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고통을 직시해야 하는 이유
나는 마음이 약하다. 그래서 인지 슬픈영화나 비극적인 소설은 선호하지 않게된다. 공포영화도 싫어한다.
나도 작가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78년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란나는 몇살인지 기억은 나지않지만 초등학생이던 언젠가 광주버스터미널에 갔다가 터미널에 전시되어 있던 끔찍한 사진들을 보고 충격받은 적이있다.
작가가 책에서 서술했던 것처럼 사진속 사람들 얼굴은 하나같이 함몰되거나 칼같은것으로 찢겨 있었다. 충격받아 몇개보고 뒷걸음 쳤던 기억이있다. 누가 분장한건가? 꾸민건가? 외국인가? 영화의 한장면인가?
진짜라고 믿을 수 없었다. 특히나 내가 살고 있는 광주에서 일어났다고는 더욱. 왜냐하면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매우 평온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과 동네에서 놀았고 아버지는 직장에 다녔고 시내에는 사람들이 붐볐기 때문이다.
나중에 나이가 들면서 언론 등 여러매체를 통해서야 내 고향에서 5.18이라는 벌어졌던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때 목격한 끔찍한 사진들이 희생자들 사진이었구나라고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특이하게 부모님이나 주변사람들로부터 5.18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어느정도 암묵적인 금기어가 아니었을까)
성인이 되어 5.18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되었을 때 전주환을 비롯한 반란군인들과 잔인했던 계엄군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언제부턴가 마음구석 어딘가에서는 그 사건을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누군가 5.18에 대해서 폄하하고 홍어라는 지역적인 비하를 하는 것을 보거나 듣더라도 나는 그 5.18이라는 사건과는 무관한 사람인것 처럼 굴기 시작했다.
왜냐면 내가 어쩔도리 없는 일 같았다. 에너지 낭비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한들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역사도 아니고 내가 무언가를 한들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이들이 5.18희생자나 유가족들을 조롱할때면 나 또한 적극적이진 않지만 5.18이란 사건자체가 서서히 묻혀지기를 바랬다. 그냥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사람들로 부터 계속 조롱받는게 싫었기 때문이고 일방적인 "피해자"로 인식받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이랬던 나를 타임머신에 태운것처럼 소년에게 보내주었다. 아니 더 나아가 그날의 어느 소년에게 빙의된것 처럼 마지막 그 소년의 영까지 체험해본것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소년과 주변인물들에게 차례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이 책을 덮고 40대 후반에 들어서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 또한 한번도 진정으로 그들의 고통을 공감해 보지 못했다는 것을... 눈물이 났다. 터미널에서 봤던 사진들이 어렴풋이다시 생각이 났다. 내가 거닐었던 도청앞 거리와 분수대가 생각났다. 오월묘지가 생각이 났다.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나였고 딸이었고 아빠였던 그들이 보였다. 내 딸의 손을 잡고 학원에 대려다 주면서 풀밭을 보면서 햇살을 보면서 그들을 잠시 생각했다.
너무 아프고 상처받았을때는 말도 꺼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내가 한번도 주변인들에게 5.18에 대해서 듣지 못하거나 이야기 해본적이 없는 것은 너무 아프기 때문에 누구도 이야기 꺼내지 않는 것이란 것을 꺠달았다.
하지만 지금 그 아픔을 직시하고 나서야 눈물이 나면서... 나도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희생자들을 위로하니 내가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한참 슬퍼하고 나니 계엄군들에게도 연민의 마음이 생긴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증오의 대상이었던 그들도 갑자기 불쌍해진다.
사람은 나를 대하듯 남을 대하는 것 같다. 남을 대하듯 나도 대한다.
다른사람의 슬픔과 아픔은 먼저 위로와 공감을 해줄때 나도 위로와 공감을 받게 된다는것을 깨닫는다.