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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꽃님의 서재
  • 친밀한 이방인
  • 정한아
  • 13,500원 (10%750)
  • 2017-10-13
  • : 5,632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후, 폐허가 된 길목에서.❞ (133쪽)

'나’는 오랜 기간 슬럼프에 빠져 허덕거리고 있는 작가. 어느 날 신문에서 어떤 소설을 발췌한 광고를 보게 된다. 의뢰자는 그 소설을 쓴 당사자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설을 쓴 사람은 바로 ‘나’다. 그렇게 ‘나’는 광고 의뢰자인 ‘진’을 만나고 등단하기 전, 아주 오래 전에 바로 자신이 쓴 소설을 ‘이유미’란 사람이 도용했음을 알게 된다.

이유미라는 이름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거짓’이다. 그녀를 둘러싼, 그녀에 관한 거의 모든 게 허구다. 심지어 진에겐 성별까지 속였댄다. 이걸 속는 사람이 있다고? 싶지만 최근에 똑같은 일이 있었다는 게 생각난다. 세상 참 어처구니없구나 싶다.

이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재미있을까. 이 바닥에 세계적인 인물이 이미 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의 악당 ‘톰 리플리(Tom Ripley)’는 괘씸한 놈이지만 매력적인 사람이다. 비난을 하면서도 동정과 연민을 독자로서 아끼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의 관건은 리플리에게 없는 무언가가 이유미에게는 있는가, 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유미에겐 딱히 내세울 무언가가 없다. 가장 큰 건 동기가 없다는 거. 그저 ‘허영’이라는 한 단어로 모든 게 설명된다. 물론 가난과 폭력 같은 부수적인 동기가 있긴 하지만 그닥 쓸모가 없다. 그런 장애에 대응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을 보면 타고난 천성처럼 보인다. 위기에 몰린 사람의 절박함도 없고 포기했다가 다시 일어서려는 용기도 없다. 심지어 악당들을 상대로 한 대결 구도가 주는 쾌감도 없다. 뼛속 깊이 허영심으로 가득 차 있는데다 나약하고 게으르기까지 한 인물에 독자들이 마음을 열기가 쉬울까.

이야기가 재미가 없다. 진행은 (다소 막힘이 있어도) 비교적 물 흐르듯 하지만, 오로지 설명으로만 일관된 작품은, 전체적으로 소설을 읽는다기보다 요약된 시놉시스를 읽는 기분이다.

주인공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나’라는 화자와 여러 증인들(인터뷰이)들의 필터를 거친 이유미는 그저 피상에 머무른다. 어느 누구 그 사람의 본질에 닿질 못한다. 저들이 겪고 들은 게 진짜 이유미일까. 이야기가 그저 ‘그랬다더라’ 수준이니 이건 작가 탓이다. 시점과 구조의 측면에서, ‘나’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이유미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과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삶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데엔 차이가 있다. ‘나’라는 인물이 왜 필요했을까.

이유미의 이야기와 병행하는 화자의 이야기는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구조 안에서 두드러지는 기능도 없다. 한마디로 불필요해 보인다. 오히려 불쑥 끼어드는 모습이 방해만 되니 성가셔 보이기까지 한다.
피상과 이면, 허상과 본질, 진짜 삶과 연출된 삶, 이런 게 작가의 의도였다면 이유미에게 집중했어야 옳다. 작가는 왜 이유미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을까. ‘나’와 이유미가 마지막엔 한 번쯤 대면하는 게 맞지 않나?

이유미의 목소리는 작품 내내 철저히 거세되어 있다. 무대 뒤에서 유령처럼 존재한다. 이야기에 드러난 이유미도 진짜 이유미가 아닌 것 같다. 말하지 못 한, 보이지 않는 다른 모습이 더 있을 것 같다. 작가가 이런 걸 노렸나?

전체적으로 설득이 안 된다. 설정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그렇다. 거칠고 투박하고 성급하다. 인물에 감정을 주기도 어렵고 공감도 어려우니 남는 건 활자뿐인데, 이조차 ‘와!’하는 구석이 없다. 예를 들어 인터뷰 녹취의 기록이라면 구어체여야 한다. 그래야 진짜 같다. 엔딩에서 밝혀지는 반전 아닌 반전은 바보 같다. ‘반전 아닌 반전’이란 표현을 쓴 까닭은 작가는 최후의 일격처럼 다뤘지만 그냥 제 살 깎는 것 이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읽고 처음으로 돌아가 30쪽까지만 읽어 보라. 얼마나 넌센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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