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네 번째 책
영꽃 2025/01/23 02:04
영꽃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아서 씨는 진짜 사랑입니다
- 엘리자베스 버그
- 12,600원 (10%↓
700) - 2018-09-27
: 277
❝저도 무덤에서 뭔가를 느껴요.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건 아니지만 뭔가가 느껴져요.”
“뭘 느끼는데?”
“평온함이랄까… 안도감이랄까. 자 됐습니다. 다 풀지 못했더라도 이젠 펜을 내려놓으세요. (78쪽)❞
❝내 눈에는 시든 잎도 여전히 예뻐요. 시들어 떨어지는 것도 생의 일부잖아요. 꽃망울이 맺힌 상태로 우리 집에 와서 꽃잎을 활짝 벌려 고운 자태를 뽐내다가 이젠 이별을 준비하는 거잖아요. 서서히 이별을 준비하게 놔둬요. 떠날 때가 되면 알아서 떨어질 거예요. 어느 한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때가 없어요. (253쪽)❞
도시락을 들고 죽은 아내의 무덤을 매일같이 찾는 80대 노인 ‘아서’, 편부슬하의 가정에서 외롭고 쓸쓸한 나날을 겨우 살아내는 십대 소녀 ‘매디’, 그리고 아서의 이웃이자 전직 선생님이고 참견장이인 80대 노파 ‘루실’. 세 사람이 이뤄내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진짜 가족의 이야기다.
주요 등장인물들만 봐도 어떤 이야기인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그 짐작은 아마 반 이상 맞을 것이다.
익숙한 이야기지만 편안하다. 비교적 안전하고 뻔하다 싶지만 심히 위로가 된다. 유려한 이야기는 마음을 어루만지고 인물들은 가까이 두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삶은 어때야 하고 가족은 저때야 하고. 이런 소설 흔하잖아? 맞는 말이다. 이 작품만의 두드러지는 특징도 거의 없다. 하지만 흔하다고 필요가 없는 건 아니다. 에두르고 뭉뚱그려 퉁치는 위안이지만 우리에겐 그것조차 절실할 때가 있다.
이야기 속에서 묘지라는 공간은 무척 매력적으로 묘사된다. 망자를 향한 애도, 삶에 대한 낙관과 희망, 신비, 심지어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묘지가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니만큼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작품 전체를 아우른다. 살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더 많은 두 노인이 죽음을 대변한다면 그 대척점에 있는 십대의 매디는 삶을 대변한다. 매디와 아서에게 공통점이 많고 서로를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듯이, 삶과 죽음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삶은 친숙하고 죽음은 낯설지만 그 둘은 같은 연장선 위에 공존한다.
궁극적으로 작가는 ‘함께하는 삶’을 권하는 것 같다. 세 사람은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을 이룬다. 세 사람의 연대는 무척 끈끈하다. 서로를 염려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 우리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아무런 대가없이 도우려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그저 환상이라고, 꿈 깨라고 치부해야 할까. 먼 옛날엔 비행기나 자동차도 한낱 헛소리에 불과하지 않았나.
이 작품을 어떻게 보든 그건 각자의 마음이다.
다소 삐딱한 시선으로 보면, 단지 나이가 많을 뿐인 두 노인이 우연히 마주친 착한 십대 소녀를 돕는 이야기다. 두 노인은 나이만 들었을 뿐, 육체적으로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부자다. 노인들에게 흔히 따라오는 경제적인 문제는 거의 없는 셈이다. 건강하고 돈까지 많은 노후란 얼마나 든든한가. 매디의 고민은 심각하긴 해도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실제로 아서가 죽은 후 매디는 부자가 된다. 지나치게 안전한 이야기다. 심각한 위기도 없다. 돈이 없어 매 끼니를 걱정하고 오늘내일 하며 겨우 숨만 쉬는 골골한 노인들이 인성 개차반에 싸이코패스 저질 십대 아이를 만난다면 과연 어떤 이야기가 나왔을까.
사족
‘아저씨’가 아니라 ‘아서씨(Arthur氏)’다.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