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백열 번째 책
영꽃 2024/12/3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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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어가 제철
- 안윤
- 12,600원 (10%↓
700) - 2022-09-01
: 764
올해 마지막 책일 듯.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트리플’ 시리즈 중 한 권. 이름대로 한 작가의 단편 세 편과 에세이 한 편이 실려 있다. 얇은 책이라 집어 들기 편한데, 책들과 책들 사이에 쉼표처럼 읽기 수월한 기획이다. 매 권권마다 호불호가 갈리긴 해도 대체적으로 이 시리즈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안윤’ 작가는 수상집 형식의 다른 책에서 만난 작가다. 단편 하나를 읽었을 뿐인데 아주 좋았고 인상 깊었으며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이 작가의 책을 한동안은 기다릴 것 같다.
이 책을 아우르는 키워드가 있다면, 그건 (죽음으로 인한) 이별과 그리움일 것이다. 세 편 모두 누군가를 잃어서 남겨진 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아직도 슬픔을 태우고 난 재처럼 남은 그리움을 안고 있다. 공통적으로 죽음이라는 소재가 등장하지만 작가는 그것에 크게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작가가 집중하고 있는 건 죽음, 그 이후의 일들이다. 그 후의 감정, 그 후의 기억, 그 후에 이어질 삶. 어떻게든, 꾸역꾸역 이어질 인생. 그것을 기다리고 기대해야 하는가, 그래도 되는가, 그럴 만한가의 질문.
사람은 태어나면서 죽음을 향해 살아간다.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죽을 거라는, 그래서 결국 사라질 거라는 사실은 어느 무엇보다 확실하다. 그건 우리의 정해진 미래다. 인간을 포함한 유기생명체 뿐 아니라 사물들도 마찬가지다. 그것들 역시 제 몫을 다하고 쓸모를 잃게 되면 언젠가는 버려진다. 그리고 사라진다.
그래서 작가는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부연을 하지 않는다. 그런 사실들이 중요한 순간도 있겠지만,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에선 그렇지 않다. 그저 죽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그렇게 사라졌다는 사실. 그래서 누군가 더 이상 그를 만날 수 없다는, 그러므로 남은 평생 그를 그리고 가끔 기억을 더듬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만이 문제가 된다.
죽은 자들은 서서히 잊힐까. 그래야만 한다. 아주 잊히지 않을 정도로만, 문득 떠올라 잠깐 울며 그리워 할 만큼의 흔적만 남기고 잊혀야 한다. 그래야 뒤에 남은 자, 살아서 남겨진, 아직 못 죽어 뒤처진 자들이 산다.
삶은 계속 되어야 한다.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고 해도 삶이 우선되어야 한다. 살다가 가는 거지, 죽은 채로 가는 것이 아니다. 가기 위해서는 먼저 ‘살다가’의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그것도 ‘잘’ 살면 더 좋다. 잘 사는 게 어떤 건지 각자의 형편과 기준에 맞추도록 해야겠지만 일단 살아있다면 살아야 한다. 그게 삶에 대한 예의이고 죽음에 대한 예의이다. 최선을 다해 살다가 맞이하는 죽음. 죽음도 그런 죽음이길 바란다. 누군가의 생일과 다른 누군가의 기일이 같을 때, 생일상을 먼저 차리는 <달밤> 속 화자처럼 삶이 죽음보다 앞서는 이유가 한두 가지 더 있다고 해도, 망자들은 화내지 않을 것이다.
뒤에 남은 자들이 위로를 받는 것도 중요하다. 일어설 수 있다고, 슬픔을 극복할 수 있다고, 언젠가는 그럴 거라고, 종종 미친 듯 그리움을 겪으면서도 살 수 있다고, 그렇게 다시 그리고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어야 한다. 그들이 가장 큰 위로를 받는 순간은 자신의 슬픔을 아는 누군가를 만나고 그 감정을 나눌 때이다.
<방어가 제철> 속 화자(안라)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빠를 사랑하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그 후에 자신이 떠안은 똑같은 무게의 두려움과 그리움을 ‘정오’ 역시 갖고 있었음을 알게 되고 진정한 위로를 받는다. 앞으로 안라의 삶은 오빠 ‘재영’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벗어버리고 자신이 용서받았음으로 아주 조금 편해질 것이다.
<만화경> 속 ‘나경’은 생면부지의 타인(미리내)의 죽음을 애도한다. 고달프고 아슬아슬한 삶의 고개를 힘겹게 넘고 있는 나경은 자신에게 주위의 타인들에게 손을 내밀고 안녕을 물어줄 여유가 아직은 남아 있음을 확인한다. 매우 안심되는 순간이다.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에서는 소설 뒤에 존재하는 작가가 보인다. CoVid-19가 대유행하던 시기, 사람들의 죽음을 단지 수치로 환산해 유통하듯 정보를 교환하던 때가 있었다. 익명성 뒤에 숨은 몰개성, 비인간화의 또 다른 증거 앞에서 묵도하는 작가가 보인다. 그 숱한, 허무하고 의미없는 죽음들 뒤에 생존의 의미를 묻는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끝을 아는 이야기를 계속 읽어야 하나.
우리가 마지막의 의지까지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에게 마지막의 선의마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모두에게 ‘최후’를 위해 마지막의 선의는 간직하고 있음을 믿는다. 아주 작은 ‘씨앗’이지만 가능성은 무한대로 존재함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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