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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꽃님의 서재
  • 소피아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는다
  • 파올로 코녜티
  • 13,050원 (10%720)
  • 2021-01-15
  • : 109

삶은 곧잘 ‘여행’에 비유되곤 한다. 익숙한 생활 반경을 벗어난 타지에서 마주하게 되는 모든 것은 새롭다. 주변의 풍광도 사람들도, 특히 매일의 익숙한 일상이 ‘여행’이라는 피상이 덧씌워지면 색다른 것이 되는 경험이 되는 것은 놀랍다. 여행의 참맛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나는 홀로 떠나는 여행을 더 좋아한다. 시끌벅적, 사람들에게 이름 난 곳이 아니면 더 좋다. 고요하고 낯선, 평범의 관성이 방해받지 않는 공간에서 혼자 누리는 시간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게 만든다. 감각은 예민해지고 상상력은 무한으로 나아간다. 잠깐 스칠 뿐인 사람들이 내게 남긴 흔적을 되새긴다. 낯선 곳에서 정작 나 자신은 스스로 물러서 무대의 조연이 된다. 스포트라이트의 바깥에서 주인공들의 삶을 살짝 엿보고 상상하며 다소 겸허해진다. 이런 느낌에 오만함이 없지는 않지만 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 나를 알고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 나를 좋아하거나 나를 싫어하는, 혹은 내가 좋아하거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관계’에 대해 성찰할 수 있다는 건, 그것이 겨우 시늉에 그치더라도 귀한 경험이다.

 

언제부터인가 관계에 집착을 버리게 됐다. 떠날 사람은 어차피 떠나게 되어 있고, 내 삶에 들어올 사람은 용을 써서라도 기어이 그리 된다. 이런 안일함, 내지는 방관이 나이를 먹으면서 얻게 되는 이점일 수도 있겠다. 세상을 사는 법을 서서히 터득하고 있는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점점 더 게을러지고 자족하기 위해 머리를 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뭐가 됐든, 사는 게 이젠 좀 편안하다고 믿기 위해 무엇을 더 놓아야 할까. 아니면 더 움켜쥐어야 할까. 손에 더 넣는 것엔 한계가 있다. 채우는 것과 비우는 것의 목적과 효과가 비슷하다면, 차라리 비우는 편이 쉽지 않을까. 나이가 들면서 놓고 버리고 비우는 것에 더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언제부터 하게 됐을까. 죽음이 코앞인 순간에 후회나 미련, 증오나 원망 같은 걸로 나 자신을 괴롭히는 일만큼은 하고 싶지 않으니, 미리 용서하고 타협하고 몸무게 줄이듯 정신의 무게도 줄여 마지막 순간엔 가벼이 훨훨 날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을 죽 적고 보니, 책의 내용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어쩌다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다소 의기소침한 정서가 전반에 깔려 있지만 암울한 소설은 아니고, 인물들은 죽음보다 살아 있다는 것에 더 감사하고 있다. 전체로서의 소설은 주인공 ‘소피아’의 출생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열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의 형태를 갖춘다. 성취의 이야기보다는 실패와 각성의 이야기가 많다. 삶에 대한 환상보다는 삶의 진실에 더 가까운 이야기들이다.

 

소피아가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이 재미있는데, 소피아가 등장하지만 정작 주인공이 따로 있는 작품들이 많다. 소피아의 부모, 고모, 친구나 동료들, 연인들, 아주 잠깐 인연을 맺는 사람 등등. 각각의 작품들에서 모두들 소피아의 삶을 다각적으로 보여주는 조연이면서 스스로의 삶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주연이 된다. 작가가 소피아를 중심으로 그려내는 관계의 네트워크는 ‘모든 이는 각자의 삶에서의 주인공’이라는 귀중한 교훈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이것.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지금껏 나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은 인연들의 결과라는 사실. 사람이 혼자 존재할 수 없다는 말엔 이런 진실 또한 숨어 있는 것 같다.



 

❝너는 네 인생의 스승이자 제자이다. 과거의 너에게 배우고 미래의 너에게 가르쳐준다. 보통 사람들은 그 안에서 길을 잃지만 너는 춤을 추며 다닌다. (187쪽)❞

 

나는 길을 잃게 될까,

아니면 춤을 추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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