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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꽃님의 서재
  • 루시 게이하트
  • 윌라 캐더
  • 13,950원 (10%770)
  • 2024-04-22
  • : 1,099
주인공인 ‘루시’는 죽어서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인물이다. 밝고 쾌활하고 삶에 용감하고 도전적이었던, 훌륭한 피아니스트로서 기대 받는 재목이었다.
루시의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열정’이다. 동경의 대상과 사랑에 빠졌던 ‘성덕’이었고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고통받는 로맨틱한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우리의 주인공에게도 흠결이 있어 더욱 인간적이다. 열정적이었던 만큼 루시는 현실 감각이 남들 같지 않았다. 가족의 생계에 관해 언니와 아버지에게 모든 걸 떠넘기던 루시는 사랑하던 남자의 죽음 이후 속절없이 무너져내린다.

세계적인 성악가 ‘세바스찬’과 어릴 적 친구이면서 부유한 집안의 남자 ‘해리’는 루시와 더불어 사랑의 삼각 구도를 이룬다. 드러나지 않은 과거에 아파하면서 일찌감치 사고로 퇴장하는 세바스찬은 여러모로 루시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로 하여금 루시는 삶을 호흡하고 사랑에 눈을 뜬다. 성공적인 사업가이면서 열렬한 순애보적 인물인 해리는 루시에게 버림받고 곧바로 그녀를 외면한다. 그리고 즉시 후회한다. 사랑으로 인한 고통은 사랑으로 치유해야 마땅하지만 자존심 강한 해리는 스스로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는다. 루시에 대한 증오를 일구려 할수록 사랑은 더욱 타오른다. 루시의 죽음 이후 해리는 죽은 자와 다름없는 삶을 그저 살아내기 바쁘다.

루시에게 언니 ‘폴린’만큼의 현실 감각이 있었더라면 세바스찬의 죽음이 가져다 준 위기를 잘 극복하지 않았을까. 루시에게 사랑이 몽상과 꿈이었다면 생존과 삶은 현실이었다. 그 사이의 균형을 잘 맞췄더라면 루시는 자신의 어이없는 죽음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세계적인 성악가를 통해 세속적인 성공을 원한 게 아닌 루시에게 어쩌면 이런 평가는 너무 가혹한 걸까. 루시가 원한 건 그저 사랑이었을 뿐.

열정을 태울 것인가, 아니면 열정에 타버릴 것인가. 루시는 열정에 타버렸다. 짧은 삶을 살다 간 루시를 주변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건 그녀의 열정을 동경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면에 어떤 폭력이 숨겨져 있든, 어떤 불행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있든, 순수한 열정은 그만큼 귀하게 보인다. 빛에 현혹되어 온몸을 사르는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만큼 순수한 열정에 스스로를 희생시키는 용기는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닐는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루시가 세바스찬을 만나고 사랑하게 되는 1부의 대미는 세바스찬의 죽음이 장식한다. 사랑하는 남자를 잃고 난 후 루시의 삶을 좇는 2부 마지막에서 루시는 죽는다. 그리고 긴 세월이 흐른 후, 충분히 나이가 든 해리가 과거의 루시를 회상하는 3부로 마무리된다. 짧은 분량이지만 매 쪽마다 감정이 뜨겁다. 작가 ‘윌라 캐더(Willa Cahter)’의 대표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번역된 작품이 작가의 대표작 두세 편에 불과한 현실에서 이런 초역은 참으로 반갑고 귀하다.

작가가 거의 말년(1935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작가 자신에게도 루시는 의미있는, 노년에 백일몽 같은 지난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캐릭터였을 것 같다. 내 삶은 어땠을까, 열정적이었을까, 아니면 뒤로 물러서서 계산하고 눈치보고 있었을까.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 그런 때가 오겠지. 그때 우리는 지나온 삶을 어떻게 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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