10%850)
  • 2026-04-08
  • : 9,965


<관종들>은 오지랖과 정당하고 애정 어린 관심의 차이와 경계, 즉 선의(善意)의 선(線)을 묻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정답을 주거나 결론을 내리지 않고 문제만 던지고 뒤로 빠진다. 그 뒤의 판단과 결론은 독자의 할 일이다. 자유로운 감상이 가능한 무대를 제공하는 작가의 수법이 능숙하다.

 

<빈티지 엽서>는 매우 흥미로운, 이 작품집의 백미이다. 읽을수록 토끼굴이 연상된다. 마치 렌즈가 여럿 달린 망원경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관종들>과 연이어 읽으면 그런 느낌이 두드러진다. 로맨틱한 분위기와 정서, 그 이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표면적으로 이 작품은 ‘낯선 곳에 자신의 일부를 남기고 오지 않았을까(48쪽)’ 의심하는 화자의 권태를 다룬다. 화자는 헬쓰장에서 우연히 친해진 남자를 통해 삶을 회고하고 과거에 내릴 수 없었던 결정과 선택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되는데, 사연과 맥락이 명확하지 않은 ‘외국의 엽서’는 우리가 원하지만 닿을 수 없는 세계, 가질 수 없는 것의 상징처럼 보인다. 손에 들고 해석하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건 단어와 맥락 없는 문장 들은 보잘 것 없는 일상에 약(藥)도 되고 독(毒)도 되는, 양가의 가치를 지닌다.

 

이야기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작가는 시선을 중첩시키고 가장 밖에 독자들의 시선을 둠으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을 읽는 것 이상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화자와 헬쓰남의 ‘엽서 읽기’가 멈추는 건 외부(관종들)의 시선 때문이었다. 그런데 화자와 헬쓰남 사이에서도 ‘관종들’의 시선이 존재한다. 나중에 화자는 남자의 의도가 진짜 엽서 읽기뿐이었을지 의심하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그 이상의 바람은 없었는지 묻는다. 가장 밖에서 이 모든 양상을 목격하는 독자 역시 이들의 의도를 의심하고 상상하면서 ‘관종’의 시선을 경험한다.

 

<달걀의 온기>도 여운이 길다.

작가는 얼마간 방치됐던 어린시절 기억으로 태생적 피해의식이 있어 늘 원망의 화살로 경계하는 ‘선희’와 보살핌을 받은 적이 없으면서 어떤 대상을 보살피는 꼬마 ‘민지’를 대비시킨다. 성인이지만 정신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선희와 달리 어린 민지는 오히려 성숙하다. 선희는 민지로 인해 ‘바깥의 열기와는 무관한, 내부에서 만들어져 흘러나오는 온기, 아니, 바깥에서 불어넣지 않았다면 결코 생겨나지 못했을 온기(233쪽)’를 경험한다. 작가는 ‘결핍’의 증후가 ‘없어서 할 수 없슴’만이 아닌 ‘없으니까 오히려 더 잘 하려는’ 의지도 있음을 보여준다.

 

창작과 표절의 경계를 내세워, 우리가 무엇을 인식할 때, 오직 그것 자체만이 인식의 대상일까 질문하는 <우연의 직조>는 예술과 우연의 상관관계를 생각하게 했고, 나와 우리라는 울타리 밖의 존재를 그저 외부, 나와 상관없는 것, 의심스럽고 조심해야 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편견과 혐오에 대한 이야기인 <우리와 우리 아닌 것>도 읽기 좋았다. 이 작품은 또한 한 번 경험되어 각인된 이미지가 얼마나 오래 가는지, 우리가 그것에 얼마나 고집스레 집착하는지, 화자를 통해 경험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서서히 세상 밖으로 나와 ‘어떤 것에 어렵게 다다른(102쪽)’ 화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푸른색 루비콘>과 독(毒)이 약(藥)으로 작용해 밖으로 나왔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다시 껍질 속으로 들어가는 ‘애실’의 모습이 안타까운 <하루치의 말>은 쌍을 이루는 작품처럼 보였다.

 

‘김혜진’의 소설집이다. 미문(美文)보다 경제적이고 적확한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의 특징이 읽기에 좋다. 섬세하고 내면적이되 개인성에 함몰되지 않고 안과 밖, 개인과 사회를 적절히 조율한 이야기, 일곱 편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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