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나 자신 안으로 추락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거였지. 내 인생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았어. 내 인생은 이미 바뀌어 있었으니까. 나는 헤쳐나가야 할 뿐이었지.
-중략-
우리 모두 그랬을 거야.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스스로는 그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어. 우리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 내가 결국 깨달은 건 그거였어.
그리고 우리가 영원히 살지는 못할 테니 그 사실을 붙들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 (372쪽)❞
작가는 이런저런 동기와 이유로 얽히고설킨 두 가족을 가지고 재미있게 논다. 현재와 과거를 뒤섞은 구성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생뚱맞은 곳에 등장하는 유머는 날카로우며 그릇된 선택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준 사람조차 나쁜 사람으로 그리지 않는 작가의 연민어린 시선은 몹시 따뜻하다. 인물들의 등퇴장이 명확해 그들에 대한 작가의 배려도 좋다. 인물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엔 애정이 철철 넘친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실수나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진을 빼느니, 반쯤 내려놓는 마음으로 현재에 순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어차피 닥칠 일은 닥치게 되어 있고 과거의 잘못된 선택은 우리의 손을 떠났으니, 그것들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작품 안 ‘테리사’처럼 ‘상실’을 인생의 기본값으로 여긴다면 삶 앞에서 주춤거리지 않을 용기가 생겨나지 않을까.
재미와 감동, 모두 만족스럽다. ≪벨칸토≫의 웅장함은 없지만 그 작품을 능가한다. 작가의 작품들이 많이 번역되지 않은 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