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영꽃님의 서재
  • 블랙케이크
  • 샤메인 윌커슨
  • 16,920원 (10%940)
  • 2023-11-20
  • : 2,049
‘베니’와 ‘바이런’은 어머니의 부고를 듣는다. 해양 학자로 승승장구 중인 바이런은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고한 애인과 직장에서 번번이 누락된 승진으로 의기소침한 상태이고, 생활을 위해 여러 직업을 전전해야 하는 여동생, 베니는 커밍아웃 이후 이해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족들과 척을 진 상태다.
장례식을 위해 어렵게 한자리에 모인 남매는 모친의 변호사로부터 유언이 녹음된 음성 파일을 전달받는데, 자식들도 몰랐던 어머니의 ‘진짜 삶’을 알게 되고 혼란에 빠진다.

가족의 기원, ‘나’라는 존재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가족의 해체는 물론, 그 정통성마저 의심하는 요즘에 ‘가족’이라니. 고루하게 들리지만 꽤 획기적이다. 이야기는 진행하면서 가족 이야기의 단순한 틀을 벗어나 그 이상의 주제, 차별과 억압, 계급과 제도적 관습, 환경 문제, 그리고 삶 자체에 대한 이슈로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살 만한 삶’, 후회하지 않는 삶에 대한 작가의 인식에 큰 공감이 갔다. 작가는 안주하지 않는 삶을 권한다. 일정한 틀에 갇히지 않고 문을 열고 나아가기를 권한다. 삶은 모험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탐험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타인들에 대해서도 작가는 방점을 찍는다. 내가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순간이라도 두 삶이 얽힌다는 것을 의미하며, 영향의 주고받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그들에게 감사하는 것도 우리의 삶을 빛나게 해주는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화자들이 교대로 등장해 다양한 시공간을 무대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작가는 주인공들은 물론이고 조연과 단역들의 삶에 대해서도 소홀함이 없다.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풍성하고 의미 있으며 (독자들이 읽기에) 재미있는 이유는 그들의 역할이 큰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이상으로, 작가는 이야기라는 전체 그림의 한 구석에 드리워진 작은 그림자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세밀함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만나게 되는 타인들의 역할과 그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고 있다.

제목인 ‘블랙케이크(Black Cake)’에 대한 자세한 조리법은 소개되지 않지만, 대략 언급된 바에 의하면 타지 않게 끓여 카라멜화(-化; caramelization)된 설탕이 핵심인 것 같다. 이로 인해 완성된 케이크의 색깔이 결정된다. 또 여기에 카리브 해 연안의 섬 국가들의 특산품인 ‘럼’이나 ‘포트와인’에 절인 과일들(특히 자두)이 들어간다.
보통의 케이크와는 달리 풍미가 상당히 독특할 것 같은 이 음식은 이야기 안에서 서사를 꿰뚫는 상징적 소재이며 한 개인의 뿌리를 정의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블랙케이크는 카리브 해 제도(諸島)국들의, 말하자면 지역 특산품이지만 그 재료들은 다양한 나라에서 왔다. 사탕수수의 원산지는 (동)남아시아이며, 밀은 서아시아, 자두는 중국, 포트와인은 남부유럽, 기타 등등.
그렇게 많은 지역에서 온 재료들로 만든 음식을 그 나라의 토종 음식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런 다양함과 기원의 혼재함은, 중국인과 카리브 해의 흑인, 백인의 혈통으로 이루어진, 주인공인 ‘커비(혹은 엘리너)’의 가계에서도 보인다. 과연 그들의 뿌리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작가는 ‘정통성’이란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것보다 ‘정서적’인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정통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배타적이게 되고, 배타적인 태도는 차별과 억압, 나아가 폭력을 야기할 수 있다. 마음과 문을 열고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을 수용하는 데 적극적인 것이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필요한 자세라고 작가는 전한다. 아직 개척되지 않은, 미지의 세계인 광활한 ‘바다’가 또 하나의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짐작해 본다. 그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치듯이 삶에 맞부딪히고 뛰어들어 탐험하라는 독려도 이 작품의 미덕 중 하나다.

작품을 위한 작가의 전략도 눈여겨 볼만하다. ‘머리’를 썼다는 얘긴데, 작품 구석구석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전략이 노골적으로 도드라지면 촌스럽게 보이기 마련인데, 작가는 이 인상적인 데뷔작에서 그런 함정을 보기 좋게 피해가면서 후반 100여 쪽은, 정말이지 압도적인 감동을 선사한다.

사족.

첫 작품이 이다지도 강렬하면 독자로서 작가가 살짝 (걱정 아닌) 걱정이 되는데 ‘소포모어 징크스’라고, 다음 작품은 어쩌려고, 이런 생각.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